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복지
현 연구에 따르면, 개미들은 장애를 입은 개미들을 자원이 풍부하면 잘 돌본다고 하나, 자원이 빈약해지면 장애 입은 개미들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이 또한 인간 사회와 같은 모습이겠다. 하나의 물질 세계에 있으니 수렴되는 구석들도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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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는 평생을 3D를 해도 부자가 태어나는 즉시 날로 얻는 돈을 벌 수가 없다.
그런 따위 세상이 무신론에 잠식되어 있다면 도대체 빈자가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이런데도 부자와 노인은 노력 따위를 외치나, 모든 것은 운이고, 그런 노력을 외치는 자 따위가 세계 8대 부자의 합 보다 가난하다면 논리 모순일 뿐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조금만 강자인 것 같으면 갑질을 하는 종자 따위가 널린 한국에서는 더욱 인간은 안락사가 허용되기만 하면 안락사를 향해서 돌진할 것이다.
부자와 노인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획책하나, 민주주의가 파괴되면 오직 군인이 빈곤한 피바다를 건설할 뿐인 것은 역사에 새겨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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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에서 학생 운동에 대해 논하길 프랑스 68혁명, 한국 86혁명 공통인데, 당대 사회 기득권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권위와 권력을 유도리 있게 적용했던 것 가지고 당시 갓 20 된 애들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오판하면서 멋모르고 반항한 것일 뿐이라는 불펜의 댓글 평이 있었다.
일리가 있긴 한데, 당대 기득권이 불필요하게 과도한 권세를 행사한 면도 없진 않아서 필요했던 젊은이들의 당대 저항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
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율이 필요한 일인데 나름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이바지는 한 것 같지만 이제 좀 새로운 세력에게 사회 주도권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이젠 혁명자들이 기득권이니 곱게는 물러설 생각은 없을 것이다. 잘 되었으면 좋겠고, 무엇 보다도 사회 구성원이 물갈이되기 때문에 태어나는 사람은 원시인 아기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결국 역노화가 나와서 인류사에 반복되는 사회 리셋 현상이 멈춰야 새로운 역사가 쓰일 것이다.
결국 미래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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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자신들이 모든 것을 독과점하고 천상의 쾌락을 즐기는 걸 정당화하려고 무신론을 퍼뜨렸다. 비논리적이고 부정적인 무신론만이 종교들과는 달리 그런 방탕한 삶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부자 포함 모든 사람들에게 수도하는 자세를 요구하는데 부자는 그것이 싫었다.
그러나 무신론은 모든 것이 공허라는 것이니 대다수 청년들이 열심히 일하기는 커녕 살기도 싫게 만들어 놓았다. 이는 부자가 치르고 있는 사상적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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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 좌파, pc 진영은 자궁을 포궁으로 부른다.
포궁이란 세포를 담는 그릇이란 뜻이다. 태아는 세포 덩어리에 불과하므로 어떤 경우에든 낙태해도 된다는 뜻으로 쓰는 용어가 소위 포궁이다.
태아는 커서 인간이 된다. 고로 이는 인간도 세포 자체에만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공산당은 당원을 세포 동지라고 부르는 바 있다. 인류는 대를 이어 유전인자로 이어지고 이것은 세포들의 연속이며 고로 이 같은 세포 연속체로서만 인간 사회는 영생하므로 개인은 오직 세포로서만 기능하여 평생 사회를 위해 쓰임받다가 죽으라면 죽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의 인간관이다.
이런 인간관 즉 유물론을 좌파가 골라잡은 것은, 좌파가 오직 권력을 잡기 위해 기획되고 설계된 사상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좌파 사상이 구축되어 있는 것은 좌파 사상이 나르시스트 + 사이코패스가 세상에서 떵떵거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좌파의 한 태두 칼 마르크스는 어릴 적에 여동생들에게 독이 든 케익을 먹이면서 즐거워한 인성 파탄자였고, 악마숭배자였다. 악마숭배자라고 자신을 규정한다는 것이 곧 그 자체로서 악마의 실존을 보증하지는 않으나 이는 자신이 악의로서 세상을 대하겠다는 선언임은 분명하다.
좌파가 무신론인 것은 신을 염두에 두면 자연스럽게 인간 권력자와 심리적 권력 분산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는 존재인 신을 부정하는 것은 신을 긍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논리적인 것이나 좌파가 그리 고집 피우는 데엔 이와 같은 이유들이 존재한다. 개인을 담는 그릇을 뜻하는 자궁 호칭을 버리고 포궁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같은 용어 혼란 전술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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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말하는 바는 모든 정보들의 평등이다. 과학에 따르면 만물은 정보 단위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에너지이며 하나의 법칙 아래 조율된다. 즉 만물은 평등하다.
