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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하와 몸이 바뀌지 않게 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서서히,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애가 없었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게 원래 당연했잖아. 이게 정상이었으니까 원래대로 돌아가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타키. 요즘은 멀쩡하네?”

“…뭔 소리를 하는 거냐, 타카기.”


무언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기껏 새 톱니바퀴를 넣었는데 어디로 사라져버린 감각이었다. 작지만 다른 모든 것이 돌아가기 위해선 꼭 필요한 톱니바퀴.

조각 퍼즐을 맞출 때 한 조각을 잊어버린 느낌이었다.


“타키군 말이야, 요즘 좀 이상하네.”

“…뭐가요?”

“음…. 뭔가 빠진 거 같아. 무어라 말해야 할까. 세심함?”

“그게 뭐예요….”

“미안. 괜한 말을 했지?”


무의식적으로 기분 나쁘다는 티를 내자 오쿠데라 선배의 높은 목소리가 살짝 아래로 굽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네가 있었던 빈자리가 느껴졌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빈자리가 조금씩 커져갔다.

원래 맞춰져 있던 퍼즐도 한 조각, 두 조각씩 빠져나가며, 이윽고 톱니바퀴마저도 하나둘 멈춘다.


멍하게 휴대폰의 액정을 밝힌다. 다이어리 앱을 누르고 너의 메모를 찾는다. 하나 둘 바뀔 때마다 써내려갔던 일기들이 화면에 떠오른다.

촌스러운 하트 모양과 닭살 돋는 말투. 아니 뭐,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닌데, 남의 휴대폰에 이러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 생각을 하며 웃다가도 뚝 끊겨버린 일기를 보면 갑자기 모든 것이 멈췄다.


어느새 자신은 그 애의 흔적을 갈구하고 있었다. 바뀔 때마다 작성했던 일기, 디저트를 찍었던 사진. 자신의 휴대폰에 남겨진 흔적을 보며 그 애의 몸짓을 상상하려 애썼다.

그러면서도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 감정의 정체를 알지 못해서. 어두운 방이 무서워 안으로 들어가기 무서워하는 아이처럼.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열망과 두려움 간의 괴리에 살짝 몸서리쳤다.


그렇게, 이런저런 일을 겪고 벌이며 또다시 일주일이 지나갔다.

이제는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런데.


─미츠하.


조심스레 입에 담아도, 어떤 방식으로 그 애의 이름을 불러도 심장은 매한가지로 덜컥거리며 솟구치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니. 아니겠지.

그 녀석은 바뀌기 전에도 잘 살던 녀석이었으니까.

분명 바쁜 일상에 밀려 잊어버렸을 것이다.


아마도.




…그 애도, 나를 찾고 있을까.




*

“타키. 요즘 무슨 일 있냐.”

“아니. 딱히 없는데.”


이야기가 나왔던 때는 아버지와 간만에 머리를 맞대고 먹는 저녁 식사 자리였다.

파스타에 레토르트 식품을 반찬으로 삼는, 양식이라 하기에는 좀 미묘한 메뉴였지만, 남자 둘이 살기 시작한 이래 자주 있었던 일인지라 낯선 모습은 아니었다.


“너, 지난번에 내 직장에 왔었는데, 기억 안 나냐?”

“…그랬던가?”

“얀마, 벌써 건망증 걸리면 어떡하냐. 하여튼 그때 근처 카페에서 커피랑 디저트 사주니까 엄청 좋아하지 않았냐.”

“잠깐, 그랬어?”

“아들놈이 벌써 건망증 기운을 보이니 아비 되는 사람은 속이 탄다, 속이 타. 게다가 너 우울하다는 티를 얼굴로 팍팍 내고 있어서 신경 쓰였다고. 설마 사랑 고민이냐? 뭐, 짝사랑?”

“아냐, 이 아저씨야! 뭐만 하면 연애 타령이야?!”


그야 네가 워낙 왕성할 때니까. 여자에게 관심이 없을 리가 있나. 아니라고 하면 이 아비는 이 자리에서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 내 아들놈이 고자라니. 젠장, 손녀 목마 태워보는 게 소원이라고.

타키는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난잡스러운 말에 어이를 잃을 뻔했다. 도대체 이 아버지란 양반은 왜 이리 난리인가. 언제나 입을 열기만 하면 이렇게 정신을 쏙 빼놓으니 정을 붙이고 싶어도 붙일 수가 없는 거라고.


