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회관 안, 구석진 자리에서 나무 울타리 하나를 두고 한 마리와 한 명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방인은 나무 울타리에 얼굴을 박고 있다고 할 정도로 괴고양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쪼그려 앉은 탓에 긴 후드 자락이 무릎까지 올라가 잔털 하나 없는 가느다랗고 뽀얀 종아리가 보였다. 이때까지의 목소리나 저 다리 상태를 볼 때 여자임이 분명했다.

"야옹...?"

코코는 이 상황이 심히 당황스럽고도 부담스러웠다.

앞의 이 벌거숭이는 아무 말도 없이 여기 가둬진 순간부터 쭉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선 반짝반짝 빛을 내뿜는 것이 꼭 동물원에서 하마나 사자를 보러 온 것 같았다.

코코는 민망한 듯 눈을 몇 번 돌리더니 이내 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더는 대하기 싫었는지 머리를 돌려 엎드려서는 자는 체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착 가라앉는 것이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듯 했다


이와 반대로, 쪼그려 앉은 이방인은 점점 더 흥분키 시작했다

'흐흐...'

이런 짐승에 대한 얘기는 할아버지한테서 들어본 적이 없다. 책에서도 본적이 없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고양이라니'

거기다 저 앙증맞게 자는 모습은..., 지켜보던 그녀의 입이 자동으로 헤 벌려졌다

'귀여워'

먼 훗날이겠지만 나중에라도 꼭 이 얘기를 식구들에게 자랑하겠다고 다짐하는 그녀였다.


"이봐, 그쪽은 누군데? 누군데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요?"

참다못한 윌리엄이 탁자를 밀고 일어서며 물었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막더니 이 괴고양이와 춤을 추지를 않나. 이제는 자기 마음대로 껴들어 와서 원래 이곳의 주인인 자기들에겐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고양이한테만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아...?'

그녀는 쪼그린 자세로 고개를 들고서 멍하니 마을 회관을 천장을 바라보았다.
축제 때마다 안에서 요리라도 한 것인지 그을음이 묻어있는 오래된 나무 기둥과 청소를 안 한 탓에 듬성듬성 엮여 있는 거미줄 몇 개.

그녀는 갑자기 피곤이 밀려옴을 느꼈다.

'맞다. 여관을 찾고 있었지...'

그녀는 그대로 고개만 꺾어 윌리엄을 쳐다봤다. 행동에 비해서 앳된 소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혹시 여기에 여관주인 계신가요?"

윌리엄 바로 맞은 편에 동석하여 포도주를 홀짝이던 콧수염의 중년 남자가 이에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양손을 다소곳이 모으는 것도 잊지 않으며

"아하, 손님이셨구먼. 제가 요 앞에 있는 여관의 주인입니다"

이 얼마만의 손님인가. 숙박 사업으론 입에 거미줄 걷어 내기도 바쁜 변방 깊숙한 마을이라 더욱 반가운 손님이었다.

"하루에 동화 20닢인데, 얼마나 묵으실..."

콧수염 중년의 말이 끝나기 전에 열리는 문
적갈색 머리에 붉은 스카프를 쓴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들어왔다.

스칼렛 할머니는 급히 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애를 데려왔다고 하던데, 어디에 있나?"


"저기 있습니다"

콧수염 중년 남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한번 다시더니 구석의 나무 우리를 가리켰다.

"잠시만 봐도 되겠나?"

다시 테이블에 앉은 윌리엄이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가까이만 가지 마십쇼"

고개를 꺾은채 지켜보던 이방인은 이 노인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일어나 비켜섰다. 살짝 스친 스칼렛의 머릿결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산에서 피는 꽃과 같은.

"고맙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허리를 굽힌 스칼렛 할머니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살피더니, 그래도 눈에 잘 안 들어 오는지 품에서 안경을 꺼내 들었다.

"흐음..."

잠시 괴고양이를 살피던 그녀는 다시 안경을 벗어 원래 있던 자리로 집어넣었다.

'아니구나...'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쉰 그녀는 윌리엄에게 고개를 돌려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아이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저녁에 회의를 열어 결정할 겁니다"

다시 고양이에게 시선을 돌린 스칼렛 할머니의 눈에 잠깐 연민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 그때 나도 불러주게나"

"네? 아. 알겠습니다. 나중에 한 명 보내서 불러 드리겠습니다"

스칼렛 할머니는 평소에 마을 회의는 거의 참석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저번 회의에 이어 이번에도 참석하시겠다니...

"그럼 난 이만 가네. 손주들 낮잠 잘 시간이 다 되서 말이야"

작별인사를 마친 스칼렛 할머니는 마을 회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간 것을 확인하자 콧수염 남자는 아까보다 더 입꼬리에 힘을 주어 웃으며 자신의 본분을 계속해 나갔다

"그럼 아까 얘기를 다시 해볼까요? 여기서 얼마나 묵으실...'

그리고 다시 열리는 문.
한 남자아이가 문을 차 열고 들어 왔다. 역시나 이번에도 헉헉 대는 게 많이 힘들어 보였다

"큰일 났어요!"

콧수염 남자는 웃는 채로 그 소년에게로 몸을 돌렸다. 이마에 살짝 튀어나온 혈관 몇 개를 내세우며.

"왜 그러니?"

'아무일도 아니면 니놈의 머리가 큰일 날것이다'라는 표정의 콧수염남자를 본 소년은 조금 움찔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고양이 놈들이 떼로 몰려 왔어요!"

이번 한번만 봐주기로 한 콧수염 남이었다.


마을회관에서 조금 떨어진 비탈길, 스칼렛 할머니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무표정한 표정으로 땅만 보고 걷고 있었다.
그녀는 파란 지붕의 아담한 집 앞에 가서야 고개를 들었다.

'하기는, 그게 몇십 년도 전에 일인데 말이지...'

조금은 뭉툭하게 다듬어진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던 스칼렛 할머니의 표정이 이내 환해졌다.
그녀와 같은 적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4~5살배기 꼬마 아이들이 소꿉놀이하고 있었다. 짧은 머리의 남자아이는 코 아래에 숯으로 시커먼 수염을 만든 채 헛기침을 헤댔고, 뒤로 머리를 묶은 여자아이는 한 손에 돌조각을 든 채 풀뿌리 따위를 썰고 있었다.

"할머니!"

쪼르르 달려간 여자아이는 스칼렛 할머니의 다리 한쪽에 매달렸다.

"저번에 얘기해주신 그 고양이던가요? 어땠어요?"

뒷짐 진 채 헛기침하던 남자아이는 할머니를 그제야 보고는 급히 뒤돌아서서 코 아래를 비비기 시작했다.

"얼른 씻고서 들어오너라. 이제 낮잠 잘 시간이잖니. 얘기는 너희가 침대에 누우면 해주마."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하던 스칼렛할머니는 닐과 릴리가 잠든 것을 확인하곤 옆에 있던 작은 창을 열었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시원했다.
한동안 창밖을 조용히 바라보던 그녀의 입에서 작고 낮은 노랫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바다가 너무 넓어 견딜 수가 없어요

날 수 있는 날개도 없는 걸요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배가 있다면

내 사랑과 함께 노 저어갈 거에요


바다가 너무 넓어요

바다가 너무 넓어 건널 수가 없어요

날 수 있는 날개도 없는 걸요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배가 있다면

...


조금씩 작아지던 목소리는 이내 귀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스칼렛 할머니의 나른한 오후는 그렇게 지나갔다.



.영국민요를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