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제후 붕백(Q계통)이라 칭하는 주나라 유적의 인골은 흉노가 나오기 훨씬 이전에 존재 했기때문에 의미가 없는것 같다.
또한 제후<휴도왕분류> 같은 것은 흉노의 황제가 아닌 흉노의 수하로 남쪽과 서쪽을 다스리는데 썻으므로 그 본질이 지배층과는 상관이 없고
또한 워낙 사이즈가 작은 제후국을 초점으로해서 이들이 지배층이라는 것도 별 신빙성이 없는듯 하다.
그런데 제후 붕백(Q계통)이라 칭하는 주나라 유적의 인골은 흉노가 나오기 훨씬 이전에 존재 했기때문에 의미가 없는것 같다.
또한 제후<휴도왕분류> 같은 것은 흉노의 황제가 아닌 흉노의 수하로 남쪽과 서쪽을 다스리는데 썻으므로 그 본질이 지배층과는 상관이 없고
또한 워낙 사이즈가 작은 제후국을 초점으로해서 이들이 지배층이라는 것도 별 신빙성이 없는듯 하다.
연대상 연관이 없는 것은 맞다. 붕국유적은 3천년전 것이고 흉노는 기원전 5-3 세기에 태동하여 기원전 3세기 말에 초원을 평정하며 역사 전면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학자들은 보통 붕백족을 적족이라 본다.이 적족은 <사기> 흉노열전에 흉노 조상들의 역사중에도 나오는 종족들 중 하나이다. 적(翟)은 하늘을 뜻한다는 말도 있는데, 한자로는 꿩, 꿩의 깃털을 뜻한다. 아마 이 종족이 새를 숭배하는 풍습을 보고 부른 명칭같다.(조우관 풍습?) 이런 점에서 후일 흉노와 연관 없다고 하기도 어렵다.
이홍걸이나 조용빈 외에 다른 논단이나 보도 내용을 보면, 붕백의 부인은 출토된 동기 명문에 필희(畢姬)로 나와 필국 출신의 사성 부인으로 본다. 고대 중국 고위층 부인을 지칭할 때 출신국+성씨로 부르는 게 관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국은 주문왕의 아들이자 주왕의 동생인 필공고(畢公高)의 봉지이고 희성(姬姓)은 주왕실의 성이므로 결국 필희는 필공고의 가까운 대 후손녀로 봄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붕백(倗伯, 백은 이름이 아니라 백작 작위란 뜻)인데, 중국학자들 중엔 붕백을 귀방(흉노 조상이란 설)의 후예로 보아 외성(隗姓)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 북경 보리(保利)박물관에 소장된 서주시대 한 동궤에 " 호숙작붕사궤(虎叔作倗姒簋)"라 새겨진 명문이 있는데, 여기서 호숙은 이 궤를 선물하는 사람(인척이나 남편)이고, 붕사는 그 궤를 선물받는 부인으로 볼 수 있다. 붕사(倗姒)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으나 붕국 출신 사성녀로 해석함이 원칙이다. 또 궤는 나라제사에 쓰는 물건으로 제후급 유물이라 할 수 있으므로 붕사는 다른 제후국에 시집간 붕국 제후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붕백을 사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사성은 하나라(우임금) 왕성이다.
따라서, 붕백을 하나라 왕족 후손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중국 학자들은 대체로 부인하고 싶어하겠지만 일부는 이 점을 인정) 이는 붕백대묘가 있는 강현 횡북촌이 하나라 도읍이었던 하현과 함께 산서성 운성시 내에 위치한다는 점과도 연관된다. 그런데, 사기 흉노열전에 보면 흉노(지배층)는 하나라가 망할 때 북쪽으로 도망친 하나라 왕자의 후손이라 한다. 이처럼, 붕백이 적족이고 하나라 왕족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흉노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참고로, 부인 필희 묘에서 나온 10제곱미터에 이르는 봉황문양의 대형 황유(묘실 휘장)는 중국 고고학상 가장 큰 것이라 이 묘역의 유물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한다.) 한편, 붕백묘역에서 서쪽으로 400키로 정도 떨어진 영하 팽양현 王大戶村(왕의 큰 집이 있던 촌?)에서 나온 2,500년 전 유골들은 이홍걸 논문에 4구 모두 Q1a1(M120 확실)으로 나왔다. 여기서는 각 묘마다 말, 소, 양의 머리 20-30개가 나왔고 묘역에서 총 300여건의 청동기, 200여건의 송연석, 마노석, 도기 등이 나왔다. 농기구는 없다. 청동기 중엔 각종 무기류가 많은데 신문 사진엔 시신 옆에 청동검이 놓여 있다.
