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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 일과에 서서히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존재는 단순히 육체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 외에 기타의 것들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지루하고 고단한 일상의 나날들을 보상받기 위한 심리가 일탈의 행위와 각종 오락과 유희로 이어진다. 마음에 일시적 흥분과 스릴을 가져다주는 행위와 사고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깨닫는 한 가지 사실은 마음은 결코 만족을 모른다는 것이다. 늘 더 많은 것과 더 나은 것을 원하는 마음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은 되려 만족과 감사를 모르는 존재를 낳는다. 언제나 미래와 과거를 향해 질주하는 마음은 현재 자기 자신의 결핍감을 충당해주고 불쌍한 처지를 지지해줄 대상을 찾아 헤맨다. 영혼의 부재는 삶을 공허하고 황폐하게 만들지만, 스스로의 근원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하지 않는 인간의 존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 즉, 자기 자신을 잃어버림으로써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정당화하고 애써 자기 자신에게 납득시킨다. 아무도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것을 수용하는 일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게 된다. 행위와 사고는 틀에 박히게 되고 그로부터 유발되는 감정도 뻔히 예상되는 차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름을 차이로 해석하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인간의 삶은 점점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위해 희생된다. 온통 삶의 내용에만 관심 있는 사적인 자기는 삶의 맥락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자기 초월의 여정에 대해 무지하다. 그 내용이 아무리 다양하게 변화한다고 하더라도 사적인 자기를 붙들고서 하는 일체의 행위와 사고는 육체적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온통 자기중심적이고 육체적 생존만을 이어나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적인 자기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의 삶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다. 사소한 맥락의 변화는 내용의 총체적 변화를 낳는다. 


 스스로의 내면에서 사랑을 확인할 수 없는 존재에게 있어서 삶은 온통 거대한 난투극을 벌이는 싸움터로 비친다. 내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외부 현실은 온 사방을 굴복시켜야 할 가상의 적들로 가정하며, 어제의 동료를 오늘의 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몸이라는 형상을 자기 자신의 정체성으로 붙들면서 몸으로부터 파생되는 온갖 사적인 감정과 생각을 모두 '내 것'이라는 이름 하에 축적하기에 여념이 없다. 몸에 국한돼서 나라는 감각을 받아들임으로써 몸 외부에 있는 일체의 것들은 내가 아닌 타자의 것이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아차 지리 못한다. 나 이외의 다른 것을 타자로 설정함에 따라 대상과의 접점은 상실된다. 분리의 틈새를 메워주는 사랑의 역할이 제 기능을 못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몸에 한정된 나라는 존재가 몸과 함께 여타의 것들을 소유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대상적 세계는 나와 분리된 미지의 것으로 정의된다. 더불어 대상적 세계 안에 몸이라는 형상을 지니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시공간과 함께 정해진 운명의 행로가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믿게 만든다. 몸이라는 형상과 함께 마음이 만들어낸 생각과 감정은 사적인 자기의 위치성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이는 에고의 팽창을 불러일으킨다. 오직 하나가 있는 곳에서 둘을 상상하는 마음은 대립쌍과의 긴장 속에서 단 한순간도 편할 날이 없다. 분리의 틈새를 메울 수 없는 무기력함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미지의 것을 최대한 빨리 익숙한 것으로 변모시켜야 할 숙제를 떠안는다. 왜냐하면 미지의 것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며, 공포와 두려움, 불안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마음의 입장에서 육체의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 노출되는 것은 기필코 피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은 경계해야 할 대상의 최우선 순위에 놓인다. 몸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존재에게 육체의 경계 밖에 있는 것들은 모두 미지의 것이다. 그리고 육체의 생존과 결부된 마음의 입장에서 미지의 것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며, 자기 자신의 제어와 통제 하에 두어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 내 것에 대한 집착이 모든 불안과 두려움, 공포를 유발하는 원흉이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가 내 것임을 최초로 주장하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의 몸 형상이다. 


