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경성 지하철도
1939년에 입안된 계획.
당시 경성은 이미 교통 포화 상태였으며, 특히 동경성과 경성 중심부의 교통이 미비하여 여러 문제가 터져나오던 상태였음.
비용절감을 위해 청계천 물을 빼고 그 자리에 철도를 놓아 경성역에서 동대문역을 연결하고, 동대문역부터 청량리역까지는 고가철교로 건설한다는 계획이었음.
동시에 청계천 자리에 지하철을 만들고 그 위를 덮어 도로로 만들어서 도로교통 포화 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계획이었음.
1960년대 초 윤치영 시장 시기 서울 지하철 계획.
서울 도심기능을 6개 부도심(영등포, 강남, 천호, 망우, 숭인, 은평)으로 분담하기 위한 방사형 지하철 노선 계획.
1960년대 후반 김현옥 시장 재임기 계획
종로 구간을 지하철로 짓고, 나머지는 방사형의 SS트램 4개 노선을 짓는 것.
1970년대 초반 양택식 시장 재임기 계획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이 지하철을 짓는 것을 확정시켰음.
특히 1호선을 경부선과 연결하여 수원까지 연장하여, 수도권을 수원/안양까지 확대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음.
이 중 1호선까지 완성된 후, 1호선 개통일에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이 일어나며 양택식 시장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남.
1970년대 후반 구자춘 시장 재임기 계획 (최종)
구자춘 시장은 양택식 시장 재임기 계획을 대폭 수정했음.
대표적으로 2호선을 순환선으로 변경하였으며, 3/4호선도 대폭 변경됨.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 ‘서울은 사대문인/여의도/영동 세 개 도심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3핵도시론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강남을 적극적으로 키우기 위함이었음.
2호선부터는 이 노선으로 지하철이 건설되었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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