왕대호 묘역에 대해 의거국 장군으로 보기도 하고 인접한 진(秦)의 장군으로 보기도 하고, 그냥 유목부족의 부유한 수장으로 보기도 하여 신분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후일 흉노와 연관된다고 보는 견해는 많다 .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위키 등에 의거국이나 진이 망하고 흉노 휴도부와 곤야부(혼야부)가 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휴도부는 신라김씨 시조라는 김일제의 부족인데, 중국분자인류학논단에 Q1a1-M120이 나온 절강성 태주 유/금씨가 김일제 후손이라 한다.)
신장 바콜(Barkol) 지역의 흑구량에 있는 2,200년 된 흉노유적에서 발굴된 유골들은 12구 모두 Q계통이다. 그런데, 이 곳은 중국학자들이 흉노 하계왕정(王庭)으로 보는 곳이라 흉노 최고지배층은 Q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 다른 논문인 LL. Kang et al., Y chromosomes of ancient Hunnu people and its implication on the phylogeny of East Asian linguistic families(2013)에서도 바콜 지역 흉노유골 3구 모두 Q-M3로 나왔다. 한편, 얼마 전 원나라의 주요부 중 하나인 왕고부(Ongut) 왕인 조왕(高唐王=趙王) 활리길사(阔里吉思) 가족묘가 하북성 북단 소장루에서 발굴되었다.
흉노와 돌궐의 지배층이 Q라면 이들이 서천하였으므로 유럽에도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Q의 경우 낮은 비율이지만 유럽 거의 전역에 걸쳐 나타나며 훈족 활동 지역에서는 좀 더 높은 비율로 분포한다고 한다. 또 투르크 후예인 투르크멘이 많이 사는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우 인구의 43%가 Q로 나온다. FT-DNA의 ASHINA ROYALTY PROJECT에서도 돌궐과 하자르왕국의 왕족이었던 아쉬나왕족을 Q로 본다. 이상 대략 정리해 봤는데 참고가 되기 바람.
금빛/ Q와 관련된 흥미로운 견해에 일단 박수를 보낸다. 많은 논문을 살펴보고 연구를 하고 꾀나 오랬동안 준비해 온 것같다. 일단 신장 바콜 유적의 다수 하플로는 Q-M3가 맞다. 주나라 하플로 붕백관련 유적은 대부분 Q-M120이고, Q-M3과는 조금 다른 혈족이다. 이들이 M120은 붕을 다스리는 격인 백<작위>로 깃털장식을 주로하며 적족<인종특색>이라 불린데는 발론의 여지가 없다. 이들은 흉노의 선우<최상의지배층>가 서방과 남쪽을 다스리는데 이용하였고 다수 하플로Q에 속해 있다. 실제로 서방과 북흉노 일대 근방은 Q의 본거지라 추측된다. 이렇기 때문에 선우가 더욱 그들을 활용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일제의 하플로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으며 중국 절강김씨에서 Q가 나온 사례가 있지만,
워낙, 다수의 김씨가 정강성에 있고 이에 의외로 김일제 후손이라 지칭하는 하플로들에 N형도 많은걸로 확인됬다. 또한 한 하플로에 국한되지 않고 역시나 많은 부계에 속해있다. 그러니 이를 두고 김일제의 하플로가 Q라는 견해는 다소 무리가 있다. 북방 유민중 지배세력의 일부는 하플로Q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보다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겟지만. 이를 토대로 흉노 무리중 최고 지배층을 Q라 추측하기엔 근거 자료가 부족하다. 훈족과 흉노를 꼭 연관 시킬 필요는 없고 이 둘을 같은 종족으로만 보는 견해도 보다 낡은 견해다. 흉노는 남흉노가 본류가 훈족은 이후 흉노 세력중 북흉노가 갈라져서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이 둘을 꼭 같은 종족으로 보기는 힘들다. 유럽 일부에 Q가 나오지만 꼭 훈족의 흔적이라고는 볼수 없다.
학계 동향을 대충 설명했는데, 스머프님 말도 참고하겠다. 그러나, 훈족의 지배층을 흉노계로 보는 것은 유력한 이론이다. 서양학자들 중엔 동양계에 당한 것을 부인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걸 알고 부정론을 읽어야 한다. 앞에 오타 한 가지 수정할 것이 있는데, 중국 학자들이 보통 '필희'는 필국 출신의 희성 부인이라 본다. (앞에 필희를 필국 출신 사성이라 적었는데 오타이다. 사성이 아니라 희성이다. '붕사'가 붕국 출신 사성 부인이다.) 춘추시대를 지나 후일 전국시대 이후엔 이런 호칭법이 엄격히 지켜지지 않아 주나라 왕실녀가 아니라도 '~희'를 여자 이름에 쓰는 경우가 생겨났다. 오늘날 여자 이름에 흔한 선희, 영희도 그런 맥락이다.
훈족이 원래 흉노에 기원이 있는것이 맞다. 다만 흉노는 흉노이지 이후 아들뻘인 훈족이 될수는 없다.. 그러니까 즉, 훈족은 흉노지만 흉노는 훈족이 아니다. 이런 의미 즉 둘은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고 아빠<흉노>와 아들<훈> 격이다.
