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컹키
스컹키는 1920년대식 스페이스 오페라를 표방하면서도 1990년대식 압축 재현 방법을 얼렁뚱땅 도입함으로서 세대간의 격차를 줄이는 데 신기원을 이룩할 것임을 장엄히 선언하는 바 독자대중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말 것이며 만약 이의를 할 시에는 단연코 불이익을 어쩌고 저쩌고.... 흠 썰렁하게 쓰고 싶당.
작가가 누구야!
싸움질로 유서 깊은 스컹키 종족의 스컹키는 뽀족한 붉은 코를 킁킁거리며 화딱지를 낸다. 권력자도 아니면서 자주빛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걸로 보아 콤플렉스가 지대할 지도 모른다. 아닐 지도 모른다. 어쨋든 스컹키는 스컹키 종족 가운데서도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냄새를 많이 내는 미녀다. 호리호리하게 잘 빠진 몸매 위엔 옷 따위는 입지도 않았다. 굽실거리는 멋진 털이 온 몸을 덮고 있으니 거추장스러운 짓을 할 까닭이 없다.
내가 화 낸 까닭은 안 쓰고 뭘 하는 거냐!
스컹키는 키 171cm에 55kg으로 꼬리가 있는 관계로 다소 몸무게가 분 듯한 느낌이다. 꼬리가 있는 종족답잖게 걷는 데엔 꼬리를 안 쓰는 덕분으로 대단한 각선미를 자랑하고 있다. 헤어 스타일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초창기 스타일을 하고 있어 평소의 촌스러움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으아아아!
스컹키가 함부로 휘두르는 손발에 맞아 진공관들이 박살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난다. 유리 알갱이들이 바닥에 번지겠징? 스컹키가 덜 떨어진 소프라노 음색으로 외친다.
뭔 놈의 세계가 이 모냥 요 꼴이냐?! 우주 여행족이 잔뜩 있는데 인터넷이 없다니 이게 말이 돼?!
앞서 말했듯이 1920년대식 싸구려 스페이스 오페라를 본받아 이 땅에 SF 백년대계를 세우는데 방해가 되도록....
스컹키의 딴딴한 발바닥이 유리 조각을 밟는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어떤 식으로든 괴롭혀야한다. 갈등 없이는 서사도 없는 법. 껑충껑충 뛰다가 벽에 머리를 박고는 나뒹군다.
꺄아! 으앙~~ 아악! 왜 이렇게 좁아. 제길. 아무래도 작가와의 타협이 필요하겠군
허리를 집고 일어서서 창고를 향해 숨을 몰아쉬며 달려간다.
스컹키 아니니?
뭐야, 옌? 이건 안 되는 것이다. 제목이 스컹키이므로 스컹키 종족의 장엄한 흥망성쇠를 다루어야만 사리가 맞는다. 같은 스컹키가 스컹키 아니니?라고 했다고 할까나. 스컹키가 두 팔을 쫙 벌리고 눈을 크게 뜨며 정겨운 목소리로 외친다.
오예, 너 누구니?
그런 질문을 받은 아가씨는 깜짝 놀라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선다. 으아아아아 지낸 지 벌써 넉 달인데 아직도 몰라. 레딘은 엄청나게 커다란 귀 둘을 쫑긋 세우면서 스컹키에게 달려들어 넘어뜨린다.
레딘 : -말하기에 앞서 레딘은 하얗 검정 노랑 빨강이 어우러진 멋진 털로 덮였고 약간 긴 앞니를 가진 귀여운 얼굴과 아주 길고 늘씬한 다리를 갖추고 있다. 183cm에 55kg. 샅 부분이 트여 배설하기 쉽도록 만든 스타킹만을 걸치고 있다. 온몸에 긴 털이 다 있으므로 스타킹을 왜 신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땀띠 나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보다.
레딘 : 이 씨. 스컹키, 이제 알겠냐?
스컹키 : 이러는 걸 보니 친한 앤가 봐. 누구니?
