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시뮬레이션이다. 실제와 가상의 구분을 떠나서 세상은 흐른다. 그 자체로 시뮬레이션이다. 즉, 세상은 하나의 시스템이다.
인간은 4차원 위의 고차원적인 사고를 구상할 수 없다. 즉, 인간은 확인 불가능한 현상을 이해는 커녕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 글은 이해불가능한 고차원적인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전개되는 점을 알아주기 바란다.
생물은 번식한다. 번식을 하면 나의 생명 연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가? 아니다. 번식 자체는 생명 유지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왜 번식을 하는가 그 답은 유전자에 있다. 모든 생물의 번식 행위는 번식 생물 주체자의 생명 연장이 아닌 유전자 보존, 복제에 있다. 즉, 나는 나를 나라고 생각하게끔 설계된 (리처드 도킨스의 구절을 빌려와 말하자면) '유전자 복제 기계'에 불과하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생물의 행동패턴은 전부 자아의 주체인 "나"를 중심으로 나타난다. 이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차원에서의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 중 하나다. 그렇다면 이렇게 연결지을 수 있다. 번식은 유전자의 자가복제를 목적으로 발생하고, 이 번식또한 생물의 행동패턴이다. 그런데 생물의 행동해턴은 "나"를 주체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되면 "나"는 앞서 언급된 것처럼 기계적존재로 치부돼버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유전자의 자가복제" 그 자체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에러'가 발생한다. 바로 돌연변이다. 위 주장을 토대로 번식이 "나"를 위해 이루어진다면,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았을때 생물은 번식을 원해야한다. 이에 가장 원초적인 현상이 바로 성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번식을 위한 생물의 행동체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체계에 맞물려 억제된다고 하면 어떨까? 마치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처럼 말이다. 과연 이 현상이 "나" 즉, "유전자 복제"를 위한 현상이 맞을까? 아마 아닐것이다. 현재 상황만 보더라도 번식의 억제는 종의 멸을 초래하고 멸은 결국 유전자 복제의 끝을 말하니까.
나는 이런 단순한 사고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관점으로 이 '번식억제현상'을 바라볼 것이다. 어찌됐건 적어도 현재 나라는 인간은 사회체계에 영향을 받아 번식욕구를 억제받고 있다. 번식욕구가 억제되고 나니 아마 머나먼 원시시대에는 생각해보지 않았을 번식에 대한 고찰이 나도 모르게 거듭되게 된다. "나"는 "유전자 복제"이다. 하지만 "나"는 "유전자 복제"를 인식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를 입증하지 못하는데 "나"를 위해서 행동한다고? 솔직하게 말해서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다. 번식 욕구가 억제됨에 따라 이러한 사고가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넘어와서 "번식"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겠다.
사실 이 주장을 펼치기 전에,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있다. "나"는 "유전자 복제"가 아니다. 사실 "나"는 말하자면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경우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생물이 될 수 있고, 그 생물의 자아가 될 수 있고 혹은 유전자 복제까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번에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예 없지도 않다. "나"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애매한 개념이다.
이 설명을 이해했다면 이제 나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번식"이라는 현상에서 "나"는 유전자 복제이다. 그렇지만 "나"를 "복제가 이뤄지기 전 오리지널이 되는 생물체"로 보았을 때 번식은 전혀 "나"를 위하고 있지 않다. 도입부에 세상은 시스템이라는 말을 했었다. 분명 모든 생물의 행동패턴은 "나"를 위함 이라고 했었는데, 이건 시스템적 오류일까? 아니다. 세상은 흘러가는 시스템일 뿐 그저 흐르기 때문에 오류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럼 이 모순적인 현상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시스템적 에러가 아닌 생물학적 에러다. 사실 앞서 이미 정답을 말했었다. 내가 '에러로 인해 번식욕구가 억제되었다'라고 했었나? 그에 따르면 에러로 시작된 이 현상역시 에러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에러로 인해 현재의 번식은 "나"를 위하지 않는 현상이라고 결론이 난다. 에러는 최대한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 그 에러가 발생한 분야의 시스템에 도움이 된다. 즉, 눈치챘겠지만 나는 사라지는게 마땅하다. 아니, 애초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에러가 발생하고 도태된 유전자는 곧 주변 다른 현상을 일으키고, 그 현상에 의해 에러는 반복된다. 에러는 멈출 수 없다. 하지만 늦추거나 약화시킬 수는 있다. 나는 그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도태된 유전자이고 나는 생물시스템 유지를 위해 사라질 것이다. 그게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이자 내가 죽는 이유이다.
인간은 4차원 위의 고차원적인 사고를 구상할 수 없다. 즉, 인간은 확인 불가능한 현상을 이해는 커녕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 글은 이해불가능한 고차원적인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전개되는 점을 알아주기 바란다.
