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派一幇(십파일방)
종남파가 형산파와의 치열한 비무에서 승리한 이후 대방은 진산월과 약속한 대로 종남파의 구대문파 복귀를 거론했다.
그렇다고 종남파의 복귀가 확정된 것은 아니었으나, 과거 기산취악의 사례를 놓고 봤을 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형산파를 제외한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이 모여 밤새 설전을 벌였고, 아침 일찍 청운 도장이 진산월을 찾아왔다.
진산월은 두근거리는 기대와 희미한 불안감을 가슴에 안고 청운을 따라 자소전으로 향했다.
"종남파의 진 장문인께서 오셨습니다."
청운이 고하자 현령진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진 장문인은 안으로 모시고, 너는 물러가도록 해라."
진산월이 방으로 들어가자 크지 않은 방 안에 적지 않은 수의 인물들이 앉아있었다.
소림의 대방, 무당의 현령, 화산 용진산, 기타 등등 ETC...
유일한 예외는 형산파였는데, 형산파의 인물이 이곳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 자리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진산월이 중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현령진인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험, 우선 종남파의 승리를 축하드리오."
진산월은 현령진인의 축하에도 입을 열지 않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특유의 고적한 눈빛으로 현령진인을 바라볼 뿐이어서
장내의 분위기는 점차 무거워져 갔다. 현령진인은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어제 대방선사의 발의로 밤새 종남파의 구대문파 복귀에 대한 논의를 했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종남파의 복귀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이렇다 할 과오가 없는 형산파를 내보내는 것 역시 과거 기산취악의 문제를 다시 반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소.
그래서 최종적으로 종남파를 복귀시키면서도 형산파를 내보내지 않는... 즉, 십파일방이 되는 것으로 결정했소"
"..."
"진 장문인의 의향은 어떻소? 십파일방."
진산월은 현령진인의 주름진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말을 참 편하게 하는군."
중인들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장내의 인물들은 모두 똑같이 한 문파의 수장이었지만, 나이와 배분을 고려했을 때
진산월의 말은 분명히 예의에 어긋난 것이었다.
"뭐, 뭐요?"
진산월의 트레이드 마크(Trade Mark)인 고적한 눈빛이 점차 광망이 어른거리는 핏빛 눈빛으로 변해갔다.
"말을 참 편하게 한다고 말했소. 십파일방이라니... 이런 십파!"
갑작스런 진산월의 욕설을 듣자 아까부터 못마땅한 눈초리로 진산월을 바라보고 있던 화산파의 장문인이자 검봉,
육합신검 용진산이 벌떡 일어나며 꽥! 소리를 질렀다.
아니, 지르려고 했다.
그 순간,
팟!
중인들 중 진산월의 출수를 본 사람은 없었다. 다만 무거운 눈으로 진산월의 바로 앞에 생겨난 작은 솜뭉치를 바라볼 뿐이었다.
작은 솜뭉치는 이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더니 장내를 온통 뒤덮어버렸다.
뚝... 뚝...
우윳빛 검광을 보이는 용영검 여기저기에 묻은 진득한 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장내에 모든 사람은 전신이 난자된 채 본인이 흘린 피바다 속에 쓰러져 있었다.
다만 단 한사람, 화산파의 장문인인 검봉 용진산만은 두 팔이 팔꿈치 아래로 잘려져 있을 뿐 목숨은 붙어있었다.
"왜... 왜 나만 살려둔 것이오?"
왼쪽 뺨의 흉터를 일그러뜨리며 진산월이 모처럼 미소를 지었다.
"매화... 화산파 제자의 정액에서는 매화 향이 난다고 하더군. 그 진위를 확인해야겠소."
용진산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군림천하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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