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홍상수의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구조만큼 구도의 역할도 상당히 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홍상수가 다시한번 세잔의 회화처럼. 내러티브를 벗어나 일상속을 미적형태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감각, 아무것도 아닌 순간, 또 다른 각도를 제시한다.
먼저 처음에 영화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물론 두 개의 같은 상황, 같은 인물, 다른 성격으로 놓인 상태이다. 이 영화는 내러티브적이거나 말로서 일상을 먼 곳, 낯선 것, 미적형태로 바라볼수있게 하기 보단 추상성을 구조와 구도의 논리적인 설계로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러한 홍상수의 영화의 단순한 실험은 보는이의 피드백을 마치 어떠한 추상적인 상상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추상성을 물리적인 실험으로 현실의 돌을 여러 각도로 볼 수 있게끔 한다.
편의상 1부와 2부로 나누겠다.
1부와 2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먼저, 나레이션이다. 춘수는 자신이 화자로서 나레이션이 기입된 인물의 주관적인 카메라의 시점을 등에 엎은 형식이다. 그래서 초반부에 여성스탭 고아성에게 ‘너무이뻐, 조심해야해’ 라는 말의 나레이션을 여러번 반복하며 시작하는데 고로 이에 따라서도 카메라의 시점은 상투적인문법에 따라 춘수의 방에서 그가 드러눕고, 그의 시점에 따라 고아성을 포착하는 식으로 실내에서 실외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효과는 관객을 춘수의 시점, 카메라의 움직임을 인물의 내적인 동선에 따라 자연스레 끌려가게끔 한다. 1부의 춘수는 2부의 춘수보다 추상적이고, 내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추상적으로 느낀바를 나레이션으로 읊으며 말과 말이 형성하는 내러티브를 꺼려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곧이어 스케이트썰매를 타러간다. 이 영화의 재밌는 부분은 1부의 추상적인 춘수를 뒤쫓는 카메라는 춘수를 중심으로, 춘수와 다른인물들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오히려 실외에선 인물에 완벽히 집중하는 포커싱은 없다. 대부분의 풍광과 인물의 관계는 딥포커스로 동등하게 촬영되며 오히려 실외에 있는 순간은 2부보다 더 관찰적이다. 이는 춘수의 나레이션의 효과와 대비되게 1부의 시점을 춘수의시점과 관찰자시점 두가지로 구분하게 나눈다. 이러한 영화의 문법은 평이한 것이면서 우리가 춘수의 시점을 따라가지만 곧 그의 우스꽝스러운 행동들, 겉과 속이 달리 보이는 현실속한계를 관찰하고 평가하고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연출되게끔 한다.
딥포커스로 잡은 스케이트썰매장의 수평적인 동선은 스케이트썰매장, 자전거씬, 희정이가 집에 들어가는씬, 발자국을 남기는 마지막장면 등 이 영화 한 프레임안에서 적극적으로 일어나는 몇 안되는 운동중 하나이다. 딥포커스로 촬영된 스케이트설매장의 운동은 무료하고, 심심하고, 인물간의 별다른 내러티브적 감정이입없이 춘수의 의미없는 나레이션과 함께 이루어진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관찰자의 시점을 주면서, 영화내에선 춘수의 시점을 동반해 관객으로부터 춘수의 시점을 따라 영화를 판단하게 하게하면서 정말 무료한 관찰자의 시점으로 돌려놓는것이며 후반부의 실험적인 효과를 일으킬수있게하는 전제로서 덩그러니 놓여지는 수순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순간들은 2부의 운동인 나레이션은 배제되었지만 오히려 아웃포커싱으로처리된 풍광을 배경으로 인물에게집중된 집으로 귀환하는 씬이나, 자전거가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씬등에 관객이 감정이입되는 순간과 대비된다. 이렇게 홍상수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이야기나상황뿐만 아니라 형식마저도 서로 약간의 것을 주고받으면서 지금과그때를 하나의 실험체로서 구성해 나간다.
이어 춘수는 행궁에 간다. 가장 눈에띄는건 구도적인 크기이다. 그는 행궁에 들어가기전 행궁을 옆에 등지고 걷는 숏에선 행궁과 얼추 비슷한 크기로 프레임에 잡히며, 나레이션을 읊음에 따라 동선을 바꾸고 그에 따라 카메라는 움직인다.
