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해병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 오늘도 제정신으로 기상인가."

황근출 병장은 자신을 깨우러 찾아온 박철곤 병장과 최흥태 상병을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오늘도 정신이 멀쩡하다.
이 빌어먹을 공간에 갇힌 지도 몇년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는 요즘들어 자주 자신들이 이성을 되찾는 원인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랐다.

그저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고, 부대 내에서 자신이 할 일도 별로 없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은
전통처럼 내려져 온 '악기바리'를 키운 것이 전부였다. 구타 몇번은 덤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해병들도 빈번히 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도 사람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뭐 어떤랴.
자신의 선임도 그랬고, 자기에게 발길질을 당하는 후임도 똑같이 할 것이 뻔한데.
라이라이 차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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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하며 전역했을 터인데.
전역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어느날, 황 해병은 평소와 다름없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갓 입대한 신병인 '아쎄이'에게 식고문을 '가볍게' 행했다.
과식중 구타당함에도 불만없이 자신이 토한 토사물까지 집어먹고 버티는 것을 보고는 만족하며 자신의 철학을 설교한 뒤, 낮잠을 들었다.

그러나 기상한 후 주변을 둘러본 일상은 그가 알던 것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일단 처음 확인한 것은 그가 일어난 때가 분명 잠든 날로부터 수십 일도 더 지난 시간에, 33일 이라는 말도 안되는 일 수의 달력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내무반은 형용할 수 없는 구린내(흐린 기억 속의 황룡 병장이 '개씹썅똥꾸릉내'라고 하던 것이 기억난다")
복도는 붉고 거뭇한 얼룩으로 오염되어 있었으며, 어째서인지 불구가 된 것으로 보이는 해병 몇몇이 쥐죽은듯 둔부를 복도로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1q2w3e4r와 같은 비현실적의 이름의, 기괴하게 얼굴이 뒤틀린 것만 같은 괴물들이 자신들과 함께 있던 것,
그들이 자신들과 함께 '전우애'라 칭하며 역겨운 성행위를 반복하고 여기저기에 흔적을 뿌려둔 것도 기억났다.

이러한 기억과 달라진 생활관의 모습에 당황한 해병들이 달려들어 힘들게 자신들의 구역을 청소했음에도, 잠들고 제정신으로 일어나면 이러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달력이 69일쯤 되었을 무렵에는, 이성을 찾은 해병들은 흔히 사지방이라 부르던 공간에 있는, 유일하게 작동하는 모니터 하나를 통해서 바깥의 소식을 알 수 있었을 뿐임을 알게 되었다.
그 모니터로 볼 수 있는, 항상 올라오는 소식은 자신이 알고 있던 예전의, 해병대에 관한 소식들 뿐이었다.
누가 누를 구타하여 처벌을 받았다. 참다 못해 목숨을 끊었다던가. 평소에도 군대라면 하나씩 있는 안타까운 일 아닌가?

그들은 이것을 보면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자신들이 이런 말도 안되는 악몽을 반복해야 하는가?
그리고 누가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덥잖은 기사들만 보여주려 하는가?

당연히 알지 못했다.

달력의 일수가 6974일쯤 되었을 때 또 알게된 것은,
어째서인지 싸지방 컴퓨터에서 해병대의 가혹행위들이 적발되는 일 따위에 대한 기사들이 보인 날에만 그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들을 보고 제정신이 아닐때 했던 각종 계간이나, 시도때도 없이 행하던 식분행위 등을 떠올리고 구토하는 것은 그들이 제정신을 차리고 나서 으레 치르게 되는 일상같은 일이었다.

그랬을 터인데.

요즘은 뭔가 이상하다. 며칠째 자신의 정신이 멀쩡하다.
그렇게 며칠 새 달력마저 그런 자신의 의심을 비웃듯이 전역 바로 전날로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내무반은 사람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 아닌 아득히 예전에 자신이 알고있는 일자형의 생활관의 모습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박 해병?"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싸지방에 가셔서 보셔야 할 것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해병들이 선 넘게 갈구다 마편 찔려 영창갔겠지. 한두번인가?"

"이번엔 그런게 아닙니다."

그때, 복도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아쎄이, 원위치!"
"아쎼이, 전우애 실시!"

황룡 병장이 신병들을 갈구는 소리가 났다.

"저 인간도 딱하군. 우리가 제정신일때 혼자 맛이 가있다니."

어째서인지 황룡 병장은, 다른 사람들이 벽에 똥칠을 하고, 전우애를 빙자한 기차놀이를 할때 피해다니며
혼자 멀쩡하게 돌아다니던 것을 황 병장은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그런 황룡 병장을 뭉개고 '수육'으로 만들었다는 사실까지.

