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마사에게 있어서 궁술(=삶)이란, 화살을 날려보내는 행위이다
짧게 요약하자면, 하루마사가 생각하는 삶이란 쏘아진 화살과도 같아서
다른 누군가에 의해 쏘아져(탄생), 언젠간 땅에 떨어질 운명이 정해져있지만(죽음),
그 한정된 비행이라도 가치가 있다 믿고 고군분투중이라고 생각했고
하루마사의 스승이 생각하는 삶이란, 화살이 아니라 궁사와도 같아서
궁사가 화살을 쏘아내는 그 순간, 어느 과녁을 향해 어떤 의지로 자신의 삶(=화살)을 쏘아내는 것이
바로 궁술(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라는게 요지였는데
다른 겜 커뮤니티에서 우연찮게도 정답을 찾아버렸네
하루마사 스승이 말하는게 하이데거 철학이었음
피투된 삶에서, 너의 삶을 스스로 던지는(화살을 쏘아내는) 바로 그 순간, 그 선택의 순간이 삶의 정수이다.
기투의 개념을 모른채로 대충 비슷하게 맞춘걸 칭찬해야할까,
그런거 모르는 사람한테도 이해시키는 스토리 짠 작가를 칭찬해야할까?
아니면 이런 스토리 쓸줄 알면서 아스트라 에피 같은 개쓰레기 같은 메인스 뽑는 작가진이 개놈들인걸까?
말 좀 덧붙이자면 순서가 좀 다른데 기투가 죽음으로의 기투라기보다는 죽음을 마주함으로써 기투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거임 남들이야 죽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니 죽음을 생각할 겨를도 없고 죽음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하루마사의 삶은 늘 죽음과 가까우니까 지금 여기에서 나를 날려 보내는 바람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그리고 저 글은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비약이나 생략의 정도가 큼 그냥 실존 철학이 이렇구나 하면서 보셈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난 그동안의 하루마사는 아직 기투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라고 봤음. 하루마사가 죽음을 직시하고는 있지만, 그에 순응하고 자포자기식 태도를 갖고 있으며, 선택의 순간에서 능동성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다만 병 터져서 쓰러졌다가 '아직 해야할일이 있어'라며 일어난 순간 처음으로 삶을 내던져 선택하는 기투를 시행한거고, 그때 궁술의 정수를 처음 깨달은거라고 생각
스승의 삶은 그야말로 기투의 연속이었는데, 칭송회로부터 도망치며 치료제를 개발하고 하루마사에게 전달한다는, 그야말로 내가 정한 미래상을 위해 나의 삶을 죽음과 가장 가까운 경계까지 내던지는 능동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 심지어 하루마사 만나기 전 칭송회에 들어간 신념도 뭐... 하루마사는 자신이 살아난게 그냥 행운이 아니라 스승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임을 알고 진정 깨달은게 아닌가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