그래서 잔뜩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쏘아붙이려 했다.

그랬는데.


갑작스레 얼굴에서 힘이 탁 풀렸다. 어느 순간 입에서 나오려 하던 이런저런 날카로운 말들이 산산이 부서져 짙은 한숨으로 변했다.


“…하.”

“말 안 하는 거 보니 심각하긴 한가 보네. 지금이면 폭발해서 이것저것 다 내놓을 타이밍인데.”

“몰라. 그렇게 중요한 거 아냐. 심각한 것도 아니고.”


타키의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린 아들을 쳐다보다가 포크에 스파게티를 둘둘 말아서 입속에 넣었다. 하여튼 이 아들 녀석은 이상한 데서 고민이 많다. 거기다 하나하나 등을 밀어줘야 한다니.

이것 역시 아버지라는 사람이 반평생을 이고 살아가야 할 업일 것이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아버지는 입을 열었다.


“타키.”

“왜?”


조금 낮아진 목소리 탓인지 타키는 바로 아버지 쪽으로 돌아봤다. 아버지는 타키를 바라보며 포크를 손에서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네가 뭐 때문에 고민하는지는 모르겠다. 왜 결정을 못 내리는지도 모르겠고. 나에게 말을 못 하는 거 보니 분명 엄청나게 큰 놈이겠지. 나는 내 아들 소인배로 키운 적 없으니까 정말 쬐끄마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

“나는 그런 너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어. 나는 나고, 타키 너는 너니까.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폭탄 같은 놈이라고. 그러니까 네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거지. 어차피 기본적인 상식은 다 알고 있으니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널 밀어줘야 할 것 같다. 의미 모를 소리를 하며 아버지는 빙글빙글 돌리던 포크를 멈춰 끝을 타키에게로 향해 찌르는 시늉을 했다.


“…무슨 소리야?”

“타키 너,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못 내리고 있잖아. 그런 답답한 기운은 여기까지도 다 보여요, 인마. 너와 같이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하여튼, 내가 평소에 누누이 하던 말 기억나냐? 아버지는 기억을 재촉하며 타키를 직시했다.


“…네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설사 다치고, 후회한다 하더라도 나는 막지 않겠다─”

“─그건 결국 네가 책임지고 내린 결정이니까. 다만 지금에 충실해라. 이젠 좀 외워라.”

“쾌락주의자나 내뱉을 그런 말, 맘에 안 든다고.”

“네 아버지는 이렇게 살아왔는걸 어쩌랴. 일 벌이고서 다치기도 다쳤고, 후회도 했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다칠 기회나 후회할 기회조차 없어. 난 이성으로만 아들 키운 적 없다.”


네 마음은, 지금, 뭘 원하냐.

말을 끊을 때마다 아버지가 들고 있던 포크가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말이 끝날 땐 포크에 가슴이 찔릴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멍하게 포크를 내려다본다.

순간 찌릿하고 신호가 왔다.

오른손을 바라본다. 내가 오른손에 들어야 하는 건 이런 포크 따위가 아닌 다른 것이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건….


─찾아야 해.


덜컹.


“미안. 뒷정리 좀 부탁할게.”

“다 안 먹냐?”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일이 떠올랐어.”

“이제야 내 아들답네.”


빨리 가, 인마. 막을 생각 없으니까.

훠이훠이 사라지라며 손짓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타키는 복도로 나왔다.

잠시 심호흡을 한다. 아마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애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라리 해 보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낫겠지.


미츠하.

지금부터 나는, 너를 만나러 가.




*

“벌써 저녁이네….”


청소는 거의 다 했고, 이제 남은 건…


“서재는 청소 아직 안 했지?”

“응.”

“요츠하는 가서 쉬고 있어. 나 혼자 할 테니까.”

“내가 도와주면 더 빨리할 수 있잖아.”

“언제는 도와줬다고. 됐어. 계속 나 혼자만 했으니까 괜찮아.”


요즘 언니, 엄청 힘들어 보였단 말이야. 요츠하의 말은 소리라는 형상을 가지기도 전에 미츠하가 서재의 문을 열고 혼자 들어가 허공을 떠돌다 사라졌다.

아직도 낯설게만 느껴지는 단발의 뒷모습이 눈앞에 일렁이다 문에 가려졌다.




