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엔딩 이후의 스토리, '두 사람의 이야기' 시리즈의 1화, '네가 모르는 이야기' 입니다.

1화이지만 내용은 두 사람이 만나기 전이기 때문에 프롤로그가 되기도 하겠네요.

이 시리즈는 옴니버스 형식의 스토리가 되어 모든 편을 단편처럼 볼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아무리 옴니버스라도 시리즈인 이상 스토리의 큰 뼈대가 있기 마련이지만요.

너의 이름은 후일담을 싫어하시는 분, 팬픽을 싫어하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 시리즈 링크 - http://gall.dcinside.com/yourname/982504


viewimage.php?id=34b2c534ebd335a3&no=29bcc427bd8377a16fb3dab004c86b6ff0802da79a4b18155645d84fa8c2f0c539abd2adc762d68bfb905baaaeaddb067f5082a9a814ad342cde6c64adc6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어딘가의 산 정상에 있다.

이름 모를 이 산이 어디인지 나는 알고 있다. 그리운 장소, 지금은 사라져버린 고향 집의 뒷산. 미야미즈 신사의 신체가 있는 장소. 하늘을 보면 지평선을 넘어가기 시작한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아, 그 꿈이다.

이 꿈을 나는 알고 있다. 이토모리의 산 정상에서 정신을 차린 나는 언제나 저녁노을의 따스함 아래에서 그리운 사람을 만났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사람. 눈을 뜨면 잊어버리고 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내심 잘생긴 남자가 아닐까 기대하며 나는 둥근 길을 걷는다.

걷다보면 홀연히 나타나는 사람 형상의 실루엣.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서둘러 다가간다.


그곳에는 단발머리의 여성이 있었다.


“저... 누구세요?”


그리운 느낌을 풍기는 사람. 그러나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니다. 지금까지 꾸던 꿈과는 조금 다르다. 과연 이 사람은 누구일까, 내 부름에 그녀가 응답했다.


“나? 글쎄, 내가 누구일까? 너의 이름은 뭐야?”


빙글 뒤돌며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얼굴을 코까지만 가린 여우가면이 씌어져 있었다. 얼굴을 알 수 없는, 그러나 익숙한 목소리의 그녀에게 나는 답했다.


“제 이름은 미야미즈 미츠하예요.”


내 이름을 듣는 순간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무슨 일일까, 사람의 이름을 듣더니 갑자기 웃는 이 무례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걸었다.


“당신은 여기서 뭘 하고 계신가요?”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


사람을 기다린다는 그녀의 표정은 입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분명히 소중한 사람을 기다리는 거겠지.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줄까?”

“재미있는 이야기요?”

“보아하니 너는 나를 만나러 온건 아닐 테고.. 심심하잖아?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비록 이게 꿈일지라도 나는 딱히 할게 없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장단에 맞춰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나는 평소와 다른 이 꿈의 흐름에 탑승하기로 했다.


“들려주세요. 그 이야기.”

“좋아, 잘 들어. 이건 한 소년소녀의 아름다우면서도 안타까운, 그런 이야기니까.”


그녀는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기쁘다는 듯 해맑은 미소를 보였다. 보이지는 않지만 가면 너머의 눈도 눈웃음을 짓고 있지 않을까, 10대 소녀와 같은 그녀의 분위기에 나는 안심했다. 그녀는 해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나의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음.. 어디부터 얘기하면 좋을까, 아! 그냥 처음부터 할게.”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나 고민하고 있어요.’ 라는 티를 신나게 내다가 금세 결정했는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골에 사는 소녀와 도시에 사는 소년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두 남녀는 자고 일어나면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불가사의한 상황에 놓여졌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어떻게든 적응해내고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며 지냈다.

시골소녀는 도시남자의 몸으로 친구들과 함께 시골에서 즐길 수 없는 것들을 즐기며 돈을 함부로 쓰기 시작했다.

도시남자는 시골소녀의 몸으로 단정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며 주변의 그녀를 향한 인식을 바꿔나갔다.

시골소녀는 도시남자의 짝사랑에 간섭했다.

도시남자는 시골소녀를 괴롭히던 사람을 혼내줬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인간관계를 바꾸지 말라며 화를 냈지만, 내심 고마워하는 일면도 있었다.

두 남녀를 곤란하게 만들던 뒤바뀜은 서서히 일상에 녹아들었고, 두 사람은 겉으로는 싫어했지만 속으로는 다음 바뀜을 기대하고 있었다.