  시공간 내에서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대상은 미지의 것으로 설정된다. 분리가 있는 곳에는 사랑이 찾아올 수 없는데, 이는 진정한 사랑이 그 어떠한 분리도 없는 상태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존재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알려진 낭만적 사랑의 감정은 실상 지성으로 교모히 포장된 성욕에 다름 아니다. 진짜 사랑은 욕망을 수반하지 않는다. 욕망은 대상과 나의 차이와 다름 안에서 자라나지만, 사랑은 대상과 나의 동일한 본질 속에서 피어난다. 동물적 본성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지성의 눈속임은 더 많은 물질적 재화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관습 속에서 자연스러운 삶의 양식으로 자리매김한다. 마음의 입장에서 느끼는 끌림과 매력은 실상 분리를 상상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사적인 자기라는 위치성에서 바라본다는 조건 하에서 아름다운 형상에 대한 끌림이 일어난다. 매력적인 대상은 사적인 자기가 지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각의 환상은 대상화된 시선과 분리를 내포하고 있으며, 하나가 있는 곳에 마치 둘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남녀의 사랑은 일정한 조건과 함께 관계의 어울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일 따름이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분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 남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타는 사랑이 결국 서로를 향한 증오로 얼룩지는 이유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포장된 성욕이 실상 분리를 더욱 조장하는 역할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성욕을 기반으로 한 남녀의 만남은 사적인 자기가 지니는 위치성이 특별하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키고 둘 만이 있는 상상의 세계를 그려낸다. 둘만이 세상의 전부인 그 세계 속에서 남녀는 그 여타의 것들을 모두 배제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사로잡힌다. 환 속의 환을 만드는 것이 특정 대상을 향한 낭만적 사랑의 본모습이다. 몸이라는 잘못된 동일시로부터 파생된 육체적 관계는 결국 더 나은 맥락으로의 전환을 꾀하지 못하고 좌절되고 만다. 서로가 서로의 사적인 자기를 공고하게 해주는 기만적인 역할을 수행할 때,  남녀의 만남은 날이 갈수록 익숙하고 권태로운 양상을 띠며, 단순히 성욕을 채우기 위한 만남으로 변모한다. 삶의 목적은 문명과 사회가 부여한 종의 재생산에 국한되지 않는다. 번식은 삶의 내용일 뿐 결코 맥락이 아니다. 진정한 맥락은 스스로의 본성에 대한 심도 깊은 탐구이며, 이로 인해 내면에서 출현하는 자기 감의 확장이다. 지속적인 명상과 내관을 통해 창의적 맥락으로의 전환을 꾀함으로써 무의식에 해당되는 업보를 해소한 존재는 몸으로부터 의식을 분리시킨다. 몸과 의식의 분리가 가능한 이유는 애초부터 의식이 몸에 갇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상승의 길은 자아실현과 그 결을 함께 하며, 기존의 낡은 관습과 전통을 해체시키는 자유와 사랑의 발로다. 영적인 의도를 갖는 그 순간부터 실상에 대한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는 실상의 관점에서 의도와 결과가 동시에 출현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맥락을 바라보고 있는 의도는 이미 실현되었다. 더불어 영적인 의도는 과정 속에서 충분히 내적 보상을 받기 때문에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당연한 사실은 세간적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영원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역사의 순환임을 깨닫게 한다. 카르마가 완전히 해소되어 의식이 스스로가 의식 자체임을 자각하기 전까지 육체의 재탄생과 함께 생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대립쌍의 출현은 아직까지 삶 속에서 풀어야 할 과제의 잔재가 남아있음을 이야기해준다. 대립쌍은 언제나 위치성으로부터 비롯되며, "일체가 나 자신에 다름 아니다"라고 확실한 내적 선언이 공표되기 전까지 거듭 삶 속에서 악의 대리인으로 스스로를 알린다. 몸을 나 자신으로 여기면, 타자는 모두 대립쌍으로 출현한다. 어떠한 특정 대상을 강하게 선호하는 마음이 그와 반대되는 특성을 가진 대상을 혐오로 낙인찍는다. 내가 어떠한 신념을 옳다고 받아들일 때, 그와 다른 신념을 가진 존재는 모두 나와 대립적 구도를 취한다. 나라는 존재가 대상적 세계 안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마음 너머의 절대적 실상에 대한 진실을 부정하게 한다. 이처럼 마음 너머에 도달하기 전까지 인간의 존재는 대상적 세계 안에서 늘 대립쌍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짝지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세상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무지와 함께 나타난 알량한 기대가 절대를 상대 속에 얽매이게 한다. 