고로 윤희정과 마주한 숏까지 들어왔을 때 ‘우유먹는사람, 햇빛쬐는사람’ 으로 소제목을 붙일법한 정물화같은 순간은 주관적인 나레이션의 참여와 그에따라 움직이는 카메라, 또 그에따라 인물간의 관계를 잡는 카메라의 상투적인 구도(좀 더 평면적인 화면에서 인물의 크기를 달리두는) 아래서 흐릿해지며 느끼기 힘든 상투적인 순간이 된다. 고로, 이들의 대화는 아무것도 아닌순간에서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순간 줌인이 되고 그 순간, 이들의 상투적인 친밀도의 형성과 체면치레가 관객의 눈에 뻔하게 잡히게끔 된다. 따뜻하게 차 한잔하자는 춘수의 멘트도 더 능글맞게 보일뿐이다.
카페로 이동할 때 첫 숏은 희정이가 대추차를 마시는 장면으로 잡힌다. 이들의 뻔한 친해짐과 따뜻하게 라는 능글맞고 상투적여보이는 멘트가 희정이가 따뜻해보이는 대추차를 마시는 장면으로 통해 좀 더 뻔하게 진행될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문법은 상투적이고 우리에겐 익숙한 것이다. 1부의 춘수를 더 상투적이게 만드는 것은 그가 추상적임을 지향하지만 오히려 주관적인 나레이션이 등장하고, 구도적으로 일반 극영화의 인물간의 크기를 빌려왔다거나, 그가 말이 형성하는 내러티브를 반대하고 추상성을 선호하지만 결국 그것을 자신의 음성으로 전달하는 모순적인 부분들이다. 그러면서 이들이 주고받는 대사는 절대로 일상적인 대사들이 아닌 추상적인 내용들이 주로 오간다.
뒤이어 그림을 보러갔을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레이션으로 자신이 느낀바를 추가시킨 1부는 오히려 몇가지 단순한 상황에서조차 1부 춘수라는 사람을 솔직함에서 멀어지게끔 한다. 다떨어진 커피에대한 자신의 의견보다 영희의 의견에 맞추려는 치레도 무언가 그를 가볍게한다.
영희가 그림을 그린 순간에도 마찬가지로 구도,나레이션,대사로 이 순간을 상투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는 영희의 옆모습 후면에 춘수를 정면으로 크게잡아 그의 감동먹어 눈물을 흘리것만같은 눈과 얼굴에 집중하는 등 구도로 관계나 감정을 암시하는 보통의 영화적문법을 고대로 차용한다. 고로, 관객은 추상적세계를 동경하는 이들의 관계를 뻔한 내러티브극 안에서 밖에 받아들일수밖에없다. 그러면서 춘수는 나레이션으로 아주좁은 화실안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아주멀리 아주먼곳으로 여행온거같은 기분이다’ 라고 속으로 말한다. 그러나 관객은 공감하지 못하고 뒤이어 이어지는 그의 안절부절못하는 가벼운 행동들과 모순들에 웃기바쁘다. 허나 이러한 1부의 춘수의 태도가 나는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표면의 대사보다 내러티브, 내러티브적인 구도, 대사 들로 인해 진정성의 전달에 있어 모순을 일으키는거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이번작품의 핵심인 ‘표면의 발견, 표면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것과 정반대되는것들이기도 하다. 홍상수는 이번작에서 단순한 대사와 상황속에서 표면의 아름다움, 거기서의 진정성을 발견하는 감각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나간다.
그뒤로 이동한 회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행궁을 가장 후면에두고 그다음 춘수, 그다음 영희를 잡은 구도에서 영희는 가장크게 잡힌다. 객관적시점보단 인물관계에따른 적극적인 대화를 잡은 극영화의 구도라고 볼 수 있다. 영희의 반응이 가장 잘 보이는 얼굴과 우스꽝스런 춘수가 핵심이다. 춘수 그 스스로는 말의 내러티브가 형성하는 상투성을 거부하지만 오히려 그는 순수하고 추상적인 완결성을 그 스스로 기준에두고 있어 표면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보기보단 그걸 추상성이란 대안적인 시선안에 가두어 미화시키는 등 오히려 내러티브적인 구석이 그 스스로에게 있다. 그래서 그는 재미없다 하고 나간 뒤 밖에서 안을 바라보며 ‘조금 전 저안에선 완벽했었는데’ 라고 나레이션으로 궁시렁거린다. 이런 대안적인 추상성에 가두는 현실의 작위적인 아름다움은 결코 표면으로 전달되지않고 내러티브적으로 일방적으로 전송시키려는 것 뿐이다.
