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처녀작 '첫사랑, 1979'의 반응이 처참한 관계로 장르를 전향했습니다.



-이탈리안 잡-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나는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고 그때부터 씻지도 않았다

방구석에만 들어박혀 있었던 이유는 사실 돈이 없어서였고 씻지 않은 건 귀찮아서였다

방에 틀어박혀서 영화만 봤다. 본 시리즈를 봤다.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또 로버트 로드리게즈


의자에 반쯤 누운 채로 히죽거리며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봤다. 입고 있는 황금색 깔깔이에서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잠시라도 여유가 생기면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을 하면 그년, 아니, 그 여자가 생각나고 그 여자를 생각하면 슬프고 미웠다

내가 오랜 시간 동안 겪은 감정의 곡선은 다음과 같다.

 

부정 -> 체념 -> 그리움 -> 슬픔 -> 분노 -> 증오 -> 망각 -> 증오 -> 망각(무한루프)

 

 페이스북을 살펴보다 허핑턴 포스트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눈알을 좌우로 굴리는 운동을 하면 트라우마를 잊는데 큰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본래 허핑턴 포스트는 고양이 페티쉬 모임 언론사이트다) 매일 눈알을 열심히 좌우로 굴렸다. 잊기 위해.

 

눈알을 효과적으로 굴리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얼굴 앞에 세우고 좌우로 흔들면 된다당신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따라 갈 것이다

아는 형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줬다가 병신 취급을 당했는데, 어느 날 그 형이 눈알 굴리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걸 우연히 봤다. 이경규 같았다.


 그렇게 매일 눈알을 좌우로 굴리는 동시에 기타를 치면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군대 선임이었던 아는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부모님과 갈등이 있어서 힘들다며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고 나와 버스킹을 하고싶다는 것이다.(무슨 논리일까?) 

여러 분도 아시다시피 난 돈이 없었다. 그래도 차비는 있을 줄 알았다. 버스에 올라타니 티머니에 잔액이 없었다


동생이 날 데리러 동네에 왔다. 전역 후 첫 만남이었다. 반가웠다. kfc에서 징거버거를 뜯으며 고민 상담을 해줬다

내가 버거를 먹는 도중에 전화로 엄마와 계속 싸웠다. 체할 것 같았지만 오랜만에 구경하는 햄버거라 솔직히 맛있었다

Kfc는 음료의 리필이 가능하다. 처음엔 콜라를 먹고 그다음에 스프라이트, 마지막으로 환타를 마셨다

배도 부르고 고민도 해결이 됐으니 남은 일은 버스킹뿐이었다. 우리는 흥분해서 서울로 떠났다.

 

 한 번화가에 자리를 잡고 노래를 구성지게 뽑아냈다. 코엔형제의 영화에 나오는 노래였다. 60년대 포크송인데 그런 노래에 귀 기울여줄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 그래도 그 노래를 하는걸 좋아해서 고집스럽게 끝까지 불렀다. 그 후에 오아시스 노래를 하다가 존메이어 노래를 몇곡 했고 내가 잠시 목을 쉬게 하는 동안 동생이 브루노 마스나 버스커버스커 노래를 불렀다. (둘 다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뮤지션이다) 두 시간정도 노래를 하고 대략 5만원을 벌었다. 이 돈으로 먹고 마시기 위해 우리는 홍대로 갔다.

 

홍대의 새벽, 특히 주말은 볼만하다. 난 이곳을 서울의 하수구라고 불렀다. 놀이터는 전염병이 돌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장소다

동생과 맥주를 한병 씩 마시면서 걸었다. 돈이 없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국산 맥주를 마셨다. 난 오비 골든 라거를 골랐다


자라 매장 맞은편에서 몇 년 전에 만났던 색소포니스트를 만났다. 미국에서 와서 홍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항상 허름한 옷을 입고 뭔가 도인 같은 풍모가 있는 남자였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들고 있는 기타를 보고 자기와 잼을 하지 않겠냐고 했다

난 기쁘게 수락하고 그의 옆에 앉아서 기타를 꺼냈다. 포크송을 칠 줄 아냐고 물어보길래 코엔형제 영화의 주제곡을 2곡정도 하고 그 다음에 밥딜런의 노래를 한 곡 했다. 내가 반주를 하는 동안 그는 멋지게 애드립으로 연주를 했다. 개그맨 박성호가 지나가다 프랭크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우리에게 천국에 가는 중이라고 말하고 코쿤 언덕을 향해 내려갔다.