레딘 : 레딘! 따라해 봐. 레딘!
스컹키 : 레딘. 참견하기 좋아하는 레비 종족 애구나.
성까지 갈켜줄라 그랬는데 안 되것다. 그랬다간 다 까먹을테니까 레빈 스트레반이 말했다.
스컹키가 날카로움이 번뜩이는 눈빛을 한 채 말한다.
너 누군데 내 위에 올라가 있는 거야!
꺄아아아!
레딘이 깡총 뛰어 멀찍이 달아난다. 스컹키가 물구나무를 선다. 항문샘에서 신경전달체제를 교란시키는 액체를 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냄새가 너무 심하다.
스컹키 : 조준. 예스, 맵. 발사 준비! 예스, 맵!
레딘 : 스컹키, 스컹키, 너 뭐하러 창고에 왔니?
아, 그렇지
스컹키는 그런 일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으악!
진공관 하나 크기가 스컹키 만큼이나 크다. 여러 개 차곡차곡 쌓아놓고 옮기려니 한숨이 다 나온다.
이게 뭐야. 진공관이 이렇게 크다는 말은 안 했잖아. 큰 게 뭐가 좋다는 거야?! 시간이나 까먹지 뭐가 좋아
레딘 : 내가 안 그랬어.
야!
스컹키가 꼬리를 들고 엉덩이를 레딘 쪽으로 향한다. 레딘이 기겁을 하더니 엎어지락자빠지락하며 달아나버린다. 흐흐흐 성가신 적을 무찌르는 순간이군. 쫒아가봤자 이득은 없으니 진공관이나 날라야지. 허리를 앞으로 구부려 등에다가 3개 쯤 지고 간다.
아이구 무거워. 내 나이 이제 자그마치 열다섯. 슬슬 노땅으로 불릴 나이인데 이런 짓거리나 해야 되나?!
눈치를 챘겠지만, 스컹키 종족의 조상으로 떠받들리는 스컹크는 15살이면 살 가망이 별로 없다. 물론 스컹키 종족으로 15살이면 새내기다.
붙이고나니 이제 꽤 시간이 된 것 같다.
아날로그 시계 밖에 없다니까
투덜거리며 스컹키가 손목 시계를 본다. 27:00:04. 지금은 기원 전 1만 3천 504년 2월 50일. 기원 전인 걸 안 다는 게 말이 되나? 어쨋든 좋아. 타임 머쉰이 날뛴다면 되겠지. 고게 아냐! 스컹키가 따따거린다. 우주가 수축하기 시작한 때부터 우주 연합은 갑자기 기원 전으로 날짜를 따지고 있는 중이다. 연도는 우주 연합에 속한 행성들의 평균 공전 주기, 날짜는 평균 자전 주기로 따진다. 맘대로 하라 그래. 정치판에서 하는 일인데 뭐.
제발 문명의 이기를 줘. 나 핸드폰 갖고 싶어
스컹키가 슬프게 우짖는다. 존재의 상실과 박탈을 느끼자 고운 눈에 눈물을 하나 가득 고여 뺨을 타고 아롱져 떨어진다. 순간 스컹키 위에서 누가 말한다.
핸드폰 있어
진짜! 너 누구니?
천장에 붙어 있던 이키가 당혹스러워한다. 면양의 둘둘 말린 뿔, 박쥐 귀, 박쥐 날개를 갖춘 <-물론 사람 몸 크기에 맞는 비례로 커진 -> 이키는 천정에 붙어 있을 수 있는 재주를 지녔으며 피랑 벌레랑 열매를 좋아한다. 대체로 시꺼멓게 보이며 177cm에 56kg이다.
이키 : 그딴 걸 몰라도 돼. 그런데 왜 스컹키가 계속 친구를 못 알아보는 것인가. 우리 직업이 탐정이란 것도 생각 안 나니, 스컹키!
