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글쓰기는 성취가 아니라 과정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걸까요? 올드펜스는 글쓰기라는 행위에 '직접 보상'을 제시함으로써 우선 '글쓰기 무용론'에서 벗어나려는 단초를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 돈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라는 아주 오래된 억압에서 작가들을 해방시킨 것입니다. 글을 쓰면 돈이 나올 수 있으니, 이제는 아무도 글쓰기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올드펜스 이전의 세상에서는 글쓰기란 '성취'였습니다. 지금도 많은 글쓰기 지망생들, 소위 '문학청년'들이 여기저기에 모여서 '등단'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성취 문화'의 결과는 작가 양성이 아니라 '패배자 양성'이 주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취문화의 그림자가 무엇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문학하는 사람들이 자기 성취를 위해 사회의 어두운 곳에 조명을 비추는 일을 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그림자는 방치하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취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애초에 글을 쓰지 말았어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전 국민이 글을 잘 쓰는 나라라고 생각을 해 봅시다. 그게 나쁜 걸까요? 예전에 귀족들이나 받던 교육을 전 국민이 받을 수 있게 되고, 대부분의 국민이 읽고 쓸 줄 알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을 나오고 있는 우리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건 다른 방향에도 그대로 대입될 수 있습니다. 전 국민이 과학을 잘 하는 나라, 전 국민이 수학을 잘 하는 나라, 전 국민이 노래를 잘 하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전 국민이 '글쓰기'를 잘 하는 나라가 된다면 그런 나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글쓰기를 외면하고 있는 바탕에는 글을 써서, 정확히는 글을 쓰기 전에 '생각을 해서' 얻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때까지는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를 하면 되고, 대학에선 학점을 위한 활동만 하면 되고, 직장에 가서는 윗사람의 말만 잘 들으면 되는 상황에서 누가 생각을 하고, 글을 쓰려고 하겠습니까?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고 글까지 쓸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조직에서 무리에서 도태되거나 왕따당하기나 쉬울 뿐입니다.
지금도 글쓰기 교육을 하는 현장에서 '글을 쓰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강한 확신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블루칼라 계층에서 발견되는 그런 자기 확신에는 그저 넋을 놓고 맙니다. 그런 분들에게 이렇게 반문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마 님은 글을 쓰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으니 그렇다고 칩시다. 그러면 님의 자녀들에게도 글쓰기를 가르치지 않을 작정이십니까?'
아무리 극악무도한 사람이라도 이런 반문에 '그렇소'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글쓰기'의 소중함과 가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 오랜 억압, 즉, '글을 쓰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는 물음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래서 어떤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글을 쓰고, 또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을 의미해야 합니다. 그냥 개인적 만족이나, 등단, 베스트셀러 작가의 꿈을 위해 글쓰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글쓰기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글쓰기는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직장인들이 회사에 가서 잠깐 졸아도, 혹은 업무를 망쳐도, 월급은 받아야 하는 것처럼, 글쓰는 사람들이 글을 잘 써도, 혹은 아직 미숙해도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올드펜스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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