생물은 번식한다. 번식을 하면 나의 생명 연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가? 아니다. 번식 자체는 생명 유지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왜 번식을 하는가 그 답은 유전자에 있다. 모든 생물의 번식 행위는 번식 생물 주체자의 생명 연장이 아닌 유전자 보존, 복제에 있다. 즉, 나는 나를 나라고 생각하게끔 설계된 (리처드 도킨스의 구절을 빌려와 말하자면) '유전자 복제 기계'에 불과하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생물의 행동패턴은 전부 자아의 주체인 "나"를 중심으로 나타난다. 이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차원에서의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 중 하나다. 그렇다면 이렇게 연결지을 수 있다. 번식은 유전자의 자가복제를 목적으로 발생하고, 이 번식또한 생물의 행동패턴이다. 그런데 생물의 행동해턴은 "나"를 주체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되면 "나"는 앞서 언급된 것처럼 기계적존재로 치부돼버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유전자의 자가복제" 그 자체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에러'가 발생한다. 바로 돌연변이다. 위 주장을 토대로 번식이 "나"를 위해 이루어진다면,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았을때 생물은 번식을 원해야한다. 이에 가장 원초적인 현상이 바로 성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번식을 위한 생물의 행동체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체계에 맞물려 억제된다고 하면 어떨까? 마치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처럼 말이다. 과연 이 현상이 "나" 즉, "유전자 복제"를 위한 현상이 맞을까? 아마 아닐것이다. 현재 상황만 보더라도 번식의 억제는 종의 멸을 초래하고 멸은 결국 유전자 복제의 끝을 말하니까.
나는 이런 단순한 사고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관점으로 이 '번식억제현상'을 바라볼 것이다. 어찌됐건 적어도 현재 나라는 인간은 사회체계에 영향을 받아 번식욕구를 억제받고 있다. 번식욕구가 억제되고 나니 아마 머나먼 원시시대에는 생각해보지 않았을 번식에 대한 고찰이 나도 모르게 거듭되게 된다. "나"는 "유전자 복제"이다. 하지만 "나"는 "유전자 복제"를 인식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를 입증하지 못하는데 "나"를 위해서 행동한다고? 솔직하게 말해서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다. 번식 욕구가 억제됨에 따라 이러한 사고가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넘어와서 "번식"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겠다.
사실 이 주장을 펼치기 전에,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있다. "나"는 "유전자 복제"가 아니다. 사실 "나"는 말하자면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경우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생물이 될 수 있고, 그 생물의 자아가 될 수 있고 혹은 유전자 복제까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번에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예 없지도 않다. "나"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애매한 개념이다.
이 설명을 이해했다면 이제 나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번식"이라는 현상에서 "나"는 유전자 복제이다. 그렇지만 "나"를 "복제가 이뤄지기 전 오리지널이 되는 생물체"로 보았을 때 번식은 전혀 "나"를 위하고 있지 않다. 도입부에 세상은 시스템이라는 말을 했었다. 분명 모든 생물의 행동패턴은 "나"를 위함 이라고 했었는데, 이건 시스템적 오류일까? 아니다. 세상은 흘러가는 시스템일 뿐 그저 흐르기 때문에 오류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럼 이 모순적인 현상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시스템적 에러가 아닌 생물학적 에러다. 사실 앞서 이미 정답을 말했었다. 내가 '에러로 인해 번식욕구가 억제되었다'라고 했었나? 그에 따르면 에러로 시작된 이 현상역시 에러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에러로 인해 현재의 번식은 "나"를 위하지 않는 현상이라고 결론이 난다. 에러는 최대한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 그 에러가 발생한 분야의 시스템에 도움이 된다. 즉, 눈치챘겠지만 나는 사라지는게 마땅하다. 아니, 애초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에러가 발생하고 도태된 유전자는 곧 주변 다른 현상을 일으키고, 그 현상에 의해 에러는 반복된다. 에러는 멈출 수 없다. 하지만 늦추거나 약화시킬 수는 있다. 나는 그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도태된 유전자이고 나는 생물시스템 유지를 위해 사라질 것이다. 그게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이자 내가 죽는 이유이다.
아직 다 읽진 않았습니다만 "나"에 대한 의견은 어느정도 알았습니다. 저는 자아를 뜻하는 "나"는 허상의 존재라 생각합니다. 개념적이고 철학적이지만 실존하지 않는 것. 불교의 무아라 할 수 있네요. 카뮈 철학적으로 말하면 부조리감이라 할 수 있겠구요. 유발 하라리가 말 한 것처럼 인간은 허상을 이야기 하는 존재이기에 스스로를 개념화시키는 도구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예로 인간은 타인 없이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 합니다. 그저 말씀대로 육체, 유전자적 신체만을 인식하죠. 그렇다면 개념으로서의 "나"와 육체적 "나" 중에서 어떤 것이 자기스스로에 가까울까. 저는 반드시 육체적 나라고 생각합니다. - dc App
이 다음은 따로 글을 올려볼게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