*

토시키의 서재를 청소하는 사람은 언제나 미츠하 혼자였다. 할머니인 히토하는 여기엔 눈도 돌리지 않았고, 요츠하는 아직 어리기에 만져도 될 것, 만지면 안 될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요츠하가 들으면 무슨 바보 취급이냐고 씩씩댔겠지.

아직 이런 반응이 없었던 건 미츠하가 이 생각을 밖으로 내보인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디부터 청소를 시작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서재를 혼자서 청소하게 된 지 6년이 지날 동안 변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가끔은 변했으면 좋겠다. 책의 위치가 바뀐다든가, LP 플레이어가 작동하고 있어서 아예 청소를 못 한다거나, 책상 위에 토시키의 읽던 책이 놓여 있어 닦지 못한다든가.


하지만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책장부터 먼저 먼지를 쓸어 내기로 했다. 한때 민속학자였다는 걸 보여주듯 가지런히 정렬된 책들은 이름들을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질 지경이었다. 무슨 연구에 유래가 어쩌고저쩌고. 이런 걸 제정신을 유지하면서 읽을 수 있는 걸까.

그런 투덜거림을 소리 내서 해 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당연했다. 서재엔 미츠하 자신 혼자 밖에 없었으니.


다음은 독서용 책상이었다. 좌식 의자에 맞춰 낮춰진 책상은 아담했다. 라이트 하나와 책 몇 권만이 겨우 세워질 수 있을 정도. 그래서인지 닦아내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버지. 이거, 어머니가 드시래요.

─음.

어머니가 손수 정성스레 깎은 사과를 들고 와도 무뚝뚝하던 당신은, 하지만 나중에는 어머니에게 직접 고맙다고 인사했는데. 그때는 그게 언제까지라도 갈 것만 같았다.

옆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왠지 조금 이상했다.

평소엔 이런 기분 느낀 적 없었는데.


시선을 돌린다. 거기엔 LP 플레이어가 있었다. 평소에도 신경 써서 닦았기에 내부가 훤히 보였다. 한때, 하루도 빠짐없이 돌아가던 회전판은 비어 있었다.

예전에는 저기에서 나오던 음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당시에 LP판은 자신에게 있어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 있었기에 하나하나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궁금해질 때마다 아버지의 어깨를 건드려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메모지에 질문을 적어 책상에 스리슬쩍 올려놓는다는 발상을 생각해냈었다.

궁금해서 질문을 적은 메모지를 책상에 올리고 난 다음 날엔 언제나 그 뒷면에 토시키 특유의 필체로 대답이 적혀 있었다.


그것이, 유달리 소통이 서툰 둘의 대화법이었다.


“아…, 아으….”


그리움 때문인지, 갑작스레 북받치는 몸속의 무언가를 애써 억누른다. 안 되는 게 뻔한데, 왜 이렇게 포기를… 못 하는…

원망을 떠올리려 했다. 미츠하 자신을 저버리고 떠나간 토시키의 뒷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걸 기억해내며 애써 다른 감정으로 가리려 했다.


화가 나야 하는데, 화가 나야 하는게 맞는데.


“가지 마…. 날 두고 가지 마….”


한 번 넘치기 시작한 감정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싸늘한 바람. 주변엔 아무런 온기가 없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유난히 투덜대던 동갑내기 남자애 하나.

의견도 잘 안 맞고, 서로 싸우기도 줄곧 싸우고, 그렇게 사정사정해서 부탁까지 했는데도 잘 안 들어주던 남자애.

그런데도,

나는


“하아….”


잠깐, 잠깐 바람이라도 쐬자.

어찌어찌 눈물을 닦아내고 일어선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붙잡고 걸어간다.




*

오쿠데라 선배와 츠카사 녀석은 먼저 도쿄로 돌려보냈다. 이 이상은 자신이 할 일이었으니까.

때마침 라멘 가게에 있던 주인아저씨의 호의로 어떻게 이토모리 마을까지 오긴 했다. 하지만 지도를 봐도 모르겠다. 이 길이 맞는지, 저 길이 맞는지. 게다가 호수도 빙 둘러서 가야 하고.

지도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판독을 시도할 동안 앞쪽 옆쪽 뒤통수 가릴 것 없이 눈초리가 꽂혔다.

이 마을에 볼 게 뭐가 있다고 여행객이 오냐. 그런 시선이겠지. 딱히 이상한 일을 벌이러 온 것도 아니니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단지, 찾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 왜 찾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없다.

