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중세까지, 철학자들은 여러 개체들을 규정하는 유형 내지는 필요충준적 속성, 특징이 실재한다고 생각했음. 여기서 개체란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식하는 개별 사물, 즉 노트북, 인간, 자동차.. 이런 하나의 단위로 인식되는 사물들을 말함. 철학자들은 우리가 여러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있는데 그들을 모두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가진 공통점
철갤러 1(116.45)2024-08-01 02:36:00
답글
이 있다고 생각한거임. 그리고 그 공통점은 감각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추론을 반복한 끝에 알게된다고 생각했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그런식으로 진행됨. 정의란 무엇인가? 이렇게 소크라테스가 물어서 누군가가 '강자의 이득이다' 라고 말하면 그게 왜 잘못된 정의인지 개별적인 사례를 언급해서 논박하는 방식으로 완전한 정의를 얻게됨.
철갤러 1(116.45)2024-08-01 02:38:00
답글
그렇게 얻어낸 정의가 곧 여러 개별 현상, 개별 사물들에 공통된 특징 내지는 필요충분적 속성이 되는거임. 이런 것을 본질이라고 부르지. 여럿에 공통되면서, 그 여럿을 어떤 유형이나 타입으로 묶어주는 것
철갤러 1(116.45)2024-08-01 02:39:00
답글
현대인들은 그렇게 얻어낸 본질에 대한 관념들이 우리 정신 안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고대 철학자들은 그럼 그런 본질이 괜히 주어졌을리가 없다고 생각한거임. 본질이 정신 독립적으로 실존하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개별적 사물을 하나의 유형에 포섭할 수 있냐? 이런 논리지
철갤러 1(116.45)2024-08-01 02:40:00
답글
그런데 결국 사물의 본질 같은건 결국 우리의 정신안에만 있는 관념이라는 입장이 근대철학자들에 이르러서 거의 통념이 되고 사트르트는 그 이후에 태어난 인간임. 그래서 사르트는 그런 역사에 의거해 말하는거임.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사물을 어떤 타입이나 유형으로 묶어버리고 제한해버리는 본질은 실재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은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 본질은
철갤러 1(116.45)2024-08-01 02:42:00
답글
우리가 결정한다! 이게 실존주의의 모토임. 감히 이렇다 저렇다 규정하고 한정짓지 말아라. 우리의 존재는 우리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이게 그들의 논리
철갤러 1(116.45)2024-08-01 02:43:00
답글
고대 철학자들의 논리처럼 본질이 실존에 앞서서 존재하고, 실존은 그 본질에 끼워맞춰지는 것이라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행동, 생각, 가져야 할 취향과 직업. 이런 것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본질로써 규정되어 있겠지. 실존주의는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함. 우리가 선택하는거지 정체성을
철갤러 1(116.45)2024-08-01 02:47:00
답글
그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면 누가 알아 듣겠소 - dc App
익명(58.29)2024-08-01 03:21:00
답글
역사적 맥락에 그 의미를 상당수 의존하는 문장이라서 어쩔 수 없음. 또 짧게 설명하려면 철학 개념들을 함축적으로 써야되는데 그럼 쉬운 설명이 아님. '본질이 실재한다', '사물들의 생성 이전에 본질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 못할꺼아님
익명(116.45)2024-08-01 03:29:00
답글
그렇게 말하니까 오히려 알아듣겠는데? 본질이 실존을 앞설 수는 없냐? - dc App
익명(58.29)2024-08-01 03:30:00
답글
본질이 실재하냐 / 실재하지 않느냐. 이것부터 답을 해야 하는거임. 관념으로써의 본질에 대응하는 어떤 무언가가 물질세계에 있을까?
철갤러 1(116.45)2024-08-01 03:38:00
답글
그래 마음이 본질이고 신체가 실존 아니냐 근데 마음이 더 앞서지 어떻게 신체가 더 앞서냐? - dc App
익명(58.29)2024-08-01 03:40:00
답글
예컨데 사람의 본질이 이성이라고 하면, 이성이라는 것에 대응하는 것이 우리 정신 바깥에 있음? 다른 말로, 실재함?
