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제일’ 신뢰할 만한 지식이라고 하는 입장 즉 과학주의는 미묘한 점들을 놓치고 있다. 과학은 모든 ‘측면’이나 ‘층위’에 대해서 제일 신뢰할 만한 지식인가? 먼저 지식과 과학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지식은 선험적인 전제와 외부세계에 대한 경험을 쌓고 결론을 내린 후 차후에 경험을 또 쌓으면서 결론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해 나가는 모든 인식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 종교는 그러한 점에서 지식의 하위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둘 또한 순전히 사람이 상상으로 떠올린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인류가 다양한 방식(문학, 역사, 신화, 명상, 의식(儀式), 담론 등)으로 경험한 것을 축적시키면서 세상에 대한 결론을 업데이트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 적어도 오늘날 과학이라고 불리는 것 또한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지식의 하위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여기서 의문점은 과학, 인문학, 종교 간에 객관성과 신뢰성의 순위를 매겨 그 중 하나를 제일 우선시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냐 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해야 하는가이다. 진리를 담는 지식에는 여러 가지 층위가 있다. 세부적이고 분석적인 층위에서 위로 올라갈 수록 총체적이고 직관적인 층위가 된다. 오늘날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지식체계는 형식논리와 수학을 기반으로 세계를 구체적인 개별 사물로 구획하고 정량화해 그것들의 완벽 재현 가능한 논리적 관계를 정립한다. 과학 내부에서도 세부적 분석에서 총체적 직관까지의 층위가 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생태학 간에서는 앞의 분야의 세부적 분석을 토대로 뒤의 분야에서 더욱 총체적인 현상에 대해 비교적으로 직관적으로 분석한다. 즉, 물리학, 화학, 생물학, 생태학으로 갈수록 낮은 층위에서 높은 층위의 진리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과 종교는 과학보다 총체적이고 직관적인 높은 층위의 진리, 동시에 다른 측면의 진리에 대해 다룬다고 할 수 있다. 과학에서의 형식논리와 수학, 그리고 정확하게 구획되는 개별 사물들에 대한 분석은 더욱 거시적이고 통합적인 시각(높은 ‘층위’의 진리), 그리고 특정한 대상이나 현상에 주목하는 목적(다른 ‘측면’의 진리)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에 도달한다. 과학 내부에서도 이미 생물이라는 거시적인 물질에 대해 물리의 역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물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체계, 유전자의 전달 등의 더욱 높은 층위의 원리로 설명한다. 또한 왜 생물이나 생태계라는 카테고리가 분석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물리학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회현상 또한 사회의 집단과 그들이 지닌 가치관과 이념이 어떻게 전달되어 왔는지를 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다. 즉 높은 층위로 갈수록 낮은 층위의 설명은 충분하지 못하며 그 나름의 세계 속에서 고유한 패턴을 갖고 작용하는 원리 그리고 그것을 분석하려는 자의 목적이 있다. 따라서 지식의 각 하위 분야들은 무엇이 무엇보다 더 신뢰할 만한 것이라거나 그들 다 똑같이 타당하다고 하는 것이나 모두 틀렸으며 각자의 분야들이 각자가 속한 층위와 측면에서 제일 신뢰할 만한 진리를 담는다고 할 수 있으며 서로의 층위와 측면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