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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에 의하면 문학의 실천적인 기능(앙가주망)은 그 운을 달리했다. 

(문학의 '종언'이라는 그의 테제에는 동의할 수 없다)


따라서 문학은 뒷골목의 고양이처럼 세계를 배회하며 가장 낮은 곳에 임재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 내부에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 


블랑쇼의 문학의 죽음(부활을 의미하는)이라거나,


하이데거의 새로운 근본감정의 정초라거나, 신형철의 문학의 윤리라거나. 


핵심적인 기능이 없는 문학은 파편화되어 세계 곳곳에 스며들어간다. 


그것은 다른 형식과 양태를 시대에 요청하며 전혀 엉뚱한 곳에서 전모를 드러낼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문학의 두번째 격발을 기다리는 것.


총성이 울리면 고양이는 기지개를 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