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序 (서문을 대신하여)




  많은 사람들이 무협소설은 문학이 아니며, 심지어는 소설도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이것은 무협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있어서 매우 슬픈 일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가지 사실만은 그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在很多人心目中,武俠小說非但不是文學,甚至也不能算是小說,對一個寫武俠小說的人說來,這實在是件很悲哀的事情,幸好還有一點事實是任何人都不能否認的——一樣東西如果能存在就一定有它存在的價值。


  무협소설은 존재할 뿐 아니라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武俠小說不但存在,而且已存在了很久!


  무협소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태사공(太史公:사마천)의 유협열전을 시작으로 해서 중국에는 무협소설이 있었다." 이 기원설은 가장 당당하고 훌륭한 것 중 하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關於武俠小說的源起,一向有很多種不同的說法:“從太史公的《遊俠列傳》開始,中國就有了武俠小說。”這當然是其中最堂皇的一種,可惜接受這種說法的人並不多。


  무협소설은 전기(傳奇)이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무협소설을 태사공의 그 엄숙한 전기(傳記)문학과 같은 위치에 놓고 논하려 한다면, 남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는 일이 될 것이다.

  因爲武俠小說是傳奇的,如果一定要將它和太史公那種嚴肅的傳記文學,相提並論,就未免有點自欺欺人了。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서야 소설필기(小說筆記) 중에 무협소설과 상당히 근접한 고사들이 나타난다.

  在唐人的小說筆記中,才有些故事和武俠小說比較接近。


  당인설회(唐人說薈) 제5권에 있는 장작의 이목기(耳目記)에 거의 무협이라 할 수 있는 고사가 실려 있다.

  《唐人說薈》卷五,張鷟的《耳目記》中,就有段故事是非常“武俠”的。


  수나라 말, 심주에 제갈앙(諸葛昻)이라는 이가 있어 성격이 호협했는데, 발해의 고찬(高瓚)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제갈앙은 고찬을 맞아 연회를 베풀었는데, 단지 계순(닭의 모래주머니)만 대접했을 뿐이었다. 이에 고찬은 소문과는 달리 제갈앙의 씀씀이가 소심하다 여기고는 다음날 크게 연회를 열어 제갈앙을 비롯해 수십 명을 초대해서는 돼지와 양 등을 삶아 내놓았는데, 그 길이가 8척에 이르렀고, 준비한 떡은 그 너비가 무려 일 장에 이르렀으며 과함조(裹餡粗: 의례용으로 떡을 쌓은 것으로 짐작)는 마치 정원의 기둥 같았다. 대야를 술잔으로 삼아 돌리고는 스스로 지은 금강무(金剛舞)로 손님들을 전송했다.

  “隋末,深州諸葛昂,性豪俠,渤海高瓚聞而造之,爲設雞肫而已,瓚小其用,明日大設,屈昂數十人,烹豬羊等長八尺,薄餅闊丈餘,裹餡粗如庭柱,盤作酒碗行巡,自作金剛舞以送之。


  제갈앙은 이틀 후에 손님 수백 명과 더불어 고찬을 초대해서 크게 연회를 열었는데, 수레로 술을 날랐으며, 말로 고기를 날랐다. 또한 디딜방아로 찧고 고기를 썰었으며, 맷돌로 마늘을 갈아 음식을 대접했다. 그리고 밤새 노래 부르며 사자무(獅子舞)를 추었다.

  昂至後日,屈瓚所屈客數百人,大設,車行酒,馬行炙,挫碓斬膾,磑礫蒜齏,唱夜又歌獅子舞。


  고찬은 다음날 다시 연회를 열었는데, 십여 세의 노비의 아이를 삶아 그 두개골과 팔다리를 내놓자, 손님들은 모두 목을 움켜잡고 구토를 했다.

