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는 어렸을 적에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었습니다.

얼굴은 자그마하고 귀여웠던 편이라 남녀를 가리지 않고 첫인상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친구의 아버지는 판사, 어머니는 군인이어서 엄하게 자란 그녀는 좀 처럼 친해지기 힘들었습니다.

대신 그녀는 책을 너무 좋아해서 아마 기억을 떠올려보면 초등학생인데도 이해는 몰라도 교양 수준은 고등학생 정도 되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담임선생님께서 반 전체가 돌아가면서 장기자랑을 하도록 시키셨습니다. 강제로요.

모두 하루에 5-6명씩 장기자랑을 했고 비록 강제였지만 다들 미친듯이 준비했습니다.(초반에 한 애들은 사실 준비도 없었고 의욕도 없었지만 나중에는 못 한 사람들보다 더 의욕이 생겼더라구요.)

하지만 일부 그 아이와 친한 아이들은 걱정했습니다. 그 아이는 너무 내성적이었거든요.

그러나 막상 그 아이 차례가 되자 그 아이는 굉장히 무시무시한 공포 이야기를 작은 목소리로 풀어놓았습니다.

작은 목소리이기 때문에 더더욱 몰입도가 높았고 모두들 그날 밤에 잠을 못 잤을 겁니다.

며칠이 지나도록 그 이야기가 회자되었고 일부 아이들도 무서운 이야기를 했지만

장기자랑 투표에서는 의외로 춤이나 노래를 부른 아이가 아닌 그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종종 아이들의 요청과 담임선생님의 허락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그녀 자신의 소심함도 그리고 친구들의 우정도 모두 좋은 쪽으로 발전 시켜 나갔지요.

반이 바뀌고 해가 흘러도 여전히 그녀는 공포이야기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여중에 가고 여고에 가고 남중남고트리였던 저에게는 몇 안되는 친구로서의 여성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즈음 저는 오컬트 쪽으로 기연을 얻어서 한창 뭔지도 모르고 타로를 배우던 터라 그녀의 한창 성숙된 공포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왔지요.

그런데 제가 고3 즈음 그녀는 공포이야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연락도 끊었지요. 그녀는 어찌보면 특이한 특기였던 그녀의 장기를 버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연락도 안되서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재수후 대학에 붙자 고3때 이후 연락이 없던 그녀는 상담을 해왔습니다. 사실 재수 때부터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지만 공부하는 사람 심란하게 하기 싫었다구요. 어떻게 보면 그녀다운 착한 배려였습니다.

전 재수학원 시절 상담을 핑계로 고백받은 적이 있어서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별의별 생각이 다들면서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꺼낸 얘기는...

몇년째 잠을 자지 못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꿈 속에서 누군가가 자꾸 죽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건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했던 공포 이야기 속...

전 심리학적인 부분으로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가 서슴없이 보여주는 목과 쇄골쪽의 상처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이미 그런 건 무용지물이란 걸요.

오컬트라는 것도 굉장히 이상한 취미였기에 현재 음악 프로듀서쪽으로 이름이 나있고 제 스승인 지인 누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퇴마쪽에서도 알아주던(현재는 그만두었지만) 시절인지라 바로 방법을 제시해주시더라구요.

전 그녀에게 과외로 번 돈의 일부를 탈탈 털어 켈틱드래곤 타로를 사주었습니다.(사실 어느 타로라도 상관없었고 타로가 아니어도 되었지만) 굉장히 무게있는 말투로 잘 때 두라고 놓아주었지요. 그리고 시나몬스틱도 한 통 놓아주면서 자기전 30분정도 물고 있으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시나몬 스틱은 만화에서나 간지나지 실제로 물면 5분정도 지나면 침이...ㅠㅠ)

그리고 그녀와 1주일동안 일부러 만나지 않았습니다.

1주일 후 집안 사정으로 연락하지 못 했다는 핑계와 함께 그녀와 만났을 때는 모든 게 해결되었더라구요. 처음 며칠은 여전히 악몽에 시달렸지만 나중에는 타로와 시나몬 스틱 덕인지 악몽을 꾸지 않는다구요.

나중에 누나께 들어보니 퇴마적인 요소는 없었습니다. 모든 걸 심리학으로 해결하셨더라구요.(하지만 역시 배운 사람은 대단하네요.) 악몽도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 대한 무의식에 대한 반영이며 플라시보 효과를 동원했을 뿐이라고. 흔히 언급되는 사례중에 실제 귀신에 의한 사례는 0.0000000000000000000001%에 불과하다구요. 논리와 이성으로 거의 다 해결된다구요.(사실 퇴마요소가 있었다면 더욱 큰일이었겠죠.)

그리고 세상의 귀신은 자기가 지어낸 만큼 생기는거라고. 자신의 주위에 말이죠.(실제로가 아니라 자기의 무의식 속에 말이죠.)

누나는 키득키득거리면서 저에게 그 초등학교 때 들었던 이야기를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냐구요.

그 이야기는...

자살을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기말고사를 망쳐서 부모님께 두들겨 맞고
자살을 선택한 고3의 슬픈 이야기죠.
신발을 벗어놓고 뛰어내린 간단한 자살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기억하려니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실을 많이 뭉쳐서 아마 목을 매었던가 그랬을 겁니다.
제가 들었을 때 섬뜩했던 이유는
피가 줄줄 흘렀던 이유겠죠. 보통은 목을 매는 것과 다르게 실이 목을 파고들어 나중에 살고자 끊으려고
해도 실 뭉치라 하나씩 끊어지거나 너무 가늘어서 끊어지지는 않고 그럼에도 억지로 목과 주변을 긁었으니까요.
자살 이야기는 그렇게 피투성이로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