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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쓴 다른 글


   "너의 이름은." 2차창작 모음


※ Comment


   너의 이름은. 갤러리에 오고난 뒤 처음 쓴 팬픽입니다. 느갤 콘테스트가 진행되던 당시, 미츠하로 조각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다 떠오른 이야기입니다.




피그말리온(Pygmalion)

 

 

너 피그말리온이 누군지 알아?”

글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람인데,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가 주변에 없다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형의 조건을 모두 갖춘 여자의 모습을 조각했대. 그런데 그 조각상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그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지 뭐야.”

세상에…

그런데 더 재밌는 게 뭔지 알아? 그 사람이 살던 도시는 마침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여신을 섬기던 도시였어. 그래서 그는 여신을 기리는 축제일에 기도했대.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결혼을 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아프로디테는 그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줬고, 집에 돌아온 피그말리온은 차갑고 딱딱한 조각상이 아닌 따뜻하고 부드러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야.”

 


 

그는 더 이상 없다. 2013 10 4, 이토모리에 떨어진 혜성으로 인해 마을축제를 즐기던 수많은 사람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껏 경험했던 일체의 것들이 단순한 꿈이라고 생각했건만, 막상 마을에 도착했을 땐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산, 학교의 모습, 그리고 한없이 맑은 호수. 이라는 곳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꿈에서 본 그 마을이 더는 없다는 것, 그리고 나와 몸이 바뀌었던 미츠하라는 여자아이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만이 이 세계에 남았다.

 

도서관에서 찾아낸 희생자 명부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사지육신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근육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앞의 유리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영혼 일부가 도려져 나간 듯 마음 한쪽에 공허함이 생겼고, 그 틈을 타고 고통과 슬픔이 스며들었다. 어째서 나는 그때 괴로워했을까? 내가 미츠하를 사랑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몸이 바뀌는 기이한 현상에 어떤 의미부여를 해서였을까?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퍼지는 통증은 내 머릿속까지 침투하여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어른들은 이렇게 주체할 수 없는 고통이나 슬픔을 술로 잊어보려 한다지만 당시 미성년자였던 나는 그럴 수도 없어 아픔을 고스란히 품은 채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날의 충격의 여파로 나는 껍데기에 불과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토모리 마을에 다녀온 지 벌써 석 달이 지나 이제 가을학기에 접어들었으나, 내 마음은 아직도 공허로 일그러져 있었다. 얼굴을 직접 본 적도 없고, 함께 말을 섞어본 적도 없는 그의 죽음을 왜 내가 슬퍼하고, 그로 인해 내가 이리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봤다. 하지만 머리의 이성은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고, 내면의 감성은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계속 멍하니 지내고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건강 역시 나빠졌다.

 

결국, 아버지께서는 내게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을 권하셨다. 거의 한 달 동안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 꾸준히 다니면서 상담을 받아봤지만, 결국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최면치료를 받고 난 후에는 항상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사람처럼 울었다는 것 말고는 알아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도대체 나에게 어떤 존재였길래 내가 그를 찾아 그 먼 길을 떠났고, 그의 죽음이 나의 모든 것을 어지럽혔는지 나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가을과 함께 단풍나무는 붉게 물들었고 나뭇잎은 스산한 가을바람과 함께 사뿐히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붉게 핀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예쁜 낙엽을 주우며 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 세계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을 하늘처럼 순수한 즐거움 혹은 행복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풍경과 현상들은 나에겐 소멸, 죽음만을 연상시켜줄 뿐이었다. 차디찬 가을바람은 내 마음속의 공허함을 뚫고 지나갔으며, 낙엽을 쓸어내는 빗자루 소리는 내 몸속 세포를 하나하나 벗겨내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평소 열정이 넘치고 활력이 샘솟던 내가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겪자 주위 친구들은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노력이나 도움도 내 상태의 개선에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하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두 중학생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두 녀석의 이야기를 듣던 중,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너 피그말리온이 누군지 알아?”