어느 날 소녀는 결심했다. 남자의 짝사랑을 이루어주자고, 소녀가 보기에 도시의 두 남녀는 세련되었고, 자기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소녀는 소년의 짝사랑에 간섭하고, 데이트 약속을 얻어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소년에게 숨겼다.

소년은 잠에서 깨어났고, 갑작스러운 데이트에 당황했다. 소년은 여자경험이 없었고, 짝사랑하던 상대와 데이트를 하면서 다른 생각만 하며 데이트를 망치고 말았다.

소녀는 데이트를 잡고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의 몸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를 응원하면서도, 내심 아쉬웠다.

소녀는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어디서 시작된 눈물인지도 모른 채, 그녀는 도시로 향했다.

소년은 데이트를 망치고 소녀에게 전화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았고, 소년은 데이트 결과를 다음에 알려주기로 했다.

소녀는 도시에 도착하고 소년을 찾아다녔다.

소년은 다음 뒤바뀜을 기다리며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소년과 소녀의 뒤바뀜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왜 그런 건가요? 소녀는 소년을 만났나요?”

“글쎄,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뒤바뀜이 멈췄다는 건 둘이 만났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반은 정답”


소녀는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소녀를 만나지 못했다.


“네? 그럼 소녀가 만난 소년은 누군가요?”


나의 물음에, 여우가면의 소녀는 싱긋 웃었다.


“그 도시소년이 맞아.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

“문제라니요?”


소녀는 3년 전의 소년과 만났다.

그 소년은 아직 뒤바뀜을 경험하지 못했고, 당연히 소녀를 알아볼 수 없었다.

소년은 소녀를 부정했다. 소녀는 실망했고, 절망했다.

소녀는 전부 포기하고 시골로 돌아갔다. 소년에게 작은 선물을 남기고.

소녀와 뒤바뀜을 겪던 소년은 더 이상 바뀌지 않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꼈고, 소녀를 찾아 나섰다.

소년은 여행길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녀를 찾는데 성공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3년 전의 소년과 만난 소녀는 어떻게 된 건가요? 어째서 3년 전의 소년과 만난 건가요?”

“죽었어.”

“네?”


소년이 찾은 소녀는, 3년 전 어떤 재앙의 사망자명부에 적힌 소녀의 이름이었다.

소년은 절망했다. 자신이 놓인 상황을 믿을 수 없었고, 필사적으로 소녀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소녀가 3년 전에 죽은 사람이라니, 소년은 이미 죽은 소녀와 어떻게 뒤바뀐 거죠?”

“그게 소녀가 3년 전의 소년과 만난 이유야.”

“설마...”

“소년과 소녀의 시간은 3년이 어긋나 있던 거지.”


소년은 소녀를 만나고 싶었다. 소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소녀를 찾아 나섰고, 죽은 소녀가 살아있기를 바랬다.

소년은 그녀를 살리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시간을 날았고, 시간을 거슬러 올랐다.

3년 전, 소녀가 죽는 당일로 돌아간 소년은, 그녀의 몸에 들어갔다.

소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소년은 기뻐했다. 기쁨도 잠시, 소년은 소녀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소년은 소녀의 친구를 만났고, 소녀의 가족을 만났다.

소녀의 마을에 닥쳐오는 재앙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소년은 소녀뿐만이 아니라 마을을 구하기로 했다.

소년은 소녀의 친구들을 설득했지만 마을사람들은 설득할 수 없었다.

소년은 절망했고, 마지막 남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걸었다.


“마지막 희망?”

“소년은 3년 뒤의 자신에게 들어있을 소녀를 만나러 갔어.”

“어떻게 만날 수 있나요?”

“글쎄? 아무튼 소년과 소녀는 만나는데 성공했어. 나름 첫 만남인 셈이지.”

“다행이네요. 그런데 서로 뒤바뀐 채로 만나는 건 좀 아쉬워요.”

“잘 됐네. 소년과 소녀는 서로의 몸으로 돌아갔어.”


서로의 몸으로 돌아간 소년과 소녀는 만났다.

소년과 소녀는 짧은 대화를 가졌고, 행복하게 웃었다.

소년은 소녀에게 피난계획을 설명했다. 그리고 부탁했다. 사람들을 설득해달라고, 살아달라고.

소녀는 끄덕였고, 소년은 소녀에게 서로의 이름을 적어주자고 제안했다.

두 남녀의 뒤바뀜의 계기는 잠, 뒤바뀌는 현상은 일종의 꿈. 눈을 뜨면 점점 잊혀가는 것이 꿈이다. 그렇기에 소년과 소녀는 서로의 이름을 적어주기로 했다.