시인카페에선 이런 춘수의 추상적인 면이 현실과 부딪혀 위기를 겪게 된다. 관객은 몇차례 그의 나레이션이 오히려 현실의 진정성을 덜어내어, 그의 행동과 말을 호들갑스런 것으로로 바라보는 시선이 학습되어있는 상태이다. 수영이가 던지는 현실의 질문과 그 질문에 점점 이면이 다른 사람이 되어져버리는 춘수를 사이에두고 희정이의 표정은 굳어져만간다. 이 역시도 마찬가지로 희정이를 가운데둔 구도에서부터 뻔하게 예측되는 질문과 대답, 갈등에 대한 반응 일뿐이다. 이들의 관계는 현실을 추상적인 동경에 끼워맞추려는것에서 비롯됬지만 나레이션으로 간접적으로 관객에게 미적추상성을 전달하고있는 형태에다, 구도는 점점 내러티브적인것이되어가기에 그에따른 음성으로 내뱉는 대사도 점점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으로 되어가며 관계또한 뻔해보이는 수순을 밟는다. 이들의 관계는 깨지고 희정이는 혼자 집으로 복귀한다. 이때 카메라는
집 앞으로 다가오는 희정이를 정면으로 담아낸다. 상투성에선 누구도 건져낼수없다. 그녀의 이야기와 풍광은 생략되었고, 현실속의 피로가 반복될 뿐이다.
또, GV자리에서 춘수는 성을 낼 수 밖에없다. 추상성에대한 이상적인 동경의 틀로 현실에 끼워 맞추려했지만 사람관계나 일상에서의 일들은 추상적인것들로 담을 수 없는 소박하고 리얼한 것들이다. 그는 2부의 춘수가말하는 자기위안적인 인물이다. 어떠한 ‘대안’을 마련해두었고 그 대안을 기준으로 현실을 쫓아가 기어코 담아내려하기 때문이다. 고로, 그의 캐릭터는 붕 떠있어서 수면과 수면아래가 다른것처럼 보이고 그의 수면은 참으로 가볍고 우스꽝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에겐 추상성이란 대안이 있기 때문에 ‘말’ 이란 것에 화가 나 있는 상태이지만 그것을 말로서 전한다. 그에 대한 말을 쏟아낼수록 오히려 이 말들이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추상성에대한 시작점과 끝을 차단해 결국 이마저도 상투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1부의 표면을 포착하는 순간들은 이렇게 뻔하게 실패로 끝이 난다.
2부는 다르다. 나레이션을 제거하고, 춘수의 시점을 배제하여 따라가야하는 인물의 주관적인 시점을 배제한체 오로지 관찰자로서의 카메라만이 남겨져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자로서의 카메라는 1부와 달리 행위의 결과만을 염두에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1부의 이동동선과 결과까지 미리 관객이 알고있는 상태이므로 결과와 더불어 과정, 혹은 현상 자체를 더 비중있게 탐구하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2부에선 구도, 대사, 나레이션에 크고작은 변화를 주어 좀 더 객관적인 상태로 이 상황들을 연출한다. 나레이션을 제거하고 추상성을 내뱉는 인물이나 대사보다. 보다 더 단단한 인물, 현실을 살고있는 인물의 춘수가 등장해 단순하고 일상적인 안부같은 대사들로 구성한다. 또 구도적으로도 인물의 정면보단 카메라를 대각선쪽에서 바라보거나 좀 더 입체적이고 객관적인 옆모습 등을 담아내고, 인물간의 크기도 1부보다 큰 차이를 두지 않고있으며 와이드하고 객관적이게 잡으려는 편이다.
