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6월 1일 새벽 2시 55분경, 해군 경비정이 추자도 서남방 10마일 부근에서 40노트 속력으로 달아나는 북한 간첩선을 발견함.
해당 간첩선은 최고 속력 40노트에 70t급 고속정으로, 14.5mm 대공포와 7.62mm 대공포를 달았고, 나중에 대간첩작전본부가 추정하기로는 공비가 15명에서 17명이 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함.
이 간첩선은 무장공비 성낙오를 남해안에 침투시키기 위해 5월 17일 남포시에서 출발해 산동반도 석도만에서 급유를 받고 6월 1일 성낙오를 침투시킨 다음 북으로 귀환하는 중이었음.
해군 경비정은 간첩선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공군에 지원을 요청함.
하지만 어두운 새벽에 구름과 안개가 잔뜩 끼어 지원 요청을 받고 온 공군 T-33기와 해군은 새벽 3시경에 빠르게 달아나는 간첩선을 놓치게 됨.
간첩선을 그렇게 놓치게되나 싶었던 새벽 4시, 지원온 C-46 수송기가 조명탄을 터트리며 간첩선을 다시 포착하게 됨.
이날 기상이 최악이었던 관계로, 간첩선 추적이 힘들자 C-46기는 대공포에 맞을 위험을 감수하고 상공 200m 높이에서 저공비행하며 끝까지 간첩선을 쫓아가며 조명탄으로 시계 지원을 함.
간첩선도 필사적으로 도주하며 대공포를 쏴댔는데, T-33기도 조ㅏ익에 대공포탄 두 발을 맞아 기지로 복귀해야 했음.
그러나 C-46기는 계속 조명탄을 투하하며 간첩선을 계속 추적함.
그렇게 오전 5시 50분, 지원온 F-5A 편대가 3시간에 가까운 추격 끝에 로켓포를 간첩선에 명중시켰고, 오전 6시 15분(5시 55분이라는 보도도 있음) 쯤 간첩선은 소흑산도 서남방 약 60마일 지점에서 침몰해버림.
하지만 간첩선이 마지막 발악으로 동귀어진이라도 한 것처럼, C-46기는 "적선완전침몰"이란 무전을 끝으로, 이날 기지로 복귀하지 못했음.
C-46기의 잔해를 찾은 것은 간첩선 침몰 이후 5일만인 6월 6일이었음.
C-46기는 간첩선을 쫓아가면서 조명탄을 투하하다가 간첩선의 대공포화에 당해 격추당했고, 고도가 200m밖에 되지 않았던만큼 추락 당시 승무원 모두 탈출하지 못하고 전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당시 C-46기에 조종사 송인영 소령(향년 37세)을 포함해 총 8명이 탑승하고 있었고, 송소령은 58년 공군 소위로 임관해 월남전에 참전해서 무공훈장까지 받았던 베테랑이었다고 함.
한편, 간첩선을 타고 침투했던 성낙오는 6월 14일에 자수함.
본래 남한 광주 출신으로 전쟁 중 월북한 남로당계였던 성낙오는, 전남 내 지하도당 확대와 미군철수 관련 첩보를 수집하란 지령을 받고 6월 1일에 남해안에 침투했었던 거였음.
그런데 자기를 태워줬던 간첩선은 터져버렸고, 포섭하려 했던 광주시청 공무원 친구는 되려 자수를 권하고, 남한에서 다 숙청당한줄만 알았던 가족들이 모두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성낙오는 당국에 자수해버림.
사건 이후 국방부는 C-46기의 승무원 8인 모두 일계급 추서하고 송소령은 을지무공훈장을, 부조종사 장서입 소위는 충무무공훈장을, 나머지 6인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함.
순직한 승무원들의 합동영결식은 6월 9일 공군대구기지에서 치뤄졌음.
여담으로, 간첩선을 격침시켜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F-5A 조종사가
나 눈물나네
^^7
윤님..
그프사
T-33
아늦었다
스프라우트 약점이나 찾아내
스프라이트 5박스나 처먹어라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