 잠시 후 프랭크는 자러 들어갔고 난 그 자리에 눌러 앉아서 버스킹을 했다. 오아시스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몇몇 외국인들이 와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췄다. 한 미군이 옆에 합류해서 같이 놀았다. 기타를 치고 싶어 하길래 잠깐 넘겨줬다. 존메이어의 블루스 곡을 한곡 쳤다. 꽤 잘쳤다. 난 흥이나서 같이 노래를 불렀다. 그 미군은 칼로스라는 녀석인데, 멍청했다. 여자를 꼬시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바람만 맞았다며 무지 아쉬워했는데 그 놈의 작업 방식을 보니 이유를 알 만 했다. 여자가 지나가기만 하면 무조건 예쁘다고 칭찬하면서 허접한 추파를 던졌다. 갈수록 의기소침해지는 녀석을 보니 안타까웠다. 칼로스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며 훈수를 뒀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뇌의 활동에 지장이 생겼고 내 선곡 레파토리는 단조로워졌다. 생각이 나는 노래만 계속 부르면서 후리고 있었다. 프랑스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동생을 사이에 두고 내 옆에 앉아 있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인사를 나눴다.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했다. 특유의 백인치고 까무잡잡한 피부와 어두운 갈색의 눈동자

머리카락은 거의 흑발에 가까웠다. 흰색 핫팬츠 위에는 어두운 색깔의 탱크탑을 입고 있었다.


 이름은 제시카였다. 제시카 알바의 제시카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맞다고 했다. 나보다 네 살 정도 어렸고 갓 성인이 되어 한국에 어학연수를 왔다고 했다. 아마 일종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었으리라. (케이팝 빠순이가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들기 시작했다. 전에 만났던 러시아 암캐도 케이팝 빠순이였다. 난 최대한 그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눈에 띄게 아름다운 편은 아니지만 꽤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다. 눈빛이 섹시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은 여러 가지 냄새를 겨드랑이에서 풍기며 계속해서 노래하고 떠들었다. 그 와중에 자꾸만 제시카와 미묘하게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도 그 타이밍도 미묘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서로 의식할 수 밖에 없는 미묘함이었다.
하지만 이런 미묘함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물 밑에서 진행되는 법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이다. 제시카와 단둘이 얘기를 하기도 했다

이탈리안 특유의 영어발음이었다. 어릴 적에 좋아했던 맥스페인이라는 게임에 나오는 이탈리안 마피아들의 발음이었다

그녀는 내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도발적인 눈빛이 마음에 든다고 말할 뻔 했다. 맘마미아!

 옆을 돌아보니 동생이 스위스 여자와 얘기하고 있었다. 난 다시 몸을 돌려 제시카와 눈을 마주치며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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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를 확인하니 거의 정오가 돼 있었다. 퇴실 시간에 못맞출까봐 걱정됐다. 마음같아선 대실로 연장을 하고 마음 편하게 오후까지 자고 싶었다

내 옆에 제시카가 알몸으로 꼭 붙어 있었다. 엉덩이와 가슴이 풍만했다. 어젯밤에 나에게 C75라고 수줍게 고백했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라자냐가 먹고싶었다. 어젯밤의 일들이 떠올랐다.

 

제시카는 어젯밤에 라자냐에 들어가는 크림 소스에 관해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까르보나라 얘기로 들어가자 열변을 토하며 크림 파스타와는 다른, 계란 노른자와 파르미지아노 치즈만이 들어가는 진정한 까르보나라에 대한 열정을 표현했다. 이탈리안들은 스스로를 핫 블러드라고 부른다.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사실 대체로 너무 시끄럽고 짜증난다) 이탈리안들은 축제와 파티를 위해서 살아간다. 내가 존경하는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있거라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탈리아인에게는 불과 연기 밖에 없어. 그리고 그들의 안에는 아무것도 없지


 어젯밤에는 실로 대단했다. 나와 제시카는 자연스럽게 둘만의 대화를 했고 그녀의 눈빛은 도발을 넘어 불타오르기까지 했다

아마 그녀는 내 눈으로부터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작기 때문이다

내 작은 두 눈은 언제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어쨌든 우리는 말 그대로 눈이 맞아버렸고 자연스럽게 모텔에 입성했다

그녀는 조금 취한 듯 어설픈 연기를 펼쳤다. 이탈리안은 원래 헐리우드 액션을 잘하냐고 농담을 던졌다

2002년 월드컵 이태리전이 떠올랐다. (프란체스코 또띠는 사실 괜찮은 선수다) 제시카는 나를 때리며 민망해 했다

귀여웠다. 원래 여자들은 술 핑계를 대기 마련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모텔의 장사 방식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놈팽이들은 일반실이 있어도 특실부터 판매하려고 온갖 수작을 부린다

무조건 작은방은 없다는 거짓말을 눈 하나 깜빡하지않고 퍼붓는다. 더욱 괘씸한건, 특실 요금을 계산하고 방에 들어가 보면 영락없는 일반실이다

알고리즘은 다음과 같다.


                                         일반실이 있다.