딱 떠오르는 생각은‘그저 걱정돼서.’‘만나보고 싶으니까.’그게 이유라면 이유겠지.

모처럼 아버지가 밀어주기도 했다. 일단 저질러버리자. 그렇게 정했다.


“…너무 멀잖아.”


문제라면 이것. 종일 걷고, 뛰고, 묻고. 심신 양면으로 지치지 않으려야 안 지칠 수가 없다.

지도를 뚫어지라 내려다보는 눈이 아프다. 이미 해는 산자락 건너편에 반쯤 넘어간 지 오래. 시골 주제에 길은 어찌나 복잡한지. 

그래도 이리저리 걸은 덕분에 삼거리 옆에 있는 자판기까지 올 수 있었다. 여기서 아마, 저쪽 위를 올려다보면 그 녀석의 집이 보일 텐데,


“찾았다.”


하지만 곤란한 것이 하나.

막상 보니 높게만 느껴진다. 올라가고 싶어도 다리는 맘대로 움직일 생각도 없고. 고지가 코앞인데 정작 올라갈 방도가 없다.

생각해보니 막상 간다고 해도 들여보내 줄지 의문이다. 그 녀석의 할머니는 엄청 고지식해 보였으니까. 이때까지 떠올리지 못한 문제가 두 개씩이나 밀려오니 의욕이 영점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다.


아 젠장, 일단 앉아서 쉬고 싶어. 다리를 어루만지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 자판기 옆에 있던 통나무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편히 앉는다.

아마 나랑 테시가와라, 사야카가 같이 만들었던 거지 싶은데. 체육복 바지를 입고서 신나게 톱질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사야카가 질겁했던 것도 떠오르고. 뭐 때문에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미츠하와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어떤 것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오쿠데라 선배랑 데이트 실패한 것부터 말해야 하나.


“타키…?”




*

“미츠하?”


내가 아닌 미츠하의 목소리를 처음 들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뒤바뀔 때의 내가 한 번도 얼굴에 담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고 있어서 그런 걸까.

목소리가 들려온 곳, 아마도 미츠하일 거라 생각되는 사람을 향해 돌아봤을 때 쭈욱 힘이 빠졌다. 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멍하니 입을 벌리고서 나를 보고 있는.

처음으로 만난 것임에도 낯섦과 익숙함의 경계를 오고 가는.

자신과는 다른 조곤거리는 걸음걸이.

그렇게, 그렇게 한 걸음씩 다가오며 표정이 점점 변해가는.


무슨 감정인지,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다. 다가오는 미츠하의 발걸음에 호응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대범하게, 소심하게, 용기 있게.

타키와 미츠하, 둘은 한 발자국만을 남겨두고 멈췄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미츠하는 타키의 몸 구석구석을 내려다보고 올려다보기를 반복했다. 그걸 보며 안도감인지 반가움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에 웃을 수밖에 없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무슨 말을 처음으로 건네야 할까. 경험이 없으니 어떤 감정을 맨 첫 번째로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타키는 가까스로 깊숙한 곳에서 퍼내 올린 말을 입에 담았다.


“…안녕. 오랜만…이라고 해야하나?”

“타키? 타키군 맞지? 응? 타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믿어지지 않는 마음과 몸 안의 생생한 감각이 뒤섞인 채 끝이 흐려지며 반복되는 말로 나왔다.

미츠하는 타키의 양팔을 붙잡았다. 자기 앞에 타키가 있는 걸 확인하겠다는 듯, 놓치지 않겠다는 듯, 타키의 손보다 작은 손으로 있는 힘껏 붙잡았다.


“진짜, 진짜로 있어…. 타키군이….”


그러고서 닭똥 같은 눈물이 하나둘 방울방울. 하나하나가 무슨 감정인지 모를, 그래서인지 투명하고 예쁜 감정.

여자애들은 눈물을 이렇게 흘리는구나. 새삼 신기했다.

아니, 잠깐.

이럴 때가 아닌데.

닦아주지는 못할망정 감상이나 하고 있다니.


“저기, 잠깐만. 눈물 좀 닦아줄 테니까 손 좀….”

“아니, 괜찮아.”

“어어…?”


‘왜?’ 라고 반문하려다가 그만뒀다.

손수건을 꺼내려 주머니에 넣었던 손은 미츠하의 힘껏 웃어버리는 얼굴에 멈칫했다. 기뻐하는데 눈물이 나온다니. 무슨 반칙이야.

