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주제는 제일 잘 담음ㅎ 그때 당시엔 젤 잘 썼던 글
원시
해가 뛰면 하늘과 땅이 밝아오고 동굴 내부도 훤해진다. 그럼 나는 잠에서 깰 수 있고 해가 제 무게에 못 이겨 다시 떨어지면 동굴은 어두워지고 이내 하늘과 땅도 눈을 감고선, 나는 졸리워진다. 그리고선 다시 해가 날 깨워준다. 해는 이런 방식으로 나에게 말을 건다. 뻐끔거리는 입은 없어보여도 시끄럽기만한 닭보다 자상하게 날 대해준다.
하지만 해도 꼭 자상하지만은 않다. 나무가 생기를 되찾을 무렵이면 항상 그는 뜨겁게 울렁였고 나는 삐질삐질 땀이 난다. 해는 꼭 그런 방식으로 나를 혼낸다. 그럴 때면 나무가 내게 말을 건다. 가끔 둘은 싸우는 듯 보인다. 해가 화가 났을 땐, 난 나무 아래서 쉬었고, 나무는 자장가를 불렀다. 분명 그래서 잠이 오는 것일 거다.
잠에서 깼을 땐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어...”
난 너무 무서웠고, 동굴을 향해 달렸다. 나무는 반대편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그걸 알아챈 첫 날, 나는 나무를 부둥켜 안고 울었다. 함께 가고 싶었다. 동굴에만 들어가면 다시 해가 뜀박질을 할 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지쳐 쓰러져 다시 날이 밝아오면 해가 우릴 자상히 깨워줄거라고 말했다. 나무는 내가 다 울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렸고, 내가 동굴로 달려가야만, 나무들은 다시금 뛰어갔다. 이기적이게도, 동굴엔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뿐이었다. 나무와 나는 서로에게 자상했지만, 난 마지막에 혼자였고, 나무는 그렇게 이기적인 내게 아무런 위로도, 이해도 해주지 못했다. 그 역시 그만큼 이기적이었다.
태양의 이면을 바라보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다. 나는 그의 활기찬 뜀박질을 경외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눈 따가우리만큼 절박한 그의 추락을 보자기엔 난 너무 어렸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은 그렇게도 두려움에 떠는 나를 위해 항상 헌신하지만, 불행히도 난 그가 누군지 모른다. 그가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단지 나는, 모두가 함께 살았음 했다. 그런데, 어느날 돌이 말을 걸었다.
“살기 위해서 넌 사냥을 해야 한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의 말이었다.
“다른 동물을 이길만큼 돌을 깨야 한다.”
역시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의 말이었다.
“다른 동물을 보면 공격해라.”
나는 다른 동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난 나와 같이 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다른 동물이 달려든다면 도망쳐라. 하지만 네게서 도망치는 동물이 있거든, 좇아 이 돌로 죽여라.”
다른 동물이란 그런 것이었다. 도망치는 사람은 나와 다른 동물이었다.
“나무는 다른 동물인가요?”
“나무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식물이다.”
“식물이 뭔가요?”
“모른다. 단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식물이다.”
“하지만 그 또한 태양을 피해 도망치던데요?”
“난 태양을 무서워한 적이 없다. 나무도 태양을 무서워한 적이 없고. 태양은 무서워 해야할 그런 존재가 아냐.”
나는 내가 적잖은 충격을 받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가 조여오는 듯 했다.
“이 돌로 나무를 깨서 모아오라.”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은 내게 손짓했다. 나는 나무를 향해 다가가다가, 다시 뒤를 돌아봤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내게 말을 걸던 그 자리에 서있었다.
나는 뛰었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 수도 없이 두려움에 떨며, 눈물 흘리며 뛰던 그 길을 따라 뛰었다. 내가 아껴왔던,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나를 부정해왔다. 멈춰서서 돌아봤지만, 다들 그 자리 그대로 였다. 아무것도 태양에게서 도망치지 않았다.
몸이 떨려왔다. 손에 든 돌을 아프리만큼 세게 쥐었다. 그때, 뒤편 풀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을 숙이고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뒤틀린 가지 사이를 여러 번 꺾어가며 뱀이 태양과 나로부터 도망쳤다. 그는 다른 동물이었다.
나는 그를 쫓았다. 다리는 떨리는 듯 뜀박질했다. 뱀은 계단처럼 이어진 돌들을 타고 동굴의 위로, 돌산의 위로 도망쳤다. 나는 끝없이 그를 쫓았다. 나무들이 나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나는 멈춰 그들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런 내 감정은 사라진지 오랜 듯 했다.
절벽이었다. 뱀은 돌아서서 나를 노려봤다. 뱀은 달려들었고 나는 도망치려 했지만 그는 내 목을 묶었다. 나는 그의 꼬리를 잡았다. 오른손으로 돌을 휘둘렀지만 빗나갔다. 뱀은 내 후두부를 물어 뜯으려 했다. 나는 돌로 뱀의 머리를 쳤다. 이윽고 목을 조이던 힘이 빠지더니, 뱀이 내 몸을 쓸면서 떨어졌다. 뱀은 죽었다.
무심코 절벽 너머 지평선을 바라봤다. 받쳐줄 구름도 없지만, 추락하고 있는 태양은 붉게 타올랐다. 너무 아름다웠고 난 한동안 멍했다. 내 손을 내려다보며, 붉은 세상을 느꼈다. 이윽고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돌은 이런 식으로 내게 말을 거나보다. 드디어 그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 돌은 내게 좀 짖궂었지만, 난 더 이상 머리가 조여오지 않았다. 아무도 구하지 않았고, 나는 구원받지 않았고, 구할 생각도 없다. 난 여제껏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음이 세상에 떠벌려진 셈이다. 부끄러웠지만, 변명의 여지는 있었다. 단지 그렇게 될 운명이었으니까. 나는 그런 내 운명과,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 이해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더 좋았다.
태양이 절벽을 비추니 환했고, 점 하나가 뚝 떨어지곤, 나무가 푹.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도망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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