 방이 있는지 물어본다   ->                           ->일반실 입실

                                         특실밖에 없다.


 역시나 모텔 측에서는 특실 밖에 없다는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제시카가 쿨하게 계산을 했다

세면도구와 키를 받고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아주 좁고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였다

믿을 수 있는 티센크루프 사의 엘리베이터였지만 혹시 이곳에서 사고를 당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모텔의 엘리베이터에 갇히면 구조대원들이 구하러 올 테고 어쩌면 기자와 인터뷰를 할 수도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저녁 9시에 안방에서 과일을 먹으며 모텔 사고 생존자로 매스컴을 타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입실 하자마자 우리는 서로에게 정신없이 키스를 퍼부었다. 누가 더 과감한지 경쟁하는 대회를 참가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만약 그런 대회에 참가한 것이라면, 나는 챔피언 벨트를 가져오고 싶다

챔피언에 대한 열망은 나를 준비된 남자로 만들어줬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느 누구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존재이다

그런 사회적 인식을 고려해 태곳적부터 유전자에 각인된 진정한 본능을 깊숙이 감추고 조금이라도 보일세라 주머니 속으로 쑤셔넣고 또 쑤셔넣는다. 하지만 가슴속에 뜨거운 불덩이가 타오르는 두 남녀가, 사회로부터 단절된, 밀폐된 한 공간에 들어온다면? 게다가 서로에게 강한 호감을 느낀다면? 술까지 마신 상태라면? 여러분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 방은 특실이었다. 푹신한 침대와 월풀욕조, 그리고 버블바스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며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다.


파스타와 김치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이 펼쳐졌다. 난 그날을 이렇게 명명하겠다. 피에스타

사실 군대에 있을 때 김치 스파게티라는 메뉴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음식이었다

어쨌든 그녀의 몸매는 매력적이었고 그녀의 과감함은 가히 도발적이었다

그녀의 몸매를 보며 나는 bravo를 외쳤고, 그녀의 과감함을 보며 mamma mia를 내뱉었다

제시카는 이런 상황을 아주 재미있어 했다. 분위기가 달아올라 우리는 과감해졌고 그녀도 아마 챔피언 벨트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볼쇼이 서커스를 연상케 하는 자세를 시도하다 팔이 꺾일 뻔 했다. 더 이상의 도전은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챔피언 벨트를 포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뿐. 아침이 되려면 멀었다. 나는 땀에 흠뻑 젖어 침대에 엎드려 있었고 그 옆에서 제시카가 내 등을 어루만졌다. 야한 농담을 던지자 그녀가 낄낄댔다. 앙칼진 년. 카마수트라를 사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평생 공부하고 성장하는 존재라고 했다. 진정한 자기계발을 하고 싶었다.


  몇 차례의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 나와 제시카는 목이 다 쉬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지경이 되었고 우리는 슬슬 피곤해졌다. 피곤한것도 피곤한거지만 너무 배고팠다. 책자를 뒤적거리며 뭘 시켜먹을까 고민을 했다. 치킨을 시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야식은 죄다 쓰레기 음식이다. 게다가 이탈리안에게 그런 음식을 먹이고 싶지는 않았다. 맥모닝을 시켜먹을까 고민하다 그냥 제시카와 달콤한 키스를 나누고 잠에 들었다.

 

  머리가 아프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나만의 라티노 히트, 제시카도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잠시 그녀의 백인 특유의 부드러운 머리를 쓸어줬다. 프론트에서 전화가 왔다.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 축제를 한번 더 벌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녀가 허겁지겁 샤워하는동안 난 옷을 입고 머리를 대충 만졌다. 잠시 제시카와 같이 샤워를 할까 고민하다 티비를 틀었다. SNL이 재방송 되고 있었다. 제시카는 곧 샤워를 끝내고 나왔고 우리는 서둘러 방을 떠났다. 엘리베이터에 고맙게도 키 반납함이 있었다.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우리는 유유히 모텔을 떠났다. 바깥 세상은 너무 밝았다. 우린 사이좋게 선글라스를 나눠쓰고 뜨거운 키스를 나눴다. 나는 제시카와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볼키스를 주고받았다.


 집에 가서 늦 오후까지 푹 자고 싶었다. 지하철이 나를 싣고 덜컹덜컹 움직였다. 난 꾸벅 꾸벅 졸며 힘들게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집에 돌아가야 했다. 집에 가자마자 죽은듯이 대여섯시간을 잤다. 온몸이 쑤셨다. 자고 일어나니 제시카로부터 카톡이 와있었다. 까르보나라를 만들어 줄 테니 조만간 놀러오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큐트보이라며 애칭을 불러댔다. 기분 좋은 메세지였다. 나는 씩 웃고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게시판 아래에 있는 제 처녀작 '첫사랑, 1979'를 사랑해주세요. 그건 진지한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