그래서 자신도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웃으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후우…, 어쨌든 찾아서 다행이네. 너를 만나러 왔어. 정말이지, 힘들었다니까. 너무 멀리 있어서.”


도쿄에서 4시간, 차 타고 또 한시간.

이리저리 빙빙 돌다가 운 좋게 우연 하나가 걸려들어서 다행이었지. 하지만 이런 투정보다는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는 기쁨이 앞선다.


“나를, 만나러…?”

“응. 널 만나러.”


자신을 향해 올려다 보는 어리둥절한 눈. 물기가 가득하고, 온갖 감정이 섞이고, 그런데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눈동자. 그 모습이 신선하기도 하고 이름 모를 뜨거운 것도 느껴졌다.

입에서 절로 뜨듯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반가워하는 건 좋지만 왜 펑펑 우는 거냐고….


“그, 그런데, 타키군, 일주일 전에 나 못 알아보지 않았…, 어, 어라? 혹시, 키 일주일 만에 훨씬 커진 거야? 나보다 작았던 거 같은데? 그러니까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을 정도로.”

“무슨 소리야? 난 오늘 처음으로 미츠하를 만난 거라고.”

“어, 어어? 하, 하지만 일주일 전에….”


일주일 전? 무슨 소리야? 타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내가 도쿄에 갔을 때 타키군을 찾았다고. 5시쯤에 전철에서 만났는데, 기억나지 않아?”

“전철? 잠깐만.”


무언가 떠오르려고 한다. 전철에서, 너를…


─기억…안 나니?


아. 설마.

손목에 묶어 뒀던 매듭끈을 내려다본다. 분명히, 그때 만난 여자애의 머리를 묶고 있던 끈이었다. 묶고 있던 끈을 풀어 자신에게 던져준 것까지 기억난다.


하지만, 이건…


“3년 전…의 일인데. 설마 내가 중학생일 때 만나러 왔다고…?”

“에이, 설마. 설마….”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3년과 1주일의 격차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왜?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타키와 미츠하, 둘 다 자신이 아는 상식 내에서 이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이런저런 단어와 지식을 조합해 말이 되게끔 단어들을 이어 붙이기도 해 본다.


의미.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이 현상에.

시간이 흐른다. 마치 사방이 막힌 벽을 더듬는 기분이다. 이래 저래 생각해 봐도 명확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래도 좋지 않을까. 정처 없이 뻗어 나가던 생각의 물줄기를 거둔다.


“…됐어. 이제 만났으니 딱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무엇보다, 주목적을 달성했으니 슬슬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었다.


“저기, 미츠하.”

“응? 왜.”

“미안한데, 혹시 이 근처에 식당 같은 곳 없어? 지금 좀 쉬고 싶어서.”


왜 말이 없어. 그런 거 정도는 있을 거 아냐.

미츠하는 한참을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이토모리 곳곳을 이리저리 살피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잠깐 멍하게 있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한쪽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거의 호수 반대편.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미지가 정확하다면 아마 다리 근처.


“차라리 날 죽여라….”

“하지만 우리 동네에 식당은 저쪽 말고는 없는걸. 아니면…”

“아니면?”


이게 될까. 으으으으…. 하지만. 그래도 이거 외엔…. 도대체 뭐가 그리 고민인지, 발을 동동 구르며 혼잣말을 하는 녀석.


“가까운 곳이라면 아무래도 좋아. 일단은 좀 쉬고 싶고.”

“그, 그럼―


─우리 집은 어때!”


…뭐?

한순간, 타키는 미츠하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상상하지도 못한 제안에 잠깐 생각이 멈췄다. 그리고 논리회로가 재가동 되자마자 입이 땅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경악했다.

이, 이 여자애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같은 동갑내기 남자애한테 자기 집에 가자는 소리를 하냐!


“야, 야아….”

“어차피 우리 동네엔 민박도 없고, 여관도 없으니까! 게다가 식당은 저기 먼 곳에 있고! 타키군은 멀리서 온 데다가 한참 걸었을 테니 많이 힘들 거잖아!”


그러니까…, 그으…우리…집?

뒤로 가면 갈수록 점점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 그와 동시에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

자기가 말해 놓고 감당하지 못해서 뻥 터지면 뭐 어떻게 하자는 거야…. 그 정도로 부끄럽게 느껴지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는 것이 문제였다.


하. 어쩔 수 없지.


타키는 그걸로 대충 이성에 둘러대고 다리를 움직…이려다 말았다.