  瓚明日,複烹一雙子十餘歲,呈其頭顱手足,座客皆喉而吐之。


  제갈앙 또한 이틀 후에 역시 답례라며 연회를 열어, 먼저 아름다운 첩으로 하여금 술을 권하게 했다. 헌데 첩이 까닭 없이 웃었다는 이유로 크게 질책하고는, 순식간에 그 첩을 쪄서 은 대접 위에 앉혀 놓았는데, 여전히 지분(脂粉)으로 화장을 해놓았고, 금수(錦繡)로 옷을 입혀 놓았다. 그리하여 고찬 등 손님들의 눈을 가리고는 다리를 잘라 먹였다. 제갈앙 자신은 주방에 앉아 첩의 살을 한 움큼씩 집어먹었는데, 배부르게 먹고서야 그쳤다. 이에 찬은 부끄러워하고는 한밤중에 몰래 도망쳤다.

  昂後日報設,先令美妾行酒,妾無故笑,昂叱下,頭臾蒸此妾坐銀盤,仍飾以脂粉,衣以錦繡,遂擘腿肉以啖,瓚諸人皆掩目,昂於奶房間撮肥肉食之,盡飽而止。瓚羞之,夜遁而去。


  이 고사는 제갈앙과 고찬의 호방하고 잔혹함을 묘사하여 사람들에게 불가사의한 느낌이 들게 한다. 또한 이러한 묘사 수법은 현재의 무협소설 중에 나오는 잔혹한 묘사들과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這段故事描寫諸葛昂和高瓚的豪野殘酷,已令人不可思議,這種描寫的手法,也已經很接近現代武俠小說中比較殘酷的描寫。


  하지만 이 고사는 단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형식과 소설은 아직 크나큰 거리가 있다. 당시에 민간의 소설, 전기, 평화, 은자아(銀字兒:중국 송대의 설화문학 중 한 가지)에도 많은 것들이 대단히 무협적이었다. 예를 들자면, 합을 훔친 홍선(紅線:합을 훔쳐 전쟁을 막은 홍선에 대한 이야기), 곤륜노, 묘수공공아, 규염객, 이런 인물들은 이미 현대 무협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但這故事卻是片斷的,它的形式和小說還是有段很大的距離。當時民間的小說、傳奇、平話、銀字兒中,也有很多故事是非常“武俠”的,譬如說,盜盒的紅線、昆侖奴、妙手空空兒、虯髯客,這些人物就幾乎已經是現在武俠小說中人物的典型。


  무협소설 중에서 가장 주가 되는 무기는 검이다. 검술의 묘사는, 당나라 때 이미 지금의 무협소설 속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신기하게 표현되었다.

  武俠小說中最主要的武器是劍,關於劍術的描寫,從唐時已比現代武俠小說中描寫得更神奇。


  홍선, 대리장군, 공손대랑.... 이 사람들의 검술은 이미 신화에 접근할 정도로 과장되어 있다. 두보의 <관공손대랑제자무검기행(觀公孫大娘弟子舞劍器行)>에서 공손대랑과 그 제자 이십이랑의 검술을 묘사한 부분은 극히 생생해서 묘사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紅線,大李將軍,公孫大娘……這些人的劍術,都已被渲染得接近神話,杜甫的《觀公孫大娘弟子舞劍器行》,其中對公孫大娘和她弟子李十二娘劍術的描寫當然更生動而傳神。


  “초성”이라 불리는 당대의 대서가 장욱도 말하기를 "처음에 나는 공주와 짐꾼이 길을 두고 다퉜다는 소리를 듣고서, 필법의 뜻을 얻었다. 후에 공손씨가 검기(劍器)를 추는 것을 보고 필법의 정신을 얻었다."

  號稱“草聖”的唐代大書法家,也曾自言:“始吾聞公主與擔夫爭路,而得筆法之意,後見公孫氏舞劍器,而得其神。


  검기(劍器)는 비록 검이 아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수는 의심할 바 없이 검술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것으로 볼 때, 무협소설에서 무공과 관련한 묘사는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劍器”雖然不是劍,但其中的精髓卻無疑是和劍術一脈相連的,由此可見,武俠小說中關於劍術和武功的描寫,並非無根據。


  이런 오래된 전설과 기록들은 조금씩 하나하나 모여 모두 무협소설의 기원이 되었다. 거기에 민간의 평화(平話)와 탄사(彈詞), 설서(說書)들의 변화를 거쳐 차츰 현재의 형식이 된 것이다.