1부의 추상성-> 나레이션+추상적대사+인물간 관계, 감정, 상황등을 유도하는 내러티브적인 일차원적 영화구도+야외씬에서의 감정선을 배제한 딥포커스 관찰자시점에서
2부의 현실성-> 나레이션제거+현실적대사+인물간관계,감정등을 유도하지않는 객관적이고 입체적인 구도+야외씬에선 감정선을 살리는 소프트포커스 시점
으로 변화를주어 현실 1부의 추상성을 얘기할땐 영화적,내러티브적으로 보통의 문법을써 이걸 상투적이게 만들고 리얼리티를 보통의 극영화안에서의 것처럼 다루었다면
2부에선 현실성을 얘기하면서 반내러티브적인 구도와 연기의방식도 모델링처럼 간결하게 다루어 오히려 입체적인 리얼리티안에 담아냈다.
즉, 비유하자면 1부에선 추상성을 설명하기위해 마술지팡이에 대한 설명과 주석을 나레이션,구도,딥포커스 등으로 설명하여 내러티브안에 갇혔다면,
2부에선 추상성을 드러내기위해 돌맹이를 나레이션,구도등의 장치를 배제해 내러티브를 제거하고 여러가지 각도에서 볼수있게 그린 정물화라고 할 수 있다.
2부의 춘수는 대사도 1부춘수보다 적으며, 과장이없고 담백하며 현실적이다. 그러니까 매우 평범하고 일상에서 오가는 대화이며, 일상적인 상황, 인물이다.
구도도 마찬가지로 내러티브를 벗겨낸 더 객관적인 위치에서 잡는다.
먼저, 나레이션 없이 오로지 숏의 순서만으로 카메라가 춘수의 방 안이 아닌 밖에서 여성스탭 보라를 보는 춘수의 패턴을 담아내는 등 말,대사,인물,상황의 내러티브자체를 배제시키어 동선, 운동 자체의 이미 벌어진상황에 대해서만 카메라가 미리 위치해 이들을 살핀다.
그 뒤 1부의 실험적인 전제가되는 스케이트장씬은 생략한 뒤 바로 행궁으로 넘어간다.
행궁에서 또 한 춘수의 나레이션을 제거하고 인물을 카메라가 쫓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인물들의 동선에 미리 카메라가 기다려 담아낸다. 그러면 이 순간은 춘수가 표끊는장면, 사진찍는 학생들의 육성을빼면 화면안을 채우는 대화는 아예 사라진채 운동과 동선만을 관찰하게되는 숏의 흐름만 이어진다.
이렇게 인물의 주관적인 나레이션과 주관적인 카메라동선, 이를 관찰하게두는 카메라시점을 배제한체 오로지 이미행해진결과의 틀만을 안고있는채 그러니까 화면상의 내러티브는 배제된채 인물과 풍광, 여러 소박한 육성이나 소품소리에만 의존해 따라갈 때 그 정갈하고 객관적인 위치에서 보게되는 것들은 마치 정물화처럼 ‘햇빛쬐는사람, 우유마시는사람’ 이라고 이름을 붙여도될만큼 신비롭고 아름다운 지금의 순간들이 된다. 내러티브가 없고, 의미나 추상성을 어필하는 말없이 이러한 동선들을 관찰하는 것은 홍상수가 아무것도아닌일상속에서 다시금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감각을 재구성해냈음을 확인받게 된다.
이러한 소격효과를 일으켜 관객은 다르더라도 1부를 통해 이미 친숙해진 춘수나 희정간의 관계를 통해 어느정도 감정이입이 될 수 밖에없게되어 내러티브는 지워진채 감정선만이 남고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순간순간은 봉긋하게 솓아 투명한 순간들이 된다. 행궁안에서의 대화시에도 카메라는 전반부보다 이들의 객관적인 얼굴과 관계를 담을 수 있는 약간 높은 위치에서 더 넓은 프레임으로 담아낸다. 굉장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면이 색다르게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보편적인 입장에서보면 오히려 2부 춘수의 대사들이 더 상투적이다. 그는 현실의 뻔한 질문만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레이션을 제거하여 현실속에 살아온만큼 단단해진 그의 결단력은 배가되어 1부보다 춘수란 인물을 시각적으로 더 작게 담아냈지만 오히려 더 크게 느껴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카페에서도 1부와 달리 뻔한 인물간의 관계를 암시하는 따뜻하게~한뒤 숏이넘어가 따뜻하게 차를마시는 인물부터 잡는 숏을 배제하고 이들의 양손부터 잡은채 좀 더 객관적이고 정물적인 시점을 유지한다. 구도와 나레이션을 배제했지만 상투적인 대사, 일상이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전해지고, 진정성있는 진심으로 전해진다. 아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대화의 표면은 이렇게 아름답고 진정성있는 것들일수도 있다.
