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비조라 불리우는 소크라테스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바로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이다.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스스로를 규정짓고서 살아간다. '가수' 아이유, 문광 '스님', '학생' 이정석, '국회의원' 추미애, '대통령' 윤석열, '이대리' 등등. 내가 여기서 제시한 사례들은 주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객관적인 직분을 나타낸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을 규정하는 이러한 사회적 직분을 별 무리 없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살아간다. 그런데 세상에는 번듯한 사회적 직분을 가진 사람들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어쩌다가 세상에 나아가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 말을 섞게 되었을 때 그들로부터 자신을 소개하는 명함 하나를 건네받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 명함에는 모모 법무법인 변호사 누구누구, 어디어디 출판사 편집자 누구누구 같은 정보가 그 사람들의 전화번호와 함께 적혀 있다. 나 또한 살다 보니 그런 사태를 종종 마주했는데 그 명함을 받아들고서 나는 내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한 번씩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물론 나와 같이 뚜렷한 사회적 직분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 또한 자신을 규정할 수가 있다. 언젠가 나는 스스로를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내 자신에게 '고졸 백수 정신병자' 라는 규정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스스로가 내린 그 규정을 어디서 드러내어 놓고 말하고 다니진 않았다. 할 말이 궁색해질 때면 차라리 '대한민국 아줌마' 였으면 날 소개하기가 더 편했을 걸 생각하기도 했다. 한편 세상에는 이와 반대로 이름만 대어도 아는 유명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굳이 명함을 팔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런 유명인사는 드물고 나 같은 히키코모리는 매우 많다.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서 여기서 내 이력을 소개해 보자면 나는 이십대 시절에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 오랫동안 적을 두고 산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자퇴하였고 그 과정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고서 정신병원 신세를 십 수 차례 졌다. 오랜 기간 정신과 약을 먹으며 살고 있다. 치대에 다녔으나 공부 내용은 기억나지도 않고 의사 자격증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대졸자도 아닌데다 정신질환 때문에 변변한 직업 없이 지냈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았던 건 아니어서 나름대로 철학을 공부하고 있었으니 '학생'이긴 한 것 같은데 또 대학원에 다니고 있지도 않았다. 고졸이 왜 그런 공부하냐고 물으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는 누구인가. '시인?' 하지만 또 '시인'이라고 스스로 규정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가. 대한민국에 삼 만 명 존재하고 있다는 바로 그 '시인'이라니. '시인'의 시는 '시인'도 읽지 않는다. 모든 직종 중 '시인'의 평균 소득 수준은 뒤에서 첫 번째나 두 번째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내가 '시인'이구나. 가족들 빼면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적은 '시인'. 서로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나눌 때 '시인입니다' 라는 소개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어디 들어본 적도 등단한 적도 없는 '시인'이란다. 아무튼 나는 사람들에게 내세울 사회적 신분을 획득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시를 몇 편 적었다. 책을 냈던 안 냈던 일단 적으면 작가라고 하지 않던가. '시인'이란 직분이 마뜩찮은 것은 사실이지만 마흔 살 먹은 '고졸 학생' 이나 '정신병자' 보다는 조금 더 나은 것 같다. 참고로 '소설가'가 되기보다는 '시인'이 되는 것이 일백 배는 더 쉽다. 문학청년이던 내가 마음에 새기고 사는 명언이 하나 있다. 바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라는 말이다. 주어진 길을 따라서 잘 살아가는 인간들은 결코 방황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과연 옳은 길인가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만이 방황을 한다. 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The Road Not Taken 이란 시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방황은 시에 적힌 풍경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 가려는 자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그는 자기 자신을 새롭게 규정하고서 미지의 세계로 한 발을 내딛는다. 사람은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물을 때 가장 큰 에너지가 나온다고 한다. 누군가는 자신이 한창 잘 나갈 때 '나야 나'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나라는 동어반복. 얼마나 원초적인 자신감인가. 철학 공부를 하는 내 눈에는 종종 자신을 '철학자'라고 규정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철학 공부는 보통 '철학자'들의 글을 읽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주로 읽는 '철학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 니체 등이다. 이들은 인류 역사상 최상급의 '철학자'들이다. 내 판단에 '철학자' 김용옥은 아직 그들보다는 조금 못하다. 하지만 그가 '철학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아닌 '물리학자'들도 많이 있듯이. 혼자 보는 일기장에다 시를 적은 사람이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듯이 생긋생긋 잘 웃는 어린아이가 스스로를 웃음의 '철학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철학자'들을 조금 되지 못한 사람들로 본다. '철학자' 보다는 '사상가'가 더 온전한 사람들인 것 같다. 공자 맹자 한비자와 같은 사람들은 '철학자'라기 보다는 '사상가'로 불리어야 옳다. 최근의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로는 칼 마르크스가 있다. 그는 물론 철학을 공부한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세계를 해석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서 세계를 변혁하려고 하였다. 사상가가 되지 못한 철학자들은 약간은 자폐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세력에 아부하는 철학자들이 멋있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철학자들은 보통의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이다. 일상어로서 어떤 사람이 자기 철학이 있다는 말은 그 사람은 자기 분야에서 세상이 뭐라 하든 지 주관이 있다는 뜻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매우 심오한 철학을 적어낸 철학자일수록 그 개인적 삶이 보통 사람들의 상궤에서 벗어나 외골수의 극단으로 치달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상급의 철학자들은 특히 여성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아니하며 결혼을 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자기 사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 중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혼자 하고 살아가는 일정한 직업 없이 떠도는 독신의 아저씨를 한 번 상상해 보라. 그 사람이 '철학자'일지도 모른다.
푸!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몹시 취했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꼭 한번ㅡ제대로ㅡ읽어 보고 싶으니 글을 지우지 않았으면 하고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되레 감사하죠.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쓴다는 건 아무튼 고맙고 수고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이제 그만 자야겠습니다. 방장님께 드립니다. https://youtube.com/watch?v=02lpExJYz5M&si=BgTXyPVSKFsARcs7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밤 새서 이제 자러 갑니다. 다른 주제가 생각나면 한 꼭지씩 써보겠습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