불쾌한 기억이 떠올라 이를 무시하고 황근출 병장과 박철곤 병장, 그리고 최흥태 상병은 같이 싸지방으로 내려갔다.
황룡은 아쎄이를 수육으로 만들었다.

'뽀르삐립'

'븃'

야릇한 소리와 함께 낡은 CRT 모니터의 보호 화면이 꺼지고 화면이 드러난다.
누가봐도 소리가 이상하지만 자신들의 상황보다 더 하겠냐는 자조섞인 한탄과 함께 그려려니 하고 오늘의 해병 소식을 살펴본다.

"오늘은 어떤 소식들이 전해졌기에 나를 찾는 것인가?"

여러 기사들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평소보다 훨씬 그 수가 많은 것 같다.
작성 날짜는 몇년 전부터 자신이 전역했어야 할 시간보다 십수년은 더 된것까지 다양하다.

"상습 구타에 분신 자살 시도... 뒤늦게 가해자 징계"

"선임이 부르면 달려가, 오줌싸고 꼭지 꼬집어... 강제추행만 134회. 처벌은 커녕 질책만"

"병무 부조리로 탈영한 해병.. 무단 출국까지"

"해병대 관계자는 이 사실들을 모두 부정하고 영내에는 가벼운 '언어폭력'이 있었다며..."

평소보다 그 내용도 많았지만 훨씬 자세한 내막이 알려져 있었다.
왜 이제 와서 그런 내용을 보여주는 지는 알지 못했지만,
가혹행위를 하면서도 예전에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2,30년 전에는 더했다며 농담조로 주고받고는 했는데.

기사 속의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수준 동급, 아니 그 이상의 행위들을 하고 있다는 것에 경악했다.
어떻게 저런 행동들을 생각해냈을까 싶은 수준의 가혹행위도 수없이 있었고,
집요하게 남자를 탐하려고 해병대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싶은 놈도 있었다.

문제가 위로 보고되었을때, 으레 묵살되곤 하던 것은 자신들이 아는 해병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옆의 다른 해병들도 당황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흐르자 당황한 황 해병은 다급히 다른 소식이 없는지 화면속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해병문학이라고?"

그리고 평소와 다르게 어떤 커뮤니티의 글들이 뉴스들 아래 노출되어 있었다. 마치 자신들을 봐 달라는 듯이.
무수히 많은 글 들 중에 몇몇 글들은 기사와 유사하게 부조리를 폭로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글들은 '해병문학'이라는 글머리를 달고 있었다.

'황근출 해병님과의 아련한 추억이여!'

처음에는 이런 제목을 보고 나랑 있다가 전출간 다른 해병이 쓴 글이 아닌가 싶어 황근출 해병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황근출 해병님은 이근팔 해병에게 전우애를 실시했다."

"황근출 해병님은 주변의 아쎄이를 해병 수육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황근출 해병님은 ...에게 전우애 크림을 하사했다."

"황근출 해병님은..."

"황근출 견

내용은 제각기 달랐지만, '황근출'이란 이름의 해병과 주변인물들이 똥을 먹는 이른바 '식분 행위'와 '전우애'라는 이름의 탈을 쓴 동성애를 저지른다는 내용이 대부분 이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내용의 창작물들이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와 있는 것에 그는 기겁했다.

너무 많다. 대체 그동안 바깥 세계에서 황근출이란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 것인가.

"황근출 해병님.. 이게 대체.."

이를 같이 보고있던 박 병장과 쾌 상병의 시선이 싸늘해진다.

"오해다."

"나는 해병대원들과 유사성행위를 한 적이 없다."

"난 식분을 시킨 적이 없다. 식인을 하라 한 적도 없다. 그저 토사물을 좀 먹어라 했을 뿐이다."

"공군을 보고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간 적도 없다."

"그리고 젖꼭지를 일천번 꼬집으라 한 적도 없고, 성기로 인사를 시킨 적도 없고, 죽기 직전까지 구타해 탈영, 출국 하게 만든 적도 없다."

"난 그저 악기바리와 약간의 구타만 했을 뿐이다. 같이 영내 생활을 하면서 보지 않았나"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

묘사되지 않은 내용까지 섞여 줄줄이 늘어놓는, 길어지는 변명에 그들은 아무 대답도 감히 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식고문은 안 했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박 해병과 최 해병 역시 가혹행위를 저질렀고, 떳떳한 것은 아니었으나, 저마다 속으로 자신들은 황 해병보다는 낫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미처 몰랐지만 어째서인지 최근으로 올 수록 가혹행위 폭로와 같은 글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가상인)기행을 쓴 글들은 비율이 줄어든 것 같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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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침묵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뒤에서 다급히 김유정 상병이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황 해병님. 박 해병님. 큰일입니다. 무득찬 상병이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