  這些古老的傳說和記載,點點滴滴,都是武俠小說的起源,再經過民間的平話、彈詞、和說書的改變,才漸漸演變成現在的這種型式。




  《팽공안》, 《시공안》, 《칠협오의》, 《소오의》와 《삼협검》이라 불리는 것 등은 모두 설서에 근거해 써진 것이고, 우리 세대가 접촉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무협소설들이라고 할 수 있다.

  《彭公案》、《施公案》、《七俠五義》、《小五義》和《三俠劍》就都是根據“說書”而寫成的,已可算是我們這一代所能接觸到的,最早的一批武俠小說。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소설에 나오는 영웅은, 대부분 사람들의 피를 끓게 만드는 진정한 영웅이 아니다. 왜냐하면 청말의 사회 환경에서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영웅적인 행동을 하도록 격려할 수 없었고, 신중하고 침착한 군자를 그려야만 비로소 일반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可是這種小說中的英雄,大都不是可以令人熱血沸騰的真正英雄,因爲在清末那種社會環境裏,根本就不鼓勵人們做英雄,老成持重的君子,才是一般人認爲應該受到表揚的。


  이것은 적어도 무협소설에 한 점의 가치가 있음을 증명한다. - 한 권의 무협소설에서 그것이 만들어진 당시의 시대배경을 알 수도 있다는 것이다.

  這至少證明了武俠小說的一點價值……從一本武俠小說中,也可以看到作者當時的時代背景。


  현대의 무협소설은 어떤가?

  現代的武俠小說呢?


  나는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모두 지혜가 높고 문학적 소양이 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때때로 나에게 말하길,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무협소설이라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언제 시간이 되면 내가 무협소설에는 도대체 무엇이 묘사되어 있는지 알 수 있도록, 자네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책을 한 권 보내주게나."

  我有很多朋友都是智慧很高,很有文學修養的人,他們往往會對我道:“我從來沒有看過武俠小說,幾時送一套你認爲最得意的給我,讓我看看武俠小說裏寫的究竟是什麼。”


  나는 웃었다. 나는 단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 말을 한 까닭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협소설이 읽을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 있지만, 지금 보겠다고 하는 것은, 단지 내가 그들의 친구이기 때문이고, 일종의 호기심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다.

  我笑笑。我只能笑笑,因爲我懂得他們的意思。他們認爲武俠小說並不值得看,現在所以要看,只不過因爲我是他們的朋友,而且有一種好奇。


  그들은 무협소설의 독자가 절대 그들과 같은 계층의 사람일 리 없고, 절대 사상이 참신하고 독특한 고급 지식인들일 리 없다고 여기고 있다.

  他們認爲武俠小說的讀者,絕不會是他們那階層的人,絕不會是思想新穎的高級知識分子。


  그들은 입으로는 비록 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이미 무협소설의 가치를 부인하고 있다.

  他們嘴裏雖說要看,其實心裏早已否認了武俠小說的價值。


  하지만 그들은 전혀 무협소설이라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무협소설에 무엇이 묘사되어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而他根本就沒有看過武俠小說,根本就不知道武俠小說寫的是什麼。


  나는 그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협소설은 확실히 사람에게 일종의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가지게 해서, 보지 않아도 그 내용을 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我不怪他,並非因爲武俠小說的確給了人一種根深蒂固的觀念,使人認爲就算不看也能知道它的內容。


  무협소설은 확실히 이미 몇 가지 고정적인 형식에 빠져 있다.

  因爲武俠小說的確已落入了一些固定的形式。


  - 한 명의 기개가 있고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소년이 어찌 어찌해서 고생스럽게 무예를 배우고, 또 무예를 완성한 후 여차 여차해서 뜻을 펼치고 두각을 나타낸다.