붕백이 속한 적족에는 적적, 백적, 장적 등이 있다. <사기>에 보면, 이 중 백적(白翟) 선우부(鮮虞部)가 기원전 414년에 하북성 북쪽으로 이동하여 中山國(원래 鮮虞國)을 재건했다. 백적 선우(鮮虞)와 흉노 선우(單于)는 한자는 다르나 같은 음차로 본다.(기자 후손이라 자칭하는 '선우鮮于'씨는 나중에 만들어낸 조합으로 이들과 상관없슴) 즉, 흉노선우가 백적 선우부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백적 선우부가 Q이니 흉노 선우도 Q일 것이다. 앞서 신장 흉노왕정 묘에서 Q만 나왔다 했는데, 이는 우현왕정으로 본다. 따라서 우현왕은 Q. 우현왕과 좌현왕은 선우 바로 아래로, 휴도왕같은 일반 번왕들보다 높은 왕으로 선우 친족이 임명됨이 원칙이다. 최소한 동족(Q)인 최측근일 것이다.
흉노가 나중에 망할 때 남흉노는 중국에 흡수되었고, 서흉노와 북흉노는 서진하여 훈족이 되었다. 유피디아나 일부 서양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훈족의 아틸라를 Q1a2로 본다. 내 생각엔 흉노 선우는 Q1a1이고 서흉노가 Q1a2가 아닌가 싶다. 후일 선우족의 남흉노가 중국에 편입되었다 하는데, 현재 중국 Q는 거의 다 Q1a1이고 서양에 있는 Q는 Q1a2와 Q1b이기 때문이다.(Q1b는 주로 돌궐족, 아쉬케나지 유태인, 중동 출신) 흉노의 전신인 적족 지배층에서 Q가 나오고, 서양의 훈족 지역이나 돌궐족 왕족에서도 Q가 나오는데, 이 종족들의 구성요소는 다르나 지배층은 Q인 것이다.(사서에도 적족-흉노-돌궐 지배층이 서로 연관되게 나옴)
Q가 흉노 이후 헤게모니를 상실한 줄 알았는데, 조사해보니 적어도 원나라 때까지 맹위를 떨쳤다. 중국 란하어에 보니 Q1a1 나온 성씨들 중에 귀족이나 황제족도 많다. 족보에 남북조시대 남조의 제-양-진의 황족 후손으로 적혀 있다는 조주소씨와 형동진씨에서 Q1a1이 나왔고 북위황실 후손이라는 원씨도 그렇다 . 또 당나라 황성이자 중국 최고 명문인 농서이씨가 Q1a1일 가능성이 높다고도 한다. 농서군이 있는 감숙성 이씨들에서 Q가 많고 해외 농서이씨 후손에서도 Q가 나온다 한다. 물론 농서이씨는 대성이니 여러 하플로가 있겠으나 당나라가 탁발선비인 점을 보면 진짜 농서이씨가 Q일 가능성이 높다. 흉노가 망할 때 흉노족이 탁발선비로 대거 편입됐기 때문이다.
흉노와 그 후손인 탁발선비와 돌궐이 중국과 서양으로 간 후 몽골 초원은 힘의 공백 상태였다. 그리하여 징기스칸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흉노계나 돌궐계가 계속 초원에 많이 있었다면 징기스칸이 일어나가 힘들었을 것이다. 징기스칸이 초원을 통일할 때 일부 동족(C2)과도 싸우고 일부 돌궐 잔존세력(Q)과도 싸웠다. 물론 협력도 받았다. 징기스칸이 일어나는데 결정적 공을 세운 것은 돌궐계 왕고부인데 그 왕인 활리길사가 2014년 한 논문에서 Q로 밝혀졌다. 몽골황실은 왕고부와 혼인동맹을 맺고 16명 이상의 공주를 시집보냈다 한다. 이상을 보면 흉노계는 실체가 사라진 뒤에도 탁발선비와 돌궐계로 활약했으며 또 중국 한족내에서도 계속 지배층으로 있었음을 알 수 있다.(북방역사를 탐구하다보니 Q를 만나 깊이 논함)
전에 일본 분자인류학 관련 싸이트에서 본 바로는 일본 애들은 Q를 소수정예 집단이라 하더군. 북방 역사를 하플로와 함께 탐구해 보니 나름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른 하플로 역사를 심층 탐구해 보기로 한다. 다만 문제는 위 처럼 역사적 신분이나 신원을 알 수 있는 타 하플로 유골들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고 자료가 축적되면 분석해 보기로 한다.(한 가지 의문은 붕백 하플로가 나왔온 걸 보면 이미 발굴된 다른 주나라 왕족 묘의 하플로도 분석했을 텐데, 발표를 안하고 있다는 점이다. 짐작컨대, O였다면 벌써 발표했을 텐데 안 하고 있는 걸 보면 이것도 Q인가? 또 은나라는 동이족? 중국이 뜸들이다 나중에 조작한 후 발표나 안하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