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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邑菫:唯一向韩飞的日本候鸟羽翼渐丰

仲邑菫:唯一向韩飞的日本候鸟羽翼渐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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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셰루이(谢锐) 보도


20세 이하 기사들이 참가하는 제한 기전인 한국 제2회 국토정중앙배 천원전이 막을 내렸다. 일본 출신의 나카무라 스미레 4단이 정준우 3단을 상대로 184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2025년 한국으로 이적한 이후 스미레는 급성장하며 남녀 통합 대회에서 4연승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9년생인 나카무라 스미레는 나카무라 신야 9단의 딸로, 바둑계에 공식 데뷔한 날부터 일본 바둑계의 초점이 되었다. 일본 기원이 창설한 '영재 특별 채용 추천 기사' 제도는 사실상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승단 대회를 거치지 않고 고수들의 심사를 통해 직접 입단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그녀는 10세의 나이로 프로 초단이 되었고, 이후 13세 11개월에 일본 여류기성(女流棋聖) 타이틀을 따내며 '바둑계의 레이와 시대 여주인공'이라 불렸다.


바둑계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스미레가 설령 일본 바둑계에 계속 머물렀더라도 앞날은 분명 탄탄대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2024년 3월, 그녀는 일본 기사 중 최초로 한국 기원으로 이적하는 선택을 했다. 이는 오랫동안 중·한 기사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발전하던 수십 년간의 '정석'을 홀로 뒤바꾼 행보였다.


중국이 바둑의 친모라면, 일본은 명실상부한 바둑의 양모다. 바둑은 일본에서 강성해졌고, 이를 통해 다시 중국으로 환원되었다. 민국 시대의 우칭위안(吴清源)이나 신시대의 천쭈더(陈祖德), 녜웨이핑(聂卫平)을 막론하고, 바둑에서 성취를 이루고자 했던 이들의 첫 번째 선택지는 예외 없이 일본이었다. 녜웨이핑이 두각을 나타냈을 때, 우칭위안은 그에게 일본으로 건너와 공부할 것을 강력히 권유하며 자신의 집에 머물면서 밤낮으로 수담을 나눌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을 만큼 인재를 아꼈다.


일본 기원의 프로 기사 명단에는 중국과 한국 출신의 외국인 기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린하이펑, 조치훈, 왕리청, 왕밍완, 류시훈, 장쉬, 쑤야오궈, 쿵링원, 쉬자위안 등은 과거 일본 바둑의 강성함과 프로 바둑이라는 산업을 지탱해 온 깊은 저력을 입증한다. 그러나 2005년 이후 일본 기사들이 세계 대회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면서, 처음에는 경기 수준의 하락과 훈련 방식의 낙후가 드러났고, 이제 프로 기사의 자녀인 스미레가 '역방향'으로 한국행을 택한 사건은 일본 바둑의 근간이 이미 허약해졌음을 보여주는 치부를 완전히 드러낸 셈이 되었다.


한국 기원에 합류한 후, 스미레는 대국 수와 성적 모두에서 탈바꿈했다. 2025년 그녀는 총 131판의 대국을 소화하며, 천재 소녀 김은지 9단(141판)에 이어 전체 2위를 기록했다. 성적은 83승 48패, 승률 63%였다. 그해 한국 바둑계에서 연간 대국 수가 100판을 넘긴 기사는 총 9명이었다. 반면 일본 여자 바둑의 강자인 우에노 아사미 6단과 후지사와 리나 7단의 대국 수는 각각 77판과 73판에 불과했다. 2025년 말, 스미레는 와일드카드로 제1회 세계기선전(世界棋仙战)에 참가해 1회전에서 일본의 고세이(碁聖), 주단(十段) 타이틀 보유자였던 쉬자위안 9단을 꺾기도 했다.


2026년, 스미레는 한국 U20 기전인 천원전에서 남자 기사 4명을 연달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위즈잉(2014년)과 저우훙위(2019년)가 각각 신인왕전에서 우승했던 것에 비견될 만한 성과다. 그녀는 또한 제2회 한국 폭설 오픈(暴雪公开赛) 4강에 진출해 김채영 9단과 맞붙게 된다. 여기서 승리할 경우, 이창호 9단 VS 최정 9단 승자와 결승에서 맞붙는다.

이 모든 것은 2024년 스미레 부모의 대담한 결정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 결정의 전제는 일본 프로 기사인 나카무라 신야가 오늘날 한·일 바둑 중 누가 앞서가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스미레의 성적은 당시 그들의 결정이 얼마나 현명했는지를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