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날씨인가, 무심코 생각하고는 저녁이라 고쳐 입 밖으로 뱉어보았다.
보도블럭이 깔린 내리막길이지만 길은 이미 익숙하다.
이따금 상가 골목 안쪽으로 이어진 차도만 신경쓴다면 넘어질 일은 없다고 봐도 될 정도.
걸어야 할 길의 남은 거리와 고단함을 계산해보는 것도 이내 흥미가 식어 곧 생각은 산길을 달리는 자전거처럼 덜컹이며 널뛰기 시작한다.
편린.
기억하는 만큼의 시간을 하나의 개체로 본다면 생각은 평생을 같은 몸 위에서 길게 또는 짧게 제자리뛰기를 하는 모습일지도.
구분에 큰 의미는 없을거란 느낌은 받지만 대부분은 크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것들.
그럼에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결론은 한번 한번의 널뜀마다 서있던 자리에 발자국을 새기게 만든다.
그건 어쩐지 우울한 레토르트맛.
길은 이어진다.
아무리 익숙한 길이라고 해도 걷는 시간만큼은 언제가 언제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하나의 단위로 생각을 꺼내 계량해볼 수 있다면 그 무게는 그만큼의 시간보다도 더 무거울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말린 버섯처럼 시간에서 뽑는 순간 쪼그라들어 무미건조해질지도.
사실은 그렇게 될 것만 같다.
생각없는 시간은 말이 되지만 시간없는 생각이란 건 어쩐지 말이 안 되는것만 같아서.
그럼에도 이 묘한 슬픔이 섞인 간지러움만큼은 내 안을 맴돈다.
걷는다는 감각들과 함께 실재한다.
밤길은 특별한 모습이 별로 없어 피로를 억누르기엔 심심한 편, 도착할 집을 떠올려본다.
대충 땀에 찬 발과 기름진 손 얼굴 정도를 닦고 눕겠지.
내일 아침은 피곤할게 분명하다.
불투명한 정신으로 일어나 생각없는 배고픔만 달래고 움직이고 움직이다 다시 이 밤길을 걷겠지.
이런 일련의 흐름이 변화무쌍하다는 청춘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모습임에 피로는 만성으로 굳어진다.
그렇든 그렇지 않든 적어도 나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만성적인 피로를 달고사는, 혹은 그런 느낌을 달고있는채로 걷는 밤길.
확신없는 길을 걷는다.
이어폰을 꺼내 꽂고 음악을 듣는다.
오늘부터는 그냥 걸어보기로 했지만 기분이라도 바꿔야 이 만성피로라는 단어에서 거리를 둘 수 있을것만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노래는 익숙한 멜로디. 신곡을 추가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건 어떤 결심이라기보다는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쪽에 더 가깝다.
보통은 분위기만 나눠놓고 그때그때 찾지만, 이런 때에는 한 곡도 듣지 못하고 넘기거나 한 곡만 계속해서 듣는다.
곡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무언가에 잔뜩 안달이 난 내 상태가 문제겠지.
아니면 말고식의 추측이기는 해도 사실 난 꽤나 그렇다고 믿는 편이다.
실제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문제될 건 없으니까 될대라 되라는 식.
어쩌면 내 성격은 이렇게 살다가 지금처럼 꽉 막혀버린 것일지도.
하지만 이런 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못한다.
오직 길은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것이, 아직 도착하지 못했음에 당연하게 이어지는 이 길만이 제일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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