소년은 소녀의 손에 글자를 적어나갔고, 소녀가 펜을 들고 소년의 손에 획을 긋는 순간, 소녀가 사라졌다.


“소녀는 어디로 갔나요?”

“두 사람의 시간이 어긋나있다는 건 이미 말했지? 두 소년소녀는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간 거야.”


소년은 절망했다. 소녀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발악했다.

소녀는 달렸다. 소년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되뇌며 달렸다. 살기 위해, 다시 한번 소년을 만나기 위해 소녀는 달렸다.

소녀는 사람들을 설득했고, 마을을, 자신을 구했다.


“다행이네요!”

“그럴까?”

“무슨 일이 또 있나요?”


소년은 소녀를 잊었다. 소녀 역시 소년을 잊었다.

소년의 발악은 소용없는 일이었고, 소녀는 소년을 잊지 않기 위해 손을 펼쳤다.

그러나 그곳에 소년의 이름은 없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소년은 대체 뭘 적은 거죠?”

“좋아해”

“네?”

“소년이 적은 글자야.”


소년의 작은 고백, 그 고백이 소녀가 달릴 수 있는 힘이 되어줬어. 소녀는 그때 깨달았대. 자신들이 사랑을 하고 있음을. 그래서 맹세했대. 별이 떨어져도 살아남겠노라고.


“어때? 이 이야기.”

“뭐라고 해야 할까... 말하신 대로 안타까우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감상은 그것 뿐?”


여우가면 소녀의 입꼬리가 움찔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정말 아름답고 안타까운 이야기. 그러나 이것 말고는 딱히 드는 생각이 없었다. 어딘가 그리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는 이 감정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기로 했다.


“소년과 소녀는 결국 만났나요?”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대.”

“안됐네요... 그래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시간이 되었어요.”


여우가면의 소녀는 싱긋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이 이야기가 실화라고 한다면, 넌 믿을래?”


그녀는 나를 시험하고 있다.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의미조차 모르겠는 이 질문에 정답이 있을까, 고민한들 정답이 나올 리 없는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소년과 소녀가 바뀌는 것도, 소년이 시간을 거슬러 올랐다는 것도, 현실이라면 믿을 수 없겠죠. 그래도 저는 당신을 믿겠어요. 그 이야기는 실화인가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소녀는 다시 한번 미소를 보여줬다. 그 미소는 만족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부정적인 감정이 포함된, 그런 미소라고 나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실화야.”


소녀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느낌이 느껴지던 그녀에게서 소름끼치는 기분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면서도,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도망치면 안 된다. 내 전신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이 이야기가 누구의 이야기인지 궁금하지 않아?”

“네? 그야 실화라면 궁금하죠.”


이런 꿈만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과연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비록 지금은 진짜 꿈이지만 말이다.


“이건 우리의 이야기야.”

“네?”


소녀는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미야미즈 미츠하”


소녀의 부름에 나는 어딘가 꺼림칙함을 느꼈다.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소름끼치는 기분이 들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건 우리의 이야기. 그리고 네가 모르는 이야기.”


소녀가 가면을 벗었다. 가면의 너머에는...


“이건 너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 나는 과거의 너야. 어때? 아름다우면서 안타까운 이야기의 주인공을 직접 만난 느낌은.”


고등학생 시절, 머리가 짧았을 당시의 내가 있었다.


“이런, 슬슬 시간이 다 됐네. 평소랑 다른 꿈이라서 조금 놀랐을 텐데. 이렇게 겁줘서 미안해. 그래도 이런 꿈, 어차피 눈을 뜨면 바로 잊어버리잖아?”

“너... 정말 나야?”


꿈이다. 아무리 꿈이라도 이런 꿈이라니, 그게 내 이야기라고? 꿈이지만 개꿈으로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그리운, 잊어선 안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 나는 너고 너는 나. 반가워. ‘시골소녀’.”


단발의 소녀, 과거의 나는 어딘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 표정을 알고 있다. 내가 찾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릴 때의 표정.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은 나보다 더 깊었고, 동시에 그리움의 미소가 살짝 녹아있었다.


“부탁할게. 비록 이 꿈은 잊어버리겠지만...”


그 소년을 찾아줘.





아침에 눈을 뜨면 웬일인지 울고 있다.




---------------------

단편] 링크 모음집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19525


장편] 너를 위해서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0874 (完)


장편] 네가 없는 3년 / 내가 없던 3년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0900 (完)


장편] 처음 온 이토모리 - http://gall.dcinside.com/yourname/409081 (完)


장편] 두 사람의 이야기 - http://gall.dcinside.com/yourname/982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