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사
Zohona~~~
잔인하게 썰림.
임진왜란 조총 신무기류 과대평가
사실은 애당초 일본군은 조총을 주력으로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일본군의 조총병 비중은 높게 잡아도 20%가 채 안 되며 이는 최소 30% 이상으로 여겨지는 일본 궁사보다도 적은 것이다. 참고로 정유재란 시점의 조선군은 무려 3만 정 이상의 조총을 확보해(이순신이 생산한 정철총통, 명으로부터 공급받은 오스만식 화승총, 김충선이 알려 준 제작기술을 통해 확보한 조총, 노획분 등) 일본군과 대등하거나 더 많은 조총을 갖고 있었다.
조총은 재장전속도와 명중률에 한계가 있다.
일각에서는 보급 문제로임진강 전투시점부터 일본군이 창칼과 장궁을 중심으로 하는 왜구식 전투로 회귀하다시피 한 게 아니냐는 주장을 펼치는데, 당장 제4차 평양성 전투에서도 모란봉에 배치한 철포대만 2천명에 달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증원군 도착 이전에 명군 기병대를 패퇴시킨 것은 철포대의 사격이었다.
ㄴ방어전, 매복전투용?
ㄴ서애유성룡의 《징비록》에 따르면 왜병이 오오타치를 들고"사람과 말을 동시에 썰어버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16세기 중반 즈음 중국 남부 해안을 침범하던 왜구들이 오오타치를 사용했다고 하며, 당시 이들을 토벌하던 명의 장군 척계광은 이 오오타치의 위력에 충격을 받아 이에 대항하기 위해 원앙진이라는 특수 진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의 저서인 《기효신서》에는 왜구들이 5척이나 되는 큰 칼을 써서 무참히 도륙했다고 적혀 있다. 또한 중국의 큰 칼인 묘도(苗刀)[1]역시 오오타치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전투에서 일본군은 주로 오오타치를 휘두르며 근접전 위주로 싸운 것으로 보이는데, 징비록과 주로 이를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 선조수정실록, 신흠의 상촌집 등에서는 일본군이 긴 칼을 휘두르며 돌격해왔다고 적었고, 선조실록에서도 무기에 대해 정확히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대체로 일본군이 사격했다는 명시적인 기록은 없는 반면 돌격해왔다는 기록은 보인다. 일본군의 장창은 거의 보병 상대 둔기류에 가까운 물건이라 기병전에서는 써먹을 수 없었고, 조총은 재장전속도와 명중률에 한계가 있으니[1][2] 결국 오오타치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 것이다.
출전:"실록 한국전쟁" 저자 TR 페렌바크 1965년作 P.452 P.454 문학사 발행
"This kind of war" by T.R. Fehrenbach 1963
“문명의 진정한 시험은 통계숫자나, 도시의 크기나, 또는 생산고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 나라가 산출하는 인간의 종류에 나타난다.”--- 랄프 월도 에머슨 “사회와 고독”
실제 승패를 가르는 싸움에서, 인간 그 자체의 질(퀄)이라는 펙터를 너무, 경시해서 한번 퍼왔음.
인천 쪽 녀한의사에 부자지간 양의사 둘 폐업. 그런거지.
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양의사 애들 순진하기도 하거니와 개불쌍해. 내가 실제 오프라인에서는 양방사들에게 무척 친절한 새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