화실로 이동해서도 마찬가지로 1부와 달리 평면에 정희를 전면, 춘수를 후면에 수직적으로 배치해 인물의 표정만으로 내러티브를 구성케하는구도에서 벗어나 카메라를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이들의 옆모습이나 대각선에서바라보는 모습을 담아내는 등 좀더 객관적인 위치에서 이들의 아주 단순하고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대사를 포착한다.
횟집으로 이동해서도 1부의 화실과 마찬가지로 희정이의 얼굴이 거대하게 전면에 포착하던 내부에서의 프레임으로 시작했던 부분을 생략하고 횟집밖에서 우연히 반지를 줍는 등으로 우연적인걸 끼워넣고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희정이의 얼굴이 거대하게 잡힌 시작 프레임을 생략한뒤 도중에 들어가, 이들이 한 껏 취한상태라 자세가 흐트러져 1부에비해 어느정도 크기가맞는 구도로 잡게된다. 또, 반지는 1부의 ‘완전했었는데’라는 나레이션의 대사대신
표면의 아름다움을 물리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카페에서도 영희는 이미 자러가 빈 지라 상태로 숏을 시작하여 1부와 달리 남녀관계의 갈등이 심화되는 내러티브적인 성격의 진행을 벗겨내고 오히려 정말 이야기와는 별 다른 내러티브를 구성하지않고, 큰 의미없어보이는 삼자간의 술판이 된채 포커스를 맞춘다. 이 순간에 꽐라가 된 춘수의 평범한 대사들, 흔히보이는 술먹으면 옷벗는 진상들의 모습이 오히려 뒤이어 산책길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드러내는 일상의소스가 되어준다. 굉장히 현실적이고 솔직한 인물의 옷을 벗는 이런 추태가 오히려 2부의 영화에서볼땐 바보같고, 순박하고, 아무것도아닌사람으로서의 아름다움으로 보여진다.
이렇게 추상적인대사, 나레이션과 구도를 배제하고 현실적인 인물이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대사로 표면의 현상만을 드러낼 때 그것을 미적형태로 끼워맞추는 것이 아닌, 포착하게되는 순간이야 말로 홍상수영화의 힘이라 할 것이다. 이런 반내러티브적인 표면의 재발견, 현실성과 솔직함, 그리고 침묵은 1부의 추상성의 수다와 달리 승리를 거두어 희정과 산책로를 가게되는
보너스를 연출한다. 이때의 풍광은 앞서말한거처럼 나레이션을 제거하고 아웃포커싱으로 잡고, 인물만을 포커스하는 등으로 촬영하는데 1부에서 나레이션을 동반한 딥포커스로 잡고 감정은배제한채 무료하거나 비아냥거리는 관찰을 유도하는 야외씬과 달리 2부는 2부내 그이전의 반내러티브,반구도,반나레이션,반추상성의 형태로 발견한 솔직함과 표면의 아름다움들로 인해 풍광을 지우고 인물만을 잡은 2부내의 역설적으로 비현실적이고 주관적인 숏이 오히려 그러한 단순하고 일상적인 대사, 평범한사람, 평범한상황간에 대한 애정이나 예의를 집중해야할 때 집중시키는것처럼 표면의 아름다움은 인물과 평범한 현실에 있다는것을 그대로 집중시켜 보여준다. 이에 따라 즉흥적으로 등장하는 자전거가 사라지는 소실점은 1부의 딥포커스로촬영한 수평이동의 스케이트썰매와 대비되어 굉장히 무드있는 감흥을 일으킨다. 홍상수적이다라고할만한 윤리적인 순간이 아닌가 싶다.
고로, 2부는 현실적이여서 상투적이며 솔직한 이들의 표면만을 훑은거지 내러티브중심만 아닐뿐 이야기는 있다. 그 이야기는 오히려 1부보다 더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워서 희정이가 집으로 올라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춘수와, 카메라를 통해 느껴진다. 이러한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인물의 뒷모습에 구조를 통해 이야기의 흔적을 남기는게 홍상수 영화가 아닌가 싶다.
