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은
이상하게 손님이 좀 늘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젖는 건 싫어하면서
누군가를 부르는 건 더 잘한다.

나는 그걸로 먹고 산다.

콜이 하나 떴다.

거리 3.2km
요금 4,800원

그럭저럭 괜찮았다.

비는
막 쏟아지기 직전이었다.

이럴 때가 제일 애매하다.

맞을 거면 확 맞는 게 낫고
안 맞을 거면 안 맞는 게 낫다.

이건 뭐
둘 다 아니었다.

헬멧을 눌러쓰고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한 번 떨더니
곧 익숙한 소리를 냈다.

이 소리 들으면
아직 괜찮구나 싶다.

도착했을 때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괜히 시끄러울 것 같아서 그냥 노크했다.

안에서
여자가 나왔다.

맨발이었다.

머리는 젖어 있었고
수건도 안 들고 있었다.

샤워하다가 그냥 나온 느낌이었다.

“배달이요.”

그 여자는
나를 한 번 보고

비를 한 번 봤다.

그리고 말했다.

“들어와요.”

나는 잠깐 멈췄다.

이런 경우는
안 들어가는 게 맞다.

뉴스에서 본 적도 있다.

들어갔다가
이상한 일 생기는 경우.

그래서 말했다.

“여기 두시면 됩니다.”

그 여자가 웃었다.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그냥…
버릇처럼 나오는 웃음이었다.

“비 오잖아요.”

나는 대답을 안 했다.

그 말이 설득된 건지
그냥 귀찮았던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조용했다.

TV도 꺼져 있었고
핸드폰 소리도 없었다.

좀 이상했다.

사람 사는 집 같지가 않았다.

음식을 건네주자
그 여자가 물었다.

“바빠요?”

나는 바로 말했다.

“네.”

사실은 그렇게 바쁘진 않았다.

이 시간은 항상 애매하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게 편하다.

그 여자가
잠깐 나를 보더니 말했다.

“그럼 5분만 있어요.”

이런 말은
대충 둘 중 하나다.

진짜 5분이거나
아예 아니거나.

그래서 나는
벽에 기대서 서 있었다.

앉기도 좀 그렇고
그냥 그랬다.

그 여자는
바닥에 앉아서

배달 온 음식을 열었다.

김이 올라왔다.

좀 식은 국물 냄새가 났다.

이상하게 익숙했다.

어디서 많이 맡아본 냄새였다.

그 여자가
한 숟가락 먹더니 말했다.

“오빠.”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거 맛있어요.”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잠깐 생각했다.

칭찬 같진 않았다.

“그래요.”

그 여자는
조금 웃더니

숟가락을 내려놨다.

그리고 말했다.

“나 오늘 아무랑도 말 안 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다.

요즘은
그런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그 여자가 다시 말했다.

“그래서 그런가
말이 잘 안 나와요.”

그제야 좀 이해됐다.

이건 대화라기보다는
연습 같은 거였다.

그래서 그냥 말했다.

“천천히 하세요.”

그 여자가
한참 가만히 있었다.

진짜로 한참.

비 소리가
창문에 붙어서 흘렀다.

시간이 좀 느리게 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그 여자가 말했다.

“오빠는요.”

“예.”

“왜 이거 해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대답은 간단했다.

“돈 벌려고요.”

그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는 것처럼.

그리고 작게 말했다.

“나는 이유가 없어요.”

그 말이
이상하게 계속 남았다.

좀 걸렸다.

나는 시계를 봤다.

5분은 이미 훌쩍 넘었다.

그래서 말했다.

“저 가볼게요.”

그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또 와요?”

나는 대답 안 했다.

그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문을 열고 나왔다.

비가 이제 제대로 오고 있었다.

헬멧을 쓰고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바로 붙었다.

뒤를 한 번 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콜이 하나 더 떴다.

거리 1.8km
요금 3,200원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엑셀을 조금 더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