아, 이런.


“저기, 미츠하.”

“응, 왜?”

“미안한데, 혹시 나 부축해줄 수 있겠어? 다리에 힘이 풀려서 이 이상은 못 움직일 거 같거든….”

“잠깐, 어?”


도쿄로 돌아간 다음엔 구보 운동이라도 해야겠어.

미츠하에게 부축받으며 거의 질질질 끌려가다시피 하는 타키의 머리에서 떠오른 생각이었다.




*

드르륵. 쾅.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걷는 의무에서 해방이라고 외치듯 타키의 다리는 힘없이 무너졌다. 동시에 몸도 앞으로 고꾸라졌다.

미츠하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는지 숨이 거의 넘어갈 기세로 헉헉대고 있었다.


역시, 도쿄로 돌아가면 운동을 해야겠어.


“언니야, 뭐 이리 늦은 거야? 저녁 식을까 봐 할머니와 나 먼저 먹었…”


그 뒤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 요츠하였던가. 타키는 쓰러진 채로 힐끗 보더니 손바닥을 들어 흔들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내 몸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요츠하의 눈은 점점 휘둥그레 커지더니, 이윽고 안쪽으로 달려가며


“할머니이이이! 언니가 남자친구 데려왔어어어어!”


라는 소리를 질렀다. 그 말에 응답하듯 '푸흡.' 하고 무언가 걸린 목소리와 함께 성대하게 물이 뿜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콜록대는 소리를 들어보니 아마 할머니가 아닐까. 아, 히토하…할머니였던가.


그것보다 남자 친구라니, 그런 거 아니거든.


“타키군, 무거워….”

“무거워서 미안하다….”


지금은 농담 받아줄 기력도 없어…. 타키는 양 손을 들었다.




*

“잘 먹겠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어떻게, 타키는 외투를 벗고 짐짝과 같이 한구석으로 밀어 넣은 다음 상 앞에 겨우 다다랐다. 어째 위에 미묘한 물기가 남아있긴 하지만 신경 쓰지 말도록 하자. 그렇게 정했다.

어느 의미의 배려냐 하면 어르신의 위신이 달린 문제라고 할까. 타키는 못 본 척하기로 했다.


말소리 없이 미츠하와 타키, 둘은 밥을 흡입하고 반찬을 집어 먹기 바빴다. 배고프니까 야채든 뭐든 전부 군침 도는 녀석으로 보였다.

이것저것 집어먹는 모습은 남의 집이란 것도 무색하게 할지경이었다. 끝에 가서는 미츠하와 반찬을 두고 잠깐 젓가락 싸움을 벌일 지경이었고.─그 신경전은 대단했지. 마지막 한 조각 남은 너겟을 두고 말이야. 후일 타키는 그렇게 회상했다.


“저기 말이야─”


패배의 쓴잔─미소된장국─을 후르릅 마시고 있던 타키가, 마침내 치킨너겟을 성취하는 것에 성공하여 행복한 얼굴로 음식을 씹고 있던 미츠하가 요츠하를 향해 돌아봤다.


“두 사람은 오늘 빼고 만난 적 없는 거지?”

“응.”

“그렇지.”

“그런데 보고 있으면 그냥 사귀는 거 같아.”


얘, 얘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아까부터!


“사, 사, 사, 사귄…다고?”

“아냐?”

“아, 아아아…, 아니야! 아니라고!”

“사귀는 거 아냐, 인마!”

“잠깐, 타키군이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야, 무슨 소리야?!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라고!”


어느새 둘은 젓가락조차 내려놓고선 서로를 바라보며 말대꾸를 끝없이 늘리고 있었다.

이러면 누가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 믿겠냐고. 요츠하의 투덜거림은 히토하가 차를 마시는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조용히 해주겠나. 그쪽도, 미츠하도.”

“….”

“요츠하, 궁금한 것이 많을 거 안단다. 하지만 오늘은 둘 다 피곤해 보이니, 내일 자리를 마련해서 묻는 게 좋겠구나. 타치바나 타키라고 했던가?”

“…네. 그렇습니다.”

“도쿄에서 왔다고 들었네.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텐데 먼저 씻고 잠자리에 드는 게 어떤가? 이부자리는….”

“할머니. 우리 손님방도 쓴 지 오래됐잖아. 다른 방은 창고가 됐고. 그래서 말인데─”


아. 이거 위험해.