요한 복음은 "태초에 로고스(말씀, 이성, 존재원리, 절대진리)가 있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는 하나의 수학적 물리 법칙 아래 우주가 조종된다는 현대 물리학의 플라톤주의적 가정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우주를 지배하는 것이 인간에게 혹은 그 탐욕스러운 권력자 개인에게 가능해도 그는 다만 정보로서 분산된 존재이기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된다. 그가 아무리 강대해도 그는 다만 미세한 정보들의 조합일 뿐인 것이다.
기독교는 진리가 육화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말한다.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는 존재란 세상과 운명을 같이 하면 지배라고 할 수 없기에 초월자여야 하고 절대자여야 한다. 하느님이 그렇듯 실존하신다면 인간이 절대 권력을 쥐어도 그 상위에 계실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가장 타락한 자들이 과학적 유물론에 입각한 무신론만을 인류 전체에 세계관으로 강요하고자 공작해 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논리로 생각하면 유신론도 무신론도 근거가 부족한 동시에 논파 불가능이기 때문에 결국 불가지론이 결론으로 이르는 것이지 무신론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교육은 더욱 악질로서, 서구에서 무신론이라고 일컫는 것은 보통 불가지론이라는데 이를 일률적으로 무신론으로 번역한 듯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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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블로그의 종교/영성 게시판 글을 다 읽어 보았다.
결과 내린 결론은 내가 일종의 사역자로서 인터넷 상에서 적어도 독자 제현 분들이 신에 관해 생각하게는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DC 무신론 갤러리의 어떤 무신론자에 따르면 기독교를 믿고 싶어 하는 것만으로도 기독교도라고 한다. 무신론자, 불가지론자일수록 종교에 지식 많은 경향이 있다 하니 이것이 아예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닐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난 기독교도다. 난 오프라인에서 교회에 나가서 사역하기에는 수완, 성향, 사정이 안 되서 안 된다.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 이같이 신에 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정도의 사역이라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에 대해서 신을 제외한 어떤 누구도 완전한 지식을 갖기는 불가능할 것이고 이는 나도 그럴 것이 자명하므로 난 다만 신에 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정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고 이것이면 나름 사역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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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숭배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곧 악마의 실존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을 악마숭배자로 보았다는 것은 세상을 악의로 대하겠다는 선언임은 분명하다. 마르크스는 악마숭배자였다.
마르크스는 그의 한 시에서 자신이 신과 동급이라고 선언한다.
만약 신이 세상과 똑같은 논리를 가지되 단지 이를 숨기고 세상에 힘만을 강요하는 존재라면, 이는 신과 최소한 논리로서는 동급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 된다. 신은 기독교에서 사랑을 강조하는 분이고, 사랑을 중심 가치로 놓는 분이므로, 세상에서 신의 논리가 우위가 아니라면 이는 하느님이 사랑을 세상에 선포할 어떤 당위도 잃게 된다. 그런데 서로 사랑할 당위가 없다면 나도 남도 스스로조차 사랑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되고, 곧 세상은 허무가 중심적 테마가 되며, 이를 진정으로 견딜 수 있는 정신을 가진 자는 자기애성 성격 장애자 밖에 없게 된다.
때문에 나르시스트 + 사이코패스만이 좌파 정점에 모일 수 있다는 내 추론이 나왔다. 이것이 맞는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때문인지 레이몽아롱은 "정직하고 머리 좋은 사람은 절대로 좌파가 될 수 없다. 정직한 좌파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가 좋은 좌파는 정직하지 않다. 모순투성이인 사회주의 본질을 모른다면 머리가 나쁜 것이고, 알고도 추종한다면 거짓말쟁이다.” 라고 했다. 거짓말쟁이란 사기꾼이다.
하느님이 실존하실 때 전지전능이 속성이어야 하는 한 이유이다. 전지 = 전능이라고 혹자는 말하나 내가 볼 때 이는 다르다. 전능은 말 그대로 신의 힘의 완전함이고, 전지는 신이 세상에 대해 불가지한 논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이 불가지함이 단순히 신이 세상에 대해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세상에 강요할 때 세상 전체가 틀어지는 가공한 것이어야 혹은 사람으로선 세상으로선 묘사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어야 신은 진정으로 논리적 우위에 놓일 수 있고 그래야 세상은 서로 사랑해야 할 당위를 얻는다.
그렇기에 사람은 하느님이 살아 계시어 세상에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렸다고 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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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의 중요한 전제 둘을 찾아냈다.
첫째,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은 어떤 존재에게든 불가능해야 한다. 누구 마음대로 그렇게 무신론자는 단정을 짓는가? 그런 분이 있다면 그분의 뜻을 사람은 헤아리지 못 할 수는 없다고 무신론자는 단정짓기에 그렇다.