철갤러 1(116.45)2024-08-01 03:40:00
답글
그게 신체 아니냐 신체가 나를 건강하게도 만들고 타락하게도 만들잖아 근데 신체가 아니라 마음이 더 먼저라고 - dc App
익명(58.29)2024-08-01 03:43:00
답글
마음이 본질이라는 게 무슨 말임. 본질은 어떤 대상의 유형 내지는 필요충분적 특징을 뜻함. 마음이 본질이다? 마음이 유형이라는 것임? 무엇의 유형임? 내 생각에 일상적 의미에서는 뭔가 핵심적이고 중요한 특징을 본질이라고 말하는데 철학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본질을 말하지 않음
철갤러 1(116.45)2024-08-01 03:44:00
답글
마음이 앞선다는 것은 또 무슨 말임. 마음이 없으면 신체가 없다는 존재적 의존을 말하는건가? 그리고 건강과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개념이 왜 나오는거임?
철갤러 1(116.45)2024-08-01 03:45:00
답글
훗 병신 - dc App
익명(58.29)2024-08-01 03:46:00
답글
너가 철학적 문장을 이해하고 싶으면 철학에서 다루는 개념을 받아들여야함. 일상적 의미로 철학적 진술을 이해하려고 하니까 호환이 안되는거임. 저 문장은 아무생각 없이 쓰인 문장이 아님. 내 설명이 길어진 것도 철학 개념응 설명하기 위함임
철갤러 1(116.45)2024-08-01 03:46:00
답글
아무튼 나는 너에게 설명해주려 했음. 너는 수고에 병신이라고 화답했으니 대화는 여기까지
철갤러 1(116.45)2024-08-01 03:47:00
답글
노력은 가상하나 너는 개똥철학자다 !! - dc App
익명(58.29)2024-08-01 03:48:00
본질 : 무엇인가에 원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속성 혹은 숙명, 실존 : 무엇인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철갤러 2(175.205)2024-08-01 11:42:00
답글
과거에는 본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자는 앉는데 써야하고, 칼은 베는데 써야하죠. 그래서 국수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국수집 사장이 되는 것이고,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는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분제가 합리화 되는 것이죠. 하지만 사람은 타고난 숙명을 넘어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실존주의 입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카페에서 일하는 웨이터가 앞치마를 두르고 서빙을 하고 있지만 퇴근하고 나면 그는 웨이터가 아니라 낚시꾼이 될 수도 있고 소설가가 될 수도 있다고 한 것입니다.
철갤러 2(175.205)2024-08-01 11:45:00
답글
우리는 의자를 주로 앉는데 사용하기는 하지만 받침대로 쓰기도 하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기도 합니다. 사람처럼 사물 또한 그 가능성은 본질을 넘어서 무궁무진 할 수도 있죠. 혹시 쿵푸팬더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셨나 모르겠는데 주인공 포의 아버지는 국수집 사장입니다. 아들에게 항상 국수 얘기만 하죠. 너의 핏줄 속에는 국수 육수가 흐르고 있다. 우리의 인생은 국수라면서 말합니다. 하지만 포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거부하고 쿵푸 마스터가 되죠.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명제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이 아닌가 합니다.
철갤러 2(175.205)2024-08-01 11:48:00
답글
그리고 쉽게 쓰려고 본질과 실존에 관하여 너무 단순하게 제가 퉁쳐버린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도 무난한 정도인 것이지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보시는게 맞습니다.
철갤러 2(175.205)2024-08-01 12:01:00
답글
위에 116.45님이 쓰신게 더 정확합니다.