  ——一個有志氣”,“天賦異稟”的少年,如何去辛苦學武,學成後如何去揚眉吐氣,出人頭地。


  이런 과정 중에는 당연히 무수히 신화 같은 우연과 기연들이 등장하고, 또한 당연히 원한과 애정이 얽혀 있고, 최후에는 원한을 갚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이루어지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這段經曆中當然包括了無數次神話般的巧合與奇遇,當然也包括了一段仇恨,一段愛情,最後是報仇雪恨,有情人成了眷屬。


  - 한 명의 정직한 협객이 여차 여차 그의 지혜와 무공을 운용하여, 강호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어마어마하게 큰 악의 세력을 무찌른다. 이 협객은 영준한 소년일 뿐만 아니라, 문무도 겸비하고 있고, 운 또한 특이하게 좋다. 어떤 때는 심지어 역용술로 각양각색의 사람으로 변장하는데, 그의 친한 친구나 부모처자조차도 그의 진위를 분별하지 못한다.

  ——一個正直的俠客,如何運用他的智慧和武功,破了江湖中一個規模龐大的惡勢力。

  這位俠客不但“少年英俊,文武雙全”,而且運氣特別好,有時甚至能以“易容術”化妝成各式各樣的人,連這些人的至親好友,父母妻子都辨不出他的真偽。


  이렇게 쓰는 것이 결코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거기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영웅협사, 풍진이인, 절부열녀가 있고, 또 효웅, 악독한 패웅, 음부탕녀, 간악한 소인 등도 있다. 그리고 스토리는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 특이하며, 긴장감과 자극을 주고, 또한 상당히 선정적인 내용도 들어 있다.

  這種寫法並不壞,其中的人物有英雄俠士、風塵異人、節婦烈女,也有梟雄惡霸、蕩婦淫娃、奸險小人,其中的情節一定很曲折離奇,緊張刺激,而且很香豔。


  허나 안타깝게도 이런 형식은 이미 너무 많이 사용되어 상투적 스타일로 변했고, 공식화 되어버렸다. 그리고 소설에 있어서 인성이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것임을 망각하고, 통상적으로 대부분 너무 황당무계하고, 피 흘리는 장면이 너무 많이 사용되고 있다.

  只可惜這種型式已寫得太多了些,已成了俗套,成了公式,而且通常都寫得太荒唐無稽,太鮮血淋淋,卻忘了只有“人性”才是小說中不可缺少的。


  인성이라는 것은 결코 분노, 원한, 비애, 공포만이 아니다. 그 중에는 사랑과 우정, 기개와 협의 정신, 그리고 유머와 동정을 포괄하고 있다.

  人性並不僅是憤怒、仇恨、悲哀、恐懼,其中包括了愛與友情,慷慨與俠義,幽默與同情。


  헌데 우리는 왜 그 중에서 특별히 추악한 일면만 중히 여기는 것인가?

  我們爲什麼要特別著重其中醜惡的一面?




  우리 세대의 무협소설이, 만약 평강불초생의 《강호기협전》에서 시작하여, 환주루주의 《촉산검협전》에 이르러 정상에 도달했고, 왕도려의 《철기은병》과 주정목의 《칠살비》에 이르러 한 번 변하고, 김용의 《사조영웅전》에 이르러 또 한 번 변했다면, 그 다음으로 지금까지 십 수 년이 흘렀으니, 지금은 마땅히 또 다시 변해야할 시기에 다다랐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我們這一代的武俠小說,如果真是由平江不肖生的《江湖奇俠傳》開始,至還珠樓主的《蜀山劍俠傳》到達巔峰,至王度盧的《鐵騎銀瓶》和朱貞木的《七殺碑》爲一變,至金庸的《射鵰英雄傳》又一變,到現在又有十幾年了,現在無疑又已到了應該變的時候!


  변화를 추구하려면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하고, 진부하고 고정적인 형식에서 탈피해서 새로운 것을 실행하고 흡수해야한다.

  要求變,就得求新,就得突破那些陳舊的固定形式,嘗試去吸收。


  《전쟁과 평화》는 대 변혁의 시대에 있어서 동란(動亂)과 인성에 있어서 선악의 충돌이 묘사되어 있다.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에서는 인성의 교만과 비천함에 대해, 《국제공항(Airport)》에는 한 사람이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이 자아를 확실히 인식하는가에 대해 묘사되어있다. 《작은 아씨들(Little Woman)》에 묘사된 것은 청춘과 환락이고, 《노인과 바다》에 묘사된 것은 용기의 가치와 생명의 고귀함이다.

