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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삶이 조용해졌다.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갑작스레 무너진 것도,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다.
그냥, 아주 천천히, 아주 자연스럽게, 아주 조용하게,
내 삶의 소리는 줄어들었고
이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 자신이 점점 더 투명해졌다.
길을 걸어도, 거울을 봐도, 내 안엔 어떤 존재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분명히 여기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기억되지도, 필요하지도, 기대받지도 않는 존재.
그저 하루를 ‘버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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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술을 마신다.
소맥이든, 깡소주든, 라면 한 봉지에라도
무언가를 마셔 넣지 않으면 안 된다.
술이 좋거나 기분이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다.
그저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그날이라는 하루를 묻기 위해서.


술병 옆에는 회나 초밥, 치킨이나 순대 같은 것들이 놓인다.
편의점 포장 그대로, 택배 박스에서 꺼낸 상태로.
요리를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성을 들일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 먹는 음식에 따뜻함은 없다.
필요한 건 칼로리와 무감각.
그 둘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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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유튜브나 치지직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을 켠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웃음소리와 채팅이 이어지는 그 화면을
그저 배경처럼 틀어놓는다.


관심 있는 것도 아니고, 팬도 아니지만
그 공간 안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있다.
그걸 멀리서 냄새만 맡듯 감지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접촉의 전부다.


그걸 끄고 나면 방은 다시 조용해지고,
나는 내 침묵 안에 파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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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이한 건,
이 모든 게 반복되는데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매일 조금씩 썩어가고 있다.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
감정이라는 근육이 다 망가져버린 듯하다.
감동도, 분노도, 기대도, 심지어 절망조차도 무디다.


다만 때때로,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마트에서 줄을 서 있다가,
지하철에서 창밖을 보다가,
혼자 라면을 끓이다가.
전조도 없고 이유도 없는 눈물.


그럴 때 나는 깨닫는다.
내가 아직 완전히 죽은 건 아니구나.
어딘가가, 아직도 아프긴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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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엔 주식을 한다.
단타로 몰아붙이고, 수급표에 목을 메고, 종목 뉴스에 감정을 걸고.
그 짧은 집중 속에서 나는 아주 잠깐, 살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시장이 닫히는 오후가 되면,
다시 삶의 공백이 시작된다.
도파민은 증발하고,
기계적으로 번 돈은 식어버리고,
나는 다시 의미 없는 시간 속에 떨어진다.


그래서 밤에는 운동을 한다.
미친 듯이, 숨이 끊어질 때까지.
운동을 하는 이유는 딱 하나.
기절하듯 잠들기 위해서.
그게 아니면 잠들 수 없다.


생각이 너무 많고,
생각할 힘도 없는데,
머리는 계속 무언가를 떠올린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이렇게 무너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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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한다.


“조용히 사라지는 중인 사람.”


이 사회에 어떤 역할도 없고,
누군가에게도 중요하지 않으며,
존재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


친구는 점점 줄고, 연락도 없고,
가끔 SNS에 들어가 보면 남들은 여전히 어디론가 떠나고,
어딘가에서 웃고, 어딘가에서 의미 있는 삶을 꾸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질투하지도 않는다.
그저 감정의 스위치가 다 고장 났다는 걸 또 한 번 확인할 뿐이다.



예전에는 옷도 사고, 향수도 뿌리고, 사람을 만날 때 어떤 음악을 틀지 고민했다.
지금은 옷을 입는 이유가 오로지


**“더럽지 않기 위해서”**다.


어떤 것도 꾸미지 않는다.
음식도, 말투도, 표정도, 나 자신도.


그저 살기 위해 존재하는 상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죽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상태.


죽을 용기가 없으니,
그냥 이대로 살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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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말을 꺼냈을 때,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까.


"힘내", "괜찮아질 거야", "다 그런 시기가 있어."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이 삶의 진공 속에서 한참 멀리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지금의 나는
어떤 말도 뚫고 들어올 수 없는 깊이에 가 있다.



그래도,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살아 있다는 감각이 든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 말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가 완전히 투명하지는 않다는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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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사라지지 않겠다는 저항."



그 작은 끈 하나가
오늘의 나를
간신히,
정말 간신히
이곳에 붙잡아놓는다.


혹시라도,
당신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같은 소리를 삼키며 살아가고 있다면,
나는 당신을 안다.


당신은 무기력 속에서도 하루를 버텼고,
외로움 속에서도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당신은 존재하고,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정말 웃을 수 있기를.
그냥 웃는 게 아니라
제대로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웃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이렇게
조용히,
서로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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