할수있는만큼 하면서 사는 춘수, 현실속에선 현실, 일상속에선 일상으로, 단단하고 결단력있게 사는 평범한 사람중 한명인 춘수는 그로인해 GV시퀀스에서 따뜻한 배려를 얻기도한다.
결국 이 영화는 사람과 사람, 그 안에 품고있는 아주 조그마한 따뜻함이나 사랑이나 배려를 지키며 사는 현실을 더 투명한 것으로 드러내려고 하는거일수도 있다.
희정이가오고 갑자기 눈이 오며, 희정이는 마지막영화를보고, 춘수는 잠시들른뒤 떠난다. 희정이의 눈엔 어떤 애정과 결단이 서려있다. 이 둘 사이엔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훔치지않고 발자국만남기고간 도둑처럼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은, 아무랬던 일상속에서 누군가의 눈에 애정과 결단이 서리게 되는 순간들은 결국 우리의 현실속 별다른것아닌 만남들을 통해서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훔치지않고 발자국만 남긴 도둑처럼 똑같은상황, 평범한일상, 말, 현실, 우리가사는 단 하나의 표면에서 아무것도 바꾸지도, 강요하지도, 무엇을 보여주려고하지도않고 그저 몇가지의 실험과 구조를 통해 우리의 일상에 새로운 감각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홍상수의 구조랄게 이러한 현실속 단순한것들을 재발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추상적인 말들이 아닌 우리의 단순한 원소같은 단어들로 구성된 말들. 현실속의 말, 살아가는 말. 그런 관계들, 그 표면들.
1부의 춘수는 결국 따뜻해지지못했다. 그는 카페에서 희정의 대화에 끼워맞추며 추상적으로 느낀바를 말했지만, 현실속 추위를 이겨낼만한 힘은 없는 언어들이였다.
2부의 춘수는 카페에서 아버지나 애인이나 친구나 사람사람들에 대해 물어보며 그녀에게 나약한 추상보단 현실속 작은 따뜻함하나라도 지키길 진심으로 조언한다.
1부의 춘수는 나레이션으로 그림과 희정을 보며 화실속에서 멀리여행왔다고 느꼈지만 2부의 춘수는 희정이와 택시비10만원이나 넘게드는 강원도로 갑자기 떠나자고 한다.
화실에서 담배를 피면 벌금을 내지만 기어코 핀 1부의 희정과 달리 2부의 현실적인 춘수의 잔소리에 더 현실적으로 안에서 피면 벌금을 낸다고 화를 낸 희정이 더 건강해보인다.
이들이 옥상으로 올라 가서 희정의 집과 불상을 가리킨 순간은 마치 세잔속 그림 색채의 공명처럼 장소와 장소, 그 안에 위치한 인물의 크기의 달라짐, 불상아래, 혹은 나뭇가지아래, 하나의 우리가 존재하지만 우리의 표면의 아름다움은 여러 가지라는 것, 단순한것들이지만 복잡한 공명감을 일으키고있는 신비의 것이라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가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 현실인거처럼 현실속의 신비로움을 상기하게끔 하는데 그 사람의 이야기를 구조적으로 뒤쫓는 홍상수식 리얼리즘은 마치 장소와 장소, 사람과 사람, 무엇보다 이것들이 하나의 현실에 이루어져 공명감을 일으킬 때 하나의 현실, 하나의 리얼리티가 되는것이 아닌가 싶다. 홍상수식 구조의 놀이는 화가의 색채의 공명감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이 영화는 어머니와 홀로사며, 추운 현실 속 따뜻한 마음과 결단에 불을 지피지 못하는, 친구가 없어 외로운, 그 나이대에 누구나 그럴법한 어느 평범한 여성의 앞으로의 시간을 응원하는 영화이다. 홍상수의 최근작들이 훨씬 좋다. 자유의언덕에서도 그랬고 단순하게 홍상수는 점점 풍광의 소실점속으로 사라지는 아무것도아닌 어느일상순간의 뒷모습에서 현실속 이야기에 대한 흔적을 자기나름대로 열렬히 응원을 하고 있는 중일수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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