스컹키 : 물론. 탐정이자 해적이자 의적이자 현상금 사냥꾼으로서 우주를 누빈 지 어언 넉 달. 세 친구와 더불어 모험을 즐겼었지. 그런데 니가 그 친구라는 보장이 없어!
스컹키가 넘어지듯이 하며 한쪽 팔을 땅에 집고 펄쩍 뛰어올라 항문샘에서 초록색 액체를 쏜다. 이키가 그 끈적끈적한 액체에 아름답고 전위적인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 허우적 날아간다.
이키 : 으아아아!
너무나 극심한 악취와 그에 못잖은 통증에 신음한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이 있다. 스컹키는 자세를 바로잡고는 생각한다. 틀림없어. 나는 그동안 진공관을 갈아끼우고 있었어. 그런데 등으로 나르려니까 너무 너무 힘들어. 손수레를 가지고 와야지.
이키는 중앙 통제실까지 반쯤 기다시피와서 기절했다. 레딘은 질린다는 얼굴을 지으며 이키를 소독하고는 냉동 장치에 일단 쳐박아놓았다. 그 안에 있으면 회복이 될 것이다.
레딘이 핸드폰을 든다.
에잇! 스컹키 악취 제거반에 연락할랬더니 번호랑 번호 사이 거리가 너무 멀어
그도 그럴 것이 핸드폰 크기가 70m나 되었던 것이다. 본디 70mm짜리였는데 공장 관계자가 mm를 m로 잘못 보는 바람에 70m가 되었다. 레딘은 핸드폰을 충전기에 도로 꽂고는 중앙 통제실 한 켠을 째려본다.
스컹키도 골치지만 케이티도 만만찮은 골치덩어리다. 케이티는 한마디로 고양이를 닮았고 황금빛 단발머리를 지녔다. 미녀 클럽 회원이다. 오랫동안 애완 종족이 된 덕분에 머리, 겨드랑이, 꼬리, 사타구니, 젖꼭지에만 긴 털이 수북하고 다른 곳은 매끄러운 살결이 이어진다. 그런데도 도무지 사회 관계를 인식하지 못한다. 야생 상태의 조상이 사회 관계를 거의 따지지 않는 족속들이라 가족 몇몇 밖에 기억을 못하고 순종하지도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케이티는 이키랑 레딘이 가까스로 붙잡아서 냉동장치에 쳐박아뒀다. 이제는 진공관을 주무르며 스컹키랑 케이티가 좀더 사회성 있는 훌륭한 지성이 되도록 이끌어야 할 때인데.... 그런데 박쥐랑 토끼는 그런 족속들이었남?
우주선 컴퓨터인 비비아가 말한다.
레딘, 레딘, 큰일이야. 지금 스컹키가 중앙 통제실로 오고 있어
왜?!
손수레 가지러. 막지 않는 게 좋겠어. 왜냐하면 날 고치려고 애쓰는 중이거든. 얼마나 기특해
비비아는 엄청나게 크다. 진공관 100조 개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덩치가 큰 건 당연하다. 컴퓨터 회사들이 트렌지스터를 개발할 생각을 도통 않으니 이럴 밖에.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너무 불편해. 진공관 크기를 좀 줄여주길 바래
이키가 냉동장치 안에서 꽁꽁 얼어가며 남긴 유창한 한 마디. 이에 감격한 작가는 진공관 크기를 0.0001mm로 줄이기로 했다. 물론 인간 평균 신장도 그만큼 줄인다. 아야야! 자 이제 진공관 크키가 줄었으므로 스컹키는 손수레가 필요없게 되었다. 몇 백 개 갈아끼우는 것도 소형 현미경 하나만 있으면 되었던 것이다. 스컹키는 손놀림이 괜찮기 때문에.
어렴풋이 느껴진다. 뭔가 친구들이 있을 것도 같다. 가족의 동료애적 확대로서 말이다.
[1999.10.09.]
-------
난 지금 생각해도 편차가 심한 듯...
지금도 심한 듯...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