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0f719bc8a6af620b5c6b011f11a3935b0da3a785b6f0f


2007년 5월, 5교시 도덕 시간의 공기는 선선하고 나른했다. 


선풍기는 먼지를 날리며 왱왱 돌아가고, 칠판 앞 선생님의 분필 소리와 섞여 묘한 최면제가 되었다.


 나는 교복 셔츠 왼쪽 소매 안으로 이어폰 줄을 정성스럽게 밀어 넣었다. 


줄은 팔꿈치를 지나 손목 틈새로 살짝 빠져나왔고, 나는 턱을 괴는 척하며 그 이어폰 알을 왼쪽 귀에 밀착시켰다.


주머니 속 '아이리버'에서는 에픽하이의 'Fan'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게로 와서 나의 인형이 되어줘"라는 가사가 날카로운 비트 위에 얹힐 때마다, 나는 창밖의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사실 밖을 보는 척하며, 내 시선의 끝은 대각선 앞자리에 앉은 그 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애는 반에서 가장 평범한 듯하면서도, 웃을 때 반달이 되는 눈이 유난히 예쁜 아이였다. 


나는 3월 입학식 때부터 지금까지, 딱 두 달 동안 그 애를 지켜만 보았다.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지는 오후, 그 애는 책상에 살짝 엎드려 친구와 무언가 속삭이고 있었다. 


빳빳하게 풀이 죽은 흰 블라우스 위로 겹쳐 입은 남색 교복 니트 조끼. 


그 얇은 천 너머로 비치는 그 애의 가녀린 어깨선에서 나는 차마 눈을 뗄 수 없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아주 미세하게 들썩이는 그 어깨에 난 왠지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갔다. 


셔츠 깃 아래로 살짝 드러난 뒷덜미의 잔머리까지, 그 애의 모든 실루엣이 나에게는 세상의 전부였다.


내 MP3 속 '즐겨찾기' 폴더에는 빅뱅의 'Dirty Cash'나 원더걸스의 'Irony' 같은 최신곡들도 있었지만, 혼자 있을 때면 자꾸만 손이 가는 노래들은 따로 있었다.


 프리스타일의 '수취인불명', 그리고 아이비의 '이럴거면'. 특히 양파의 '사랑.. 그게 뭔데'가 흐를 때면, 나는 소매 속으로 숨긴 이어폰을 더 깊숙이 귀에 밀어 넣었다.


그때였다. 엎드려 있던 그 애가 고개를 돌려 나를 향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텅 빈 운동장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뛰었다. 이어폰 너머로 들리는 노래가 심장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야, 뭐 듣냐? 나도 한 쪽만."


짝꿍놈이 눈치 없이 내 소매 속 줄을 건드리려 했다. 나는 당황하며 팔을 치웠다. "아, 건드리지 마. 줄 빠진단 말이야." 


나는 주머니 속 MP3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턱을 궤었다. 이어폰 너머로 들리는 노래 가사가 꼭 내 마음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그날 저녁,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끝나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가방 안에는 묵직한 PMP가 들어있었다. 


어제 밤새 컴퓨터로 파일구리에서 ‘데스노트'나 ‘강철의 연금술사' 같은 애니메이션들을 다운로드해 놨지만, 오늘은 도무지 재생 버튼에 손이 가지 않았다

머릿속엔 온통 수업 시간 중간에 슬쩍 보였던 그 애의 뒷모습뿐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컴퓨터를 켜고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접속했다.


 그 애의 주소는 이미 '즐겨찾기'에 등록되어 있었다. 


오늘도 그 애의 투데이는 50을 넘어가고 있었다. '역시 나 말고 좋아하는 사람 많겠지? 인기 많네...'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이어리를 클릭했다.


[오늘 도덕 시간... 너무 졸렸어 ㅜㅜ 필기 하나도 못 함 ㅠㅠ 누가 좀 보여줘!]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필기? 나는 오늘따라 웬일로 졸음을 참고 적어 내려갔던 노트를 떠올렸다. 


글씨는 엉망이었지만 내용은 다 있었다. '내가 보여줄까?'라는 말을 쳤다 지웠다 했지만, 결국 일촌평 한 줄 남기지 못한 채 로그아웃을 했다.


다음 날 아침, 1교시 시작 전 교실은 시끌벅적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PMP로 애니메이션 리스트를 훑었지만 눈은 자꾸만 뒷문을 향했다. 그 애가 들어왔다. 오늘은 하얀색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그 애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믿기지 않게도 내 자리 쪽으로 걸어왔다.


"저기... ."


그 애의 목소리에 나는 하마터면 PMP를 떨어뜨릴 뻔했다. 이어폰을 급하게 빼며 어리버리하게 대답했다. "어, 어? 왜?"


"너 어제 도덕 시간에 안 졸고 필기 다 하더라. 나 아예 못 적어서 그러는데... 혹시 노트 좀 보여줄 수 있어?"


그 애의 눈이 가까이서 보였다.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그 애에게 들릴까 봐 겁이 날 정도였다. 나는 서둘러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아, 이거... 글씨가 좀 개판인데. 괜찮으면 봐."


"와, 진짜 고마워! 나 점심시간 전까지 쓰고 줄게."


그 애는 환하게 웃으며 내 노트를 챙겼다. 그러다 내 책상 위에 놓인 PMP 화면에 떠 있는 《데스노트》 파일 이름을 발견한 듯 눈을 반짝였다.


"어? 너 데스노트 봐? 나 이거 진짜 보고 싶었는데!"


"어... 어제 파일구리에서 좀 받아봤어."


"대박. 나 나중에 야자 시간에 그것 좀 같이 보여주면 안 돼?"


그 애는 내 대답도 듣기 전에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야자 쉬는 시간에 같이 보자. 약속!"


그 애가 제자리로 돌아간 뒤,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드디어 약속한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왔다.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감독 선생님의 구두 소리가 멀어지자마자, 내 책상 옆으로 그 애의 의자가 드르륵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자, 약속한 거. 지금 보자."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 깊숙이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