仲尼曰 君子中庸, 小人反中庸.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


중니왈 군자중용, 소인반중용.

군자지중용야, 군자이시중, 

소인지중용야, 소인이무기탄야.



중니仲尼는 공자의 자字입니다. 자는 성년이 되면 붙이는 이름인데, 공자는 원래 이름이 구丘였지만, 성인이 되어선 중니라고 불리운 것입니다. 중용의 저자인 자사는 공자의 손자인데, 손자가 할아버지를 자로 부르는 게 경우에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자孔子가 '공선생님'이라서 공씨 성을 가진 다른 사람과 혼동할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일단 '중니'라고 써서 말씀의 주체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었다고 보면 좋을 듯 합니다.


'군자중용'은 군자는 중용을 지킨다는 뜻이고, '소인반중용'은 소인은 중용에 반한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소인은 군자의 반대말인데, 소인이라고 해서 '천사와 악마'의 악마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전제에서 살펴보면 우리는 모두 어떤 면에서는 군자이고, 어떤 면에서는 소인입니다. 아직 배움의 완성에 이르지 않았거나, 경험이 짧은 사람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중용에 맞는 행동을 하기 어려우므로 때에 따라 소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군자중용, 소인반중용'은 '주어 + 서술어'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중용을 지키면 군자이고, 중용을 지키지 못하면 소인이다'처럼 역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인은 중용을 안지키려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중용을 지키려고 하지만 실패하는 사람으로 새겨야 합니다.


군자의 중용은 '군자이시중' 즉, 군자답게 '시중時中' 즉, 때에 맞는다는 듯입니다. 중용을 '때에 맞게' 행하는 사람이 곧 군자인 것인데, 이런 말씀으로 보아서는 '옳은 일'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공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소인의 중용은 '소인이무기탄야', 즉, 소인답게 '무기탄無忌憚', 즉, 꺼리낌이 없다는 뜻입니다. '기'도 '탄'도 모두 '꺼린다'는 뜻입니다. 소인이라고 해서 중용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중용을 행해서 문제가 되는 사람입니다. 가령, '사람을 보면 웃는 낯을 해야 한다'는 중용을 지키려고 상가집에 가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은 옳지 않은 것처럼, 어떤 중용도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중용의 첫머리에 '시중'을 핵심어로 한 장을 할애한다는 것은 중용이 아무리 위대한 법칙이라고 해도 그것이 시간을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 입니다. 군자는 때론 드러내고, 때론 감추거나 숨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드러내고 감추는 모든 행동의 기준은 바로 '시간'입니다.


제아무리 잘난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노인이 되고 쇠약해 지듯이, 아무리 좋은 원칙이나 도덕도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절대 진리는 없고 절대 옳은 사람도 없습니다. 늘 시대를 고민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한 번 옳았던 사람이라도 금방 '소인'이 되고 만다는 것이 바로 공자의 가르침입니다.


중용은 늘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자는 늘 배워야 합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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