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여름, 태풍이 연속으로 찾아오며 조선에 엄청난 폭우가 내림. 일 평균 강수량이 무려 300mm였음.
1차/2차 피해 때는 경기도의 한강변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3차에는 평안남북도의 대동강/청천강/압록강이,
4차에는 경상남도/전라남도의 낙동강/섬진강/영산강이, 전라북도의 만경강이 큰 피해를 입음.
2차 피해 이후 한강변의 침수 지역.
당시 경성의 사대문안 시가지 직전까지 물이 차올랐음.
심지어 당시 기사를 보면, 남대문 앞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함.
당시 용산와 암사.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며, 서울과 경기의 도시기능 및 교통은 완전히 마비되었음.
심지어 한강철교가 유실되어 전국 교통망이 완전 마비됨.
저 철교가 없으면 경성으로 진입이 불가능하며,
당연히 그 이북의 황해/평안/함경도와의 교통길도 막히고, 중국을 통해 대륙으로 가는 철길도 막힘.
즉 일본제국 전체의 교통에 영향을 주었음.
피해액이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달했고, 총독부는 복구 때문에 꽤 고생하게 됨.
그러나 이 홍수는 이후 상당한 영향을 주었는데
우선 잠실섬 북부의 신천강이 사실상 도보로 건널 수 있는 건천이었다가 여기에 물이 흐르게 되어 완전한 강이 되어버렸음.
강북권이었던 잠실섬은 완전히 강물이 고립된 낙도가 되어 버림.
이는 50년 후 잠실을 개발할 때 잠실이 기존의 강북이 아닌 강남이 되는 계기가 됨.
더불어 당시 서울과 경기동부 및 충주권의 길목으로 번성했던 송파나루는 완전히 쓸려나가 폐허가 되었고
50년 후 강남 개발 이전까지 잊혀진 서울의 외괵 동네로 전락함.
더불어 총독부가 이후 안양천을 대규모로 정비하고 물길을 바꾸면서
양천권이었던 양평동이 안양천의 서쪽이 되어 영등포권으로 편입되었음
또한 영등포의 경성부 편입이 지연되어 1936년에 이루어지게 됨.
가장 대표적인 사안은
이 홍수로 인해 암사리 유적이 발굴되어 우리가 아는 빗살무늬 토기 등을 알 수 있게 되었고
풍납토성의 서쪽 벽이 유실되면서 수많은 유물들이 나왔다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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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래서 경인운하가 고려때부터 처음 시도됐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