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의 흥기로 여러 유목민 세력들이 사분오열 되면서 일부가 


고려의 부용세력이 된듯하다. 그 규모도 9500명으로 사실상 고구려 못지않은


규모를 동원했던것 같은대 아마도 후삼국시대까지는 삼국시대의 


상무적인 기풍이 많이 남아 있어 이들을 복속시킬 만한 강한 군사력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려 중기이후 문치주의가 완전히 


정착되고 부터는 여진족을 상대로 어느정도 군사적 성과를 내지만


전쟁에 여진족 군대를 동원할 만큼의 영향력은 미치지 못했던것 같다.


대표적인게 윤관의 여진정벌인대 보다 적은규모의 여진군대를 상대로


전쟁이 상당히 치열하게 진행됬으며 결국 정치적인 요소와 더불어 


유지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면서 여진족에게 9성을 반환하게 된다. 


물론 이때의 여진족 추장은 금나라를 건국한 명장인 아골타이고 


그 세력도 고려초기와는 비교도 안되긴 했지만 고구려나 발해가 


비교적 건국 초기부터 말갈족을 성공적으로 복속시켜 나간대 비하면 


결국 여진족의 흥기를 막지 못한 고려의 모습은 아쉬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