미츠하나 타키를 가릴 것 없이 바로 신경이 곤두섰다. ‘잠깐 생각 좀 해보고.’ 라고 외치려는 것도 잠시,


“그냥 언니 방에서 재우는 게 어떨까?”


어째서 지뢰밭을 지나가면 그 위로 폭탄이 떨어지는 걸까. 요츠하는 재밌다는 듯 싱글벙글 치기 어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자기 동생이 머리 위로 기어오르려고 한다는 미츠하의 말의 의미를 타키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미츠하, 아마 2인용 이불이 벽장 안에 있을 거란다. 꺼내서 쓰렴. 거기, 타치바나군도 싫어하지 않았으면 하는구나.”

“네…?”


거기서 보통 반대의견 말하는 게 정상 아니에요? 어르신이잖아! 남녀칠세부동석! 타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잔뜩 내질러진다.

하지만 제대로 된 언어로 형태를 갖추지 못한 것들이 한가로이 차를 마시는 히토하에게 닿을 리는 없었다.


“하, 한방. 합방? 같은 방?”

“어이, 미츠하. 정신 차려.”


미츠하는 완전히 새빨개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정신 차리라 말하는 자신도 분명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빨개져 있을 것이다.




*

가져온 세면도구로 씻고 난 뒤의 현재. 미츠하의 방으로 올라온 타키는 고민에 빠졌다.


“그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거부해야 했는데….”

“….”


미츠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얼굴을 돌려놓고선 옆머리만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 하지만 귀가 빨간 걸 보니 정면은 안 봐도 훤했다.

문제는 실로 간단했다. 간단한 만큼 엄청 신경 쓰이는 문제였다.


좁았다.

엄청 좁았다.


최대로 사이를 벌리고 누워도 요츠하 정도 되는 사람이 누우면 꽉 채워질 정도다. 잠깐 심호흡을 한다. 각오해야 되겠지만 어쨌든 눕긴 누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생각대로 잘 안 돼서 문제지.


“저기, 미츠하.”

“….”

“미츠하. 계속 이러고 있으면 못 잘 거라고. 피곤할 거잖아. 안 그래?”

“…응.”

“일단은 서로 등 돌리고 자는 게 어떨까. 그럼 서로 돌아누워도 천장을 볼 거잖아. 거리도 여유가 날 테고.”

“…그렇게 하자.”


어떻게든 된 거 같네.

한숨을 쉰 타키는 겨우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달빛에 비치는 미츠하의 그림자. 미츠하 역시 미적대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밀려오는 편안함만큼이나 피곤함의 자리는 컸다.


“저기, 타키군.”

“응? 왜?”


진중하고도 떨리는 목소리. 무언가 중요한 거라도 털어놓을 셈인가. 아직 미츠하의 말을 받아줄 심적 여유는 남아 있었다.

미츠하의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타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돌아누우니까, 그…갱년기 부부 같지…않아…?”


얘 설마 내성적인 건 연기 아닐까. 사실은 엄청 적극적인 애였다던가. 자기가 내뱉은 말의 무게는 알고 하는 소리일까.

어이란 것이 나자빠지는 소리에 한숨을 쉬려다 피곤이라는 것에 막혔다. 이젠 아무래도 좋다. 그냥 자고 싶다.


“에휴…, 그러자. 마주 본다고 해서 어떻게 되지는 않으니까.”

“응. 그래….”


그렇게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누웠다.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눈동자. 윤곽만 어스름히 보이는 얼굴선.

신비로운 느낌이다. 몽롱한 감각이 떠오른다.


어째서일까. 너를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여. 그걸 자세히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

동시에 어두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붉어진 얼굴을 어둠이 친절히 숨겨줬으니까.


문득, 선을 넘나들듯이 호기심에 살짝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 오쿠데라 선배랑의 데이트는 어떻게 됐어?”

“미안, 어쩌다 보니 망했어. 도중에 다른…생각을 좀 해서.”


그 다른 생각의 정체는 지금도 모르겠다.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한데 막상 다가가기 무서웠다.

그래서 그냥 덮어놓고만 있었다. 혹여라도 나중에, 용기가 난다면 다시금 들춰볼 수 있도록.


─다행이다.


영문 모를 생각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왜…?

모르겠다.

가슴에 출렁인 이름 모를 감정에게서 애써 고개를 돌렸다.

정체를 알게 되면 더 이상 자신이 아니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술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