글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람인데,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가 주변에 없다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형의 조건을 모두 갖춘 여자의 모습을 조각했대. 그런데 그 조각상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그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지 뭐야.”

세상에…

그런데 더 재밌는 게 뭔지 알아? 그 사람이 살던 도시는 마침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여신을 섬기던 도시였어. 그래서 그는 여신을 기리는 축제일에 기도했대.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결혼을 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아프로디테는 그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줬고, 집에 돌아온 피그말리온은 차갑고 딱딱한 조각상이 아닌 따뜻하고 부드러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야.”

 

아마 이때부터 내가 조각이란 것에 여우에 홀린 사람처럼 집착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빌빌대던 아들이 갑자기 눈에 생기를 띄며 조각을 배우고 싶다고 하니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하셨다. 덕분에 나는 조각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건축설계나 그림과 달리 조각은 내가 구상하는 대로 작품이 바로 나오는 장르가 아니었다. 덕분에 실패도 여러 번 하고, 때로는 큰 실수로 인해 선생님께 꾸중을 듣기도 했지만, 조각을 배우는 것은 나에겐 너무나도 큰 행복이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신화의 이야기처럼 실제로 미츠하의 조각상과 결혼한다는 상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녀의 모습을 두 눈으로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희망 하나만을 가지고 나는 조각을 배워 나갔다.

 

 

조각을 배운지 3, 이제는 내가 원하는 형상을 구상하고 파낼 수 있는 수준에 올랐다. 드디어 미츠하를 이 세상에서 만날 기회가 온 것이다.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을 모두 커다란 대리석을 사는 데 쏟아부었다. 눈앞에 있는 재료에 미츠하의 형상을 투영하기만 했을 뿐인데도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3년이란 인고의 시간. 정말 여러 고생을 하며 조각을 배웠고 이제는 그와 나의 만남이 현실화되는 운명적인 순간이 시작된 것이다.

 

조각하는 데 방해되는 요소가 없도록 나는 주인이 파산하여 버려진 허름한 아틀리에를 헐값에 샀다. 조각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도구들을 갖추고는 두 번 그리고 세 번 점검했다. 조각을 시작한 순간부터 끝이 나기 전까지는 이 아틀리에를, 아니 조각상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었다. 시각을 알게 되는 순간 내 작업시간을 자연스레 계산하고 이는 결국 쉬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작업실 벽에 걸려있던 허름한 시계는 밖에 내다 버렸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태양 빛 역시 시각을 간접적으로 알려줄 수 있어서 창문은 모두 검은 페인트로 칠했으며 무의식중에 창문을 여는 것조차도 막기 위해 창문을 나무판자로 막아버렸다.

 

사실 나도 내가 어떻게 미츠하의 모습을 알고 조각을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3년 전의에서 본 그의 모습은 전혀 머릿속의 기억으로는 남아있지 않다. 다만, ‘에서 내가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느낀 그에 대한 감각만으로 조각을 이어 나갔다. 당시에 그는 절대로 자기의 몸을 보거나 만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나는 그의 몸을 구석구석 만져봤다. 그의 얼굴, , 다리부터, 가슴과 사타구니까지. 어떻게 보면 내가 치한이나 변태가 아니냐는 비난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 경험이 아니었다면 과연 내가 조각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다소 변태적인 행동에 대해 미츠하에게 약간의 미안한 감정이 있기도 하지만, 그 행동이 지금 이 순간 진행되는 그의 부활의식을 가능케 한 유일한 단서임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미츠하가 나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조각을 시작한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식사를 거른 지 꽤 됐지만 배고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대리석을 깎고 파고 다듬으면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미츠하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조각이 70% 정도 완성된 이후부터는 몸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뜬 채로 오래 집중하다 보니 눈에 강한 통증이 몰려왔다. 계속해서 서서 조각하느라 다리 근육은 터질 것같이 아팠고, 몇 차례 도구를 잘못 사용하는 바람에 손에도 수많은 상처가 생겼다. 주변 공기는 환기되지 않아 대리석 가루가 낡은 아틀리에의 먼지와 뒤섞여 풀풀 날아다니며 눈과 기관지를 자극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때의 나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과 함께 미츠하가 자신을 어둠으로부터 구원해달라는 환청이 피곤함에 찌든 몸을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다.

