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토끼의 뱃속에 단서가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인가 내 주변의 모든 환경을 주시하고 있는 커다란 음모의 중심속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작자가 원하는것은.. 하필 나를 만나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서른살이 되던해 나에게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연구부장의 얼굴이 스처갔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호기심이 다시한번 나를


깨웠다. 어차피.. 당시 모든것을 가진 나에게 자제심이 없었듯 지금 충분한 호기심과 용기를 가진 나에게는 더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나는 방금전까지 누워있던 허름한 오두막 속에 기어들어가 녹슨 칼과 통조림 몇개를 챙겼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돌몇개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벗어두었던 옷가지 몇개를 껴입고 나머지는 허리춤에 맸다.


----------------------------------------------------------------------------------


 어디까지 온것일까? 길을 잃은 듯 하다.


고속도로에서 볼때는 작아 보이던 산이 안에서 보니 끝이 없다.


애초에 내 다리는 그렇게 튼튼하지 않다. 오른쪽 무릎안쪽이 찌르는듯이 아파왔다. 정신없이 걸어오던중 내 양손에는 둔부에 커다란 네모모양의


도려내진 상처가 있는 토끼가 한 마리씩 들려있었다. 토끼는 한마리가 아니었다. 모든 토끼를 잡아야 하는것인지 내가 미쳐 놓칠까 걱정되


일부러 여러마리의 토끼를 풀어낸것인지 그게 아니면 걔중에 하나만이 진짜 장소를 가리키고 나머지는 함정으로 통해있지는 않을지


만약에 토끼가 죽지않도록 토끼 뱃속에 이물질을 삽입할 수 있는 수술실력을 가진 혹은 그러한 자를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6개의 산을


소유한 자본가가 나를 악의적인 함정으로 유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떨쳐내려고 애썼다.


해가 약간 기울었을 뿐인데 벌써 나무사이사이가 검게 물들었다. 지금 다시 움막으로 돌아간다 한들 그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걱정이 앞서지만 이윽고 멀리서 토끼한마리가 또 보였다. 나는 토끼의 뒷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역시나 붉은 자국이 있다. 나는 오른손에 들려있는 토끼를 왼손으로 옮겨잡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미 네번째로 토끼를 발견한 나는 상처입은 토끼중에서도 건강하게 뛸 수 있는 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번째놈이었는데 어찌나 빠르던지


꽤나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갔는데도 눈앞에서 사라지는데는 불과 몇초 걸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날씨도 어두워지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내가 처음 산속에 머물기 시작했을때 나를 제일 괴롭혔던것이 밤계곡의 추위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토끼 두마리를 옷안쪽으로 넣어 양쪽 옆구리에 끼었다. 순간 눈앞에 있던 네마리째의 토끼가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차!


두번째의 토끼를 놓치면서 내가 깨닳은 것은 산짐승을 아무리 뛰어 잡으려고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반쯤 포기한심정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곧 눈앞에서 사라질 것같던 토끼도 달음박질을 멈추고 다시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산짐승은 시야가 넓다 그렇게는 보이지 않지만 아마 지금 내 위치를 주시하고 있을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무리 걸어서 다가가려 해봤자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두 마리의 토끼가 있는데 뭣하러 세마리째가 필요하겠는가 나는 토끼 한마리를 품에서 꺼냈다.


 'OPEN'


단순하지만 너무나 섬뜩한 단어. 하지만 내가 움막에서 약간 녹이 슬어있는 낡은 나이프를 가지고 온것은 나 또한 호기심앞에서 그다지 자비로운


인간이 되지 못하기 때문일까.


토끼의 눈을 바라보았다.


떨고 있다. 하지만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토끼의 뒷다리를 움켜쥐었다. 놓치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았다. 토끼가 약간 발버둥쳤지만 병든 토끼는 이내 움직임을 멈추고 채념했다.


다음 행동을 하기까지 잠시 망설임은 있었다. 하지만 글쎄 난 그 순간 토끼 고기를 손질하는 법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퍽! 퍽! 퍽!' 


역시나 약간의 망설임이 있다. 깊은 겨울산의 추위보다도 더 심장을 죄여오는 차가운 죄책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발작적으로 반응하는 토끼의


모습을 보자. 오히려 얼굴이 상기되었다. 마치 누가 쫓아오는 듯이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토끼가 비명을 지르지 않는 것을 신에게 감사했다.


내 자신의 잔악함으로부터 발버둥치듯이 발작적으로 몇번을 더 바닥에 내팽겨치자 토끼는 이윽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토끼의 머리부분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토끼가 죽은 것에 안심했다. 토끼를 바닥에 내리쳐 죽인 것은 어쩌면


내 평생 해온 일중에 가장 잔혹한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두번째일지도 모르지 글쎄 그건 나는 잘 모르겠다.


죽은 토끼를 내려놓고 나이프를 꺼내들고선 움직이지 않도록 토끼의 배를 위로한채 가슴쪽을 눌러 고정시켰다. 토끼가 약간의 경련을 일으켰다.


왼손에 힘이 들어가자 토끼의 엉덩이가 살짝 올라왔다. 어쩔 수 없다. 이미 저지른일이니 결과물을 봐야겠다. 긴장때문인지 나이프를 든 손이


떨렸다. 이윽고 봉합선을 따라서 토끼의 배를 갈랐다. 잘 갈라지지 않았다. 칼이 살을 찢는 동안 토끼는 이따금씩 경련할뿐 그다지 반응하지


않았다. 생각만큼 피가 솟구쳐나오지는 않았다. 분홍색 살들이 갈라지는 틈새에서 이따금씩 터져나오는 피들이 조금씩 수술부위를 채워갔다.


이 안에 손을 넣어야한다고 생각하니 다시한번 눈앞이 막막해졌다.


추위로 인해 손의 감각이 옅어지고 피냄새도 희미했다. 계곡의 주인이 나에게 이런 지령을 보낸 시점에 대해서 약간의 희망을 느꼈다.


그가 아무 이유 없이 미친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정신없이 토끼의 내장을 뒤집고 나니 내가 찾고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토끼는 이미 완전히 죽은듯 했고 더이상 품속에 있을때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더 이상 토끼의 뱃속을 들여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나는 토끼의 내장을 모두 뜯어내 버린후 뱃속에 눈을 채워 옷가지를 찢어만든


헝겊줄로 네다리를 묶었다. 그리고 얇은 자켓의 양 팔을 묶어 막은 후 양쪽에 하나씩 한쪽에는 산토끼를 한쪽에는 죽은 토끼고기를 넣은 후


허리춤에 맸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아서 나는 슬슬 누울 곳을 찾아 걸음을 재촉했다.


저 멀리에서 토끼가 다시 보인다.


하지만 오늘은 지쳤다. 쉴곳을 찾자.


한참을 걷다가 운이 좋게도 버려진 텐트를 찾을 수 있었다. 우연히 누군가 가져다 놓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망가진 모습으로 그리고


오랜 풍파를 겪은것이 분명해 보이는 모습의 텐트가 완전히 무너져 바닥과 동화되어 쌓인 눈 사이사이로 보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 텐트인지를 눈을 치우고 무거운 몸체를 들어올려보고 나서야 알았다.


완전히 재구성 하는것은 어려워보였으나 옆에 나무에 기대어 폴대 하나를 세우니 대충 바람을 막을 수는 있었다.


이제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건 전야에 아무런 의문도 깨닳음도 없이 오늘 밤은 그저 달만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