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잘 됐으면 좋겠어서 내가 전에 쓴 글을 올릴게.


그냥 생각나는대로 막써서 누구에게 쓴 글인지도 모르곘어. 잘봐줘잉 






불행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내 삶은 세상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로 생각하기에는 충분히 불행했다.

잘 커왔고, 대부분을 배우며 썩 나쁘지 않게 살아왔다.

 

하지만 유년시절 돈이 적게 쓰며 살아온 나는 일반전인 사람들과 다른 점은 분명히 있었다.

 

나는 내 생일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친구의 생일 또한 축하할 수도 없었으며, 남들의 생일은 나에게 과분하고도 어떻게해야할지 몰라 마음이 불안한 날이었다.

 

나는 친구의 생일이 오면, 축하한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마저도 선물이 없는 축하는 없어 보인다는 생각에 축하한다는 말 마저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친구의 생일이 SNS에 뜨면 휴대폰을 숨기기 일쑤였다.

그러한 행동들 때문에서일까, 내 생일 마저도 마주보지 못하게 되었다.

 

주지 못하니 받는 걸 포기했고, 남의 생일이 싫으니 내 생일 마저 싫어졌다.

 

남의 생일이 싫은 만큼 배로 내 생일이 싫었다.

 

친구의 생일의 소식이 들려올 때 마음으로는 축하해줬다면, 내 생일이 다가오면 마음속도 생일이라는 사실이 미워졌다.

 

SNS에서 내 생일이 뜨지 않길 원했고, 보지 않길 원했다.

 

사실 그럼에도 나를 축하해주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친한 친척들, 친구들, 선생님, 어른들.

 

많진 않지만, 분명히 나를 응원했고, 진심으로 좋아했으며, 정말로 축복헀다.

 

하지만 나는 나의 생일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내 생일에 줄 수 있는 내 행복은 없었다.

 

남들의 생일에 당연한 축하를 못해주니, 나도 받으면 안되는 거였다.

 

나는 친구처럼 자신의 생일을 알리며 선물을 원하는 행동은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안됐다.

 

조용하게, 또 정적으로 생일이 지나가길 빌었다.

 

다른 날, 어째서인지 지금까지 친구들과 생일을 즐기지 못했던 아이의 생일을 여러 친구와 함께하며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야 어쨌든 나와 같은 자신의 생일을 그저 보낸 아이일텐대, 자신이 생일을 그저 지나옴을 밝히고 지금 그 생일을 즐기다니.

평소의 행실과 성격과는 상관없이 대단하고 멋져보였다.

 

남들의 행복을 자신의 생일에 받은 것이 부러운게 아니었다.

 

자신의 생일을 그저 보내던 아이가,

자신의 생일에 행복을 줄 준비를 했다는 점이 나에게 참 대단해 보였다.

 

조용하고, 정적이게 생일을 보내왔다.

20년 동안 나는 내 생일을 일부러 밝히지 않았으며, 축하를 받아도 좋은 마음으로 받을 수 없이 항상 불안했다.

 

열심히 공부해 20살에 좋은 직장을 잡았고, 조금 숨통이 틔인 듯 하다.

족쇄는 풀어졌고, 그동안 묶여있던 나는 선택을 해야한다.

 

족쇄와 상관없이 내 무릎이 이 땅과 붙어있던 건지, 오랫동안 묶여 있어 말도 안되는 착각을 하는 건지.

 

일어서야 한다. 무릎의 가죽이 벗겨지더라도.

 

그런 내가 이번에 축하를 받아보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내 생일임을 밝히려고 한다.

 

나는 그동안 나를 잘 보지는 못했다.

나는 비어있었다.

 

이제 나는 내게 행복을 주려고 한다.

 

가장 여리고, 연약하고, 부드러워 모든 것이 아프던 시기의 나에게,

 

그렇게 아프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 시기가 지나면 나의 사랑과 행복이 온전히 나에게로 오길,

이 시기가 지나면 남들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진심을 축하 받을 수 있기를.

 

그 친구처럼 이 사실을 친구에게 밝힐 용기는 없어, 인터넷에 올릴 뿐이지만.

진심으로 나는 내가 잘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