 

조금만 더,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6년 전, 마을을 파괴한 혜성으로 인해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미츠하가 다시 한 번 이 세상에 형태를 지닌 채 부활하는 위대한 순간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었다. 최종 마무리 작업을 하는 도중, 주변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처음에는 정전인 줄 알았다. 갑작스러운 어둠에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눈이 어둠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두꺼비집을 찾아 차단기를 올리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눈이 어둠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당황한 마음에 나는 어둠 속에서 벽을 더듬어가며 밖으로 나가보았다. 하지만 내가 직면한 현실은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작업환경 주변의 먼지와 쉬지 않고 작업한 탓에 눈에 문제가 생겼다. 일분일초가 아쉬웠던 나는 당장 염원하던 존재의 부활의식을 마무리 지을 수 없다는 괴로움에 울부짖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벽을 더듬어가며 다시 조각상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조각의 마무리를 짓기 위해, 미츠하를 다시 이 세계로 불러오기 위해. 죽음으로부터 그를 다시 꺼내오기 위해.

 

마침내 조각상을 완성했다. 비록 조각상이 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미츠하는 마침내 죽음을 초월하여 이 세계에 되돌아온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나는 조각상을 끌어안고 입술을 맞추었다. 그녀의 몸은 딱딱하고 입술은 차가웠다. 이내 보이지 않는 내 눈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완성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도 있지만, 그의 부활이 완전한 부활이 아니라는 것, 내 앞의 미츠하는 나와 함께 감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눌 수 없는 돌덩어리라는 사실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했다. 그제야 나는 미츠하의 죽음이 내게 무슨 의미로 다가왔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랑이었다. 미츠하의 죽음은 기이한 운명으로 서로 연결된, 운명의 끈이 매듭지어준 나의 다른 반쪽의 죽음이었다.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유지해 온 긴장이 한순간에 풀려서였을까? 이토모리 마을 근처의 도서관에서 느꼈던, 내 몸의 모든 기운이 증기가 되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다시 한 번 왔다. 나는 내 정신이 아직 온전할 때 하나의 소원을 빌었다.

 

“아프로디테님, 당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피그말리온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미츠하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세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이 따뜻했다. 눈에 빛이 다시금 들어오는 걸 보니 앞이 보이지 않던 것은 눈이 너무 피곤해서 발생한 작은 사고였나 보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내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이 세계는 주변의 따뜻함과 밝은 빛줄기뿐이었다.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내게 무언가 다가왔다. 나는 그것, 아니 그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미츠하였다. 내가 그렇게 사랑하고, 그래서 부활을 꿈꿔왔던 그 미츠하였다. 따스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미츠하 역시 나를 보고는 울고 있었다.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싶었으나 너무 피곤해서인지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목청껏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끅끅대는 소리 말고는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내 품에 들어왔다. 미츠하를 끌어안고 입술에 입을 맞춰보았다. 부드럽고 따스했다. 그녀는 더는 딱딱하고 차가운 조각상이 아닌, 피가 흐르고 따스한 체온을 가진 사람이었다. 비록 말은 할 수 없었지만, 그와 함께인 이 순간만큼은 내 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비록 염치없었지만, 나는 새로운 소원을 하나 더 빌었다. 마치 꿈과 같은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다음 뉴스입니다. 교외의 한 아틀리에에서 젊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시신 옆에는 한 여성의 조각상이 있었으며, 죽은 남성은 상을 끌어안은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죽은 남성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안타까움이 배가 되고 있습니다. 경찰은…”

 

- 피그말리온(Pygmalion),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