  《戰爭與和平》寫的是一個大時代中的動亂,和人性中善與惡的沖突,《人鼠之間》寫的卻是人性的驕傲和卑賤,《國際機場》寫的是一個人如何在極度危險中重新認清自我,《小婦人》寫的是青春與歡樂,《老人與海》寫的是勇氣的價值,和生命的可貴。


  이러한 위대한 작가들은 그들의 예민한 관찰력,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시대를 비탄하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 같은 것을 사용하여 인성을 힘 있게 그려내어,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을 슬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며 때로는 감동을 주는 여운을 남기게 하여, 세상만사에 대해 더욱 깊이 있고, 더욱 멀리 볼 수 있게 했다.

  這些偉大的作家們,用他們敏銳的觀察力,豐富的想象力,和一種悲天憫人的同情心,有力的刻劃出人性,表達出他們的主題,使讀者在悲歡感動之餘,還能對這世上的人與事,看得更深,更遠些。


  이런 고사(플롯)와 이런 글 쓰는 법은 무협소설에서도 똑 같이 사용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단 말인가? 

  這樣的故事,這樣的寫法,武俠小說也同樣可以用,爲什麼偏偏沒有人用過?


  무협소설은 반드시 이래야만 정종(正宗)이라고 누가 규정을 했단 말인가!

  誰規定武俠小說一定要怎麼樣,才能算“正宗”!


  무협소설도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고양시킬 수 있으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성공한 것이다.

  武狹小說也和別的小說一樣,要能吸引人,能振奮人心,激起人心的共鳴,就是成功的!


  많은 사람들은 현재 소설이 가장 왕성하게 번창하고 있는 곳은 구미지방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일본소설은 그들 자신의 유구한 전통과 독특한 재미를 지킬 뿐만 아니라, 능히 받아들일 줄도 알기 때문이다.

  有很多人都認爲當今小說最蓬勃興旺的地方,不在歐美,而在日本。因爲日本小說不但能保持它自己的悠久傳統和獨有趣味,還能吸收。


  일본소설은 중국의 고전문학을 흡수했고, 수많은 종류의 서양사상을 받아들였다. 일본 작가들은 외국문학 작품들의 정화를 융합하여, 민족적인 기풍을 가진 새로운 문학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 무협소설 작가들은 왜 못한단 말인가?

  它吸收了中國的古典文學,也吸引了很多種西方思想。日本作者能將外來文學作品的精華融會貫通,創造出一種新的民族風格的文學。武俠小說的作者爲什麼不能?


  무협소설은 기왕에 이미 유구한 전통과 독특한 재미를 가지고 있으니, 만약 거기에 다른 문학 작품에서 지니고 있는 정화를 흡수한다면 어찌 일본소설과 마찬가지로 새롭고 독립적인 풍격을 창출해내서, 무협소설도 문학의 영역 중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의 가치를 부인하게 하지 못하게 하며, 무협소설을 보지 않는 사람들도 무협소설을 볼 수 있게끔 하지 못하겠는가!

  武俠小說既然也有自己悠久的傳統和獨特的趣味,若能再盡量吸收其它文學作品的精華,豈非也同樣能創造出一種新的風格,獨立的風格,讓武俠小說也能在文學的領域中占一席地,讓別人不能否認它的價值,讓不看武俠小說的人也來看武俠小說!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這就是我們最大的願望。


  현재로서는 우리들의 역량이 아직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 길을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 모든 속박들을 떨쳐버리고 이 길을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

  現在我們的力量也許還不夠,但我們至少應該向這條路上走去,擺脫一切束縛往這條路上走去。


  지금에 이르러서야 우리들이 발걸음을 옮긴다는 것은 비록 이미 약간 늦었지만, 그렇게 크게 늦지는 않았다.

  現在我們才起步雖已遲了些,卻還是不太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