절대의 그림자인 상대는 모두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는 환일 따름이지만, 스스로가 절대임을 망각한 실재는 환이 환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일체가 바다의 거품처럼 단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이지만, 외견상 견고해 보이는 물질과 대상적 세계는 마치 스스로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묘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허공 위에 쌓아 올려진 대상적 세계는 그 토대를 호흡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재하지 않음을 항시 드러내고 있지만, 삶의 멜로드라마가 가져다주는 유혹이 영적인 시야를 가린다. 언제라도 갑작스럽게 멈출 수 있는 호흡이지만, 존재는 마치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세상 속을 살아가고 환에 대한 사랑을 내려놓지 못한다. 환이 환임을 알 때, 오히려 환에 얽매이지 않고 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생시의 꿈속에서는 무엇을 얻든 얻은 것이 아니고 잃어도 잃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얻는 주체가 환이기 때문이다. 업보 중의 업보는 몸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몸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업보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게 만들고 존재를 거듭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한 생으로 다시금 되돌아오게 만든다. 의식이 출현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 혼란과 무질서는 본래의 절대 상태로 회귀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염원을 낳는다. 이미 인간의 존재는 모두 절대의 상태에 있지만, 몸 형상에 온통 주의와 초점이 맞춰진 존재는 마음의 생각과 감정이 만들어내는 대상적 세계를 참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실상을 가리는 업보를 축적한다. 참되지 않은 것을 참되다고 받아들이게 될 때, 서서히 환의 손아귀가 존재의 숨통을 조여 온다.     


 몸의 불완전함을 자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대가로 인간의 존재는 세상에 어떤 이보다도 자기 자신을 싫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아가 마음이 만들어낸 이원성에 단단히 사로잡혀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분별하는 태도가 업보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분리를 해소할 능력이 없는 마음은 항상 마음 너머 미지의 것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 분리로부터 파생된 생각과 감정의 응어리들이 남아 생에서 생으로 이어지는 업보를 만들어내지만, 시공간에 갇힌 마음은 만물을 하나로 이어주는 보편적 사랑의 단일성을 볼 수 없다. 돌멩이와 사람, 미인과 추녀, 정숙한 아내와 요염한 매춘부 사이에서 그 어떠한 구분도 보지 못하는 존재만이 마음 너머에 도달해 생기의 불꽃이 만물에게 생명력을 실어 나르고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미 시체와 다름없는 육체를 움직이게 하고 기능하게 만드는 의식의 빛이 바로 실질적인 생명력의 원천이다. 지고의 실재는 의식을 사랑하므로 빛을 부여하고, 의식은 마음을 사랑하므로 온갖 생각과 감정을 기꺼이 품는 아량을 선보인다. 마음은 육체를 사랑하므로 시공간 속에서 욱 체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허락한다. 이처럼 더 크고 포괄적인 상위 차원의 자기에서 내려오는 다함없는 인내와 사랑이 있지 않고서는 결코 단 한순간도 육체는 살아 움직일 수 없음이 명백하다. 무지와 망각이 신의 자녀인 인간의 존재를 동물적 본성만을 충족시키며 살아가는 존재로 퇴행을 조장했지만, 스승의 말씀과 함께 찾아온 신적 지혜가 존재하려는 욕망을 종식시키고 차이와 다름 속에서 '동일한 본질'을 보게 한다. 마음은 사적인 자기가 생존하기 위해서 기대하고 의지할 수 있는 도구로 지성과 이성을 들이밀지만, 마음의 한계마저도 기꺼이 수용하는 보편적 의식이자 신은 그마저도 내맡길 것을 요구한다. 스스로가 아는 것을 완전히 내던지고 자기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올 것을 권유하시는 신의 자비와 사랑은 지각의 환상을 허무는 치유의 힘이다. 미지의 세계를 눈앞에 두고 의식이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한 그 시점에서 세상은 온통 혼란과 무질서로 가득 찬 악의 근원지로 다가왔지만, 오직 삶 속에서 신만을 보고자 하는 일관된 의도를 품자마자 세계에 질서와 평화가 저절로 들어섰다. 매 순간 허공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세계 안에서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이자 전부인 '그'다. 맥락이 현존의 장으로 전환됨에 따라 만물의 근원이 모두 나로부터 비롯되었음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로 드러난다.  


" 육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미 죽은 날은 예정되어 있다. 다만 눈을 감을 당시에, 무엇으로 죽느냐는 존재의 전적인 자유의지에 따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