둘째, 무신론자는 자신은 절대로 고통을 당해서는 안 되는 자의식적 당위성을 갖는다고 믿는다. 그런데 세상에 고통이 있으니 그것만으로 신은 없어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이 무신론자이다. 가장 나이 많은 한국인 생존 교수인 김형석은 "사랑 있는 고생이 곧 가장 큰 행복이다"라고 했다. 고통은 때때로 행복으로 가는 열쇠가 될 수도 있는데 이를 철저히 부정하는 자가 무신론자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무신론이란 오만이고 교만이다. 설령 신이 없다한들 그것을 진실로서 알아낼 방도는 없다는 것이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천명한 바임에도 무신론자는 망령되게 고집 피우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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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없는 무신론 세상이 맞다고?
무신론은 물리주의 유물론에 기반한다.
물리주의 유물론도 물론 우주를 만든 배후가 신이라는 식의 논리를 통해 얼마든지 유신론이 될 수가 있지만, 무신론은 오직 물리주의 유물론에만 기반한다. 물리주의 유물론은 당대의 과학에 기초한다. 현 과학에서 플랑크 시공간 밑으로도 펼쳐진 세계는 생각만 해도 지성의 구성이 변화된다. 즉 지성은 무신론에서는 설령 세상 전체를 지배해도 사유만 해도 자신을 변동시키는 자연법칙 아래서 구동한다.
이래서는 지성은 어떤 항상성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된다. 무신론에서는 고로 극락영생을 살아도 실은 순간에조차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무신론은 극단적 아노미, 아나키로 흐른다. 무신론에서 야만자나 염세주의자는 마지막까지 있던 신의 가능성이라는 의구심마저 잃으므로 폭주 밖에 없다. 무신론을 진실되게 떠드는 자의 내면이 자포자기나 악의에 물들어 있을 것이라고 때문에 난 본다.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는 존재가 한 정의인 신을 부정할 방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 주장이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처럼 부존재 주장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즉 유신론처럼 무신론도 완전히 정당화할 수 없고 때문에 유신론을 부정하면 나오는 논리는 무신론이 아닌 불가지론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절대자 주님이 있다면 그분은 전지전능하고 따라서 전선할 방법도 알 것이다. 신은 있을 수 있어야 자살하지 않을 논리가 있어야 살아 있을 수 있으므로 이것이 신의 선이다. 선이란 고로 유와 이어지고 유는 보다 많은 존재들의 번영을 포용한다. 악은 고로 무와 이어진다. 허무와 악의 한 공통점은 둘 다 성취될 때 무언가를 폐허로 만든다는 데에 있다. 감정이란 생사 유불리에 따라 선택 편의를 위해 진화되었으므로, 이에 따르면 신도 나름의 감정을 가질 것이고, 그렇기에 인간 보다 높은 신격을 갖출 것이다.
신은 물론 상상으로 추론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상이 곧 허구라는 뜻은 아니다. 돈도 국가도 상상이다. 상대성 이론을 통해 블랙홀은 상상되었고 실존함이 밝혀진다. 만약 신이 있다면 이는 신이 자신의 존재 가능성 정도는 인간에게 추론할 이성을 주신 것이 될 따름이다.
선한 신이라면 인간에게 사후세계를 보장했을 터이고, 어떤 세상이든 서로 간에 사랑이 있다면 이는 보다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예수의 계명 서로 사랑하라는 탁월한 해결책이다. 세상에 악과 고통이 있는 것은 자유를 보다 넓게 확보하기 위한 장치일 수 있다. 자유는 우주의 한 조각으로서의 사람이 특정 시공간에서 전존재로서 융통할 수 있는 정보 총합의 유동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이것이 보장될수록 다양성의 폭도 커질 것이다.
이는 신이 세상에 자유를 줄 정도로 사랑하신다는 뜻일 수 있다. 성경 요한 일서 4:10는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라고 기록한다. 있다면 불가지 너머에 계실 신이기에 지극히 높아서 인간이 영향을 미칠 수는 없고 절대자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만 있을 것이기에 이는 타당한 기술일 것이다.
즉 신이 없다면 영원도 없고 세상의 어떤 지성도 항상성을 잃으며 이는 허무하다는 것이 된다. 무신론이란 때문에 순간조차 없는 공허의 철학이고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침묵이다. 무신론자면 진실이 어떻게 되든 자신도 세상도 헛헛하므로 동정심이 있다면 굳이 사람들 사이에 혼돈을 조장하지 않겠으나 굳이 떠드는 것을 보면 힙스터거나 악마숭배자일 것으로 의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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