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대 조선에서,
세도정치기의 문벌 가문들은 국제정세에 대해서 별반 지식, 관심, 대책이 없었고,
이들의 대외관은 중화사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외부 문화를 전부 오랑캐의 문화로 보는 그것이었다.
이는 명나라의 멸망 이후 조선을 '우월한 중화 문명의 유일한 계승 국가'라는 '소중화(小中華)'론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소중화론은 거슬러 올라가면 명나라의 멸망 이후 노론의 수장인 송시열이 북벌을 외치면서 제기된 것이 본격적인 소중화론의 시작으로,
중국의 정통 왕조인 명나라를 계승한 것은 오랑캐인 청나라가 아니라 바로 조선이라는 논리였다.
이는 송시열의 제자들이 만동묘를 세운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만동묘는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즉, 이제 중원에서 유일한 문명이었던 중화가 파괴되고 야만적인 오랑캐가 들어섰지만, 그들은 정통이 아니며 조선만이 유일하게 중화(문명)의 정통을 이었다는 선언이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미루어 볼 때, 소중화론과 고종대의 개혁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명나라의 멸망과 북벌론
즉, 인조와 효종 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세도정치기의 문벌 가문들은 국제정세에 대해서 별반 지식, 관심, 대책이 없었고,
이들의 대외관은 중화사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외부 문화를 전부 오랑캐의 문화로 보는 그것이었다.
이는 명나라의 멸망 이후 조선을 '우월한 중화 문명의 유일한 계승 국가'라는 '소중화(小中華)'론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소중화론은 거슬러 올라가면 명나라의 멸망 이후 노론의 수장인 송시열이 북벌을 외치면서 제기된 것이 본격적인 소중화론의 시작으로,
중국의 정통 왕조인 명나라를 계승한 것은 오랑캐인 청나라가 아니라 바로 조선이라는 논리였다.
이는 송시열의 제자들이 만동묘를 세운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만동묘는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즉, 이제 중원에서 유일한 문명이었던 중화가 파괴되고 야만적인 오랑캐가 들어섰지만, 그들은 정통이 아니며 조선만이 유일하게 중화(문명)의 정통을 이었다는 선언이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미루어 볼 때, 소중화론과 고종대의 개혁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명나라의 멸망과 북벌론
즉, 인조와 효종 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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