철갤러 2(175.205)2024-08-01 12:02:00
사르트르j.p.sartre의 주장입니다. 말 그대로이며, 별 심오한 뜻은 없습니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자기자신을 의식하는 인간이라는 대자존재가 사물자체인 즉자존재와 본디 분리되어 있어서 끊임없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으므로 즉자존재에 스스로를 투사하는 모험을 감행하는데, 이 모험의 주체로서 대자존재는 이미 자유를 보장받고, 그 자유를 스스로
고독사(125.188)2024-08-01 23:33:00
답글
실행하는 데서 사물자체인 즉자존재보다 먼저 활동한다 쯤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앞서 116님이 말씀하신 고대 철학에서 유genos에 맞서는 종eidos(aristotle.)의 경우나 칸트가 말하는 대상을 마주한 감성(=감각)적 인식주체로서 인간존재인 나, 니체가 운명에 맞서서 '삶이여 다시 한 번!'이라고 외치는 권력의지의 행위자로서 나, 하이데거가 말하는
고독사(125.188)2024-08-01 23:41:00
답글
존재의 우월성으로서 현존재, 레비나스가 말하는 존재에서 존재자로, 메를로-퐁티의 신체로서 우선 활동하는생명 등등이 모두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과 흡사하거나 동일합니다.
고독사(125.188)2024-08-01 23:46:00
답글
*1.
대자존재:(마주할-대) 스스로 대상을 마주하는 능력을 지닌 존재.
즉자존재: 스스로 거기 있기만(머물기만) 하여 대자존재에게 발견되길 바라는 존재.
고독사(125.188)2024-08-02 00:06:00
답글
2. 인(간)류=>인류에 속한 인간(그러나 이 인간의 특질은 작은 것 또는 낱낱의 형상들eidos로서 존재on나 본질ousia에 앞서서 드러난다) 혹은 개인.
고독사(125.188)2024-08-02 00:11:00
답글
3. 지금 여기 내 눈 앞에는 맥주병이 있다. 그 맥주병의 모양이 원뿔 모양인지 원통 모양인지ㅡ지금 여기에 없는ㅡ너는 알 수 없다. 맥주병의 색깔이 투명에 가까운 하얀색인지 갈색인지 흑갈색인지도 너는 알지 못한다. 맥주병 안에 든 게 맥주가 아니고 나의 오줌이라면 그걸 맥주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고독사(125.188)2024-08-02 00:16:00
답글
3.1. 우리는 맥주를 담은 병을 맥주병이라 하고 세상의 맥주병 모양은 흡사하므로 맥주병의 본질을 상상 속에서(뇌내에서) 재현할 수 있겠지만, 그게 정말로 맥주가 담긴 유리나 PET 재질로 된 병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고독사(125.188)2024-08-02 00:22:00
답글
3.1.1. 여기서 너의 뇌내 속 맥주병은 '본질', 내가 한 손으로 잡고 유리잔에 맥주를 따라 시원하게 마시도록 하는 지금 여기의 이 갈색 원통 모양의 페트병은 "실존"하는 것.
고독사(125.188)2024-08-02 00:31:00
답글
4. 175님의 댓글에 따라서 '본질은 운명', '실존은 자유 혹은 가능성.' =>니체
고독사(125.188)2024-08-02 00:35:00
답글
5. 하이데거도 별반 다를 게 없음.
존재: 거기 내던져진 것.
현존재: 거기 내던져진 자신의 운명을 염려하며ㅡ존재의 돌파로서ㅡ어떤 가능성을 기획하는 것.
고독사(125.188)2024-08-02 00:37:00
답글
6. 그러니 그런 상태는 이미 존재(전체성=동일성)를 넘어선 '존재자(나머지들)'의 가능성(무한)인 것=>레비나스.
고독사(125.188)2024-08-02 00:40:00
답글
6.1. 그래서 존재자는 전체에 포획당하지 않는 '영원한 타자'인 것.(=오직 가능성으로서 존재자<=칸트의 주체.)
고독사(125.188)2024-08-02 00:43:00
답글
설명을 해달래서 설명하고 있는 건데, 요청자가 그만 하라면 그만해야지요.
고독사(125.188)2024-08-02 00:45:00
답글
알림 소리 때문에 잠 다 달아나서 그렇슴다 마음에 상처가 됐다면 죄송함다 - dc App
익명(58.29)2024-08-02 00:48:00
답글
괜찮습니다. 얼른 다시 주무세요. 잠을 깨워서 미안해요.(나 때문에 잠을 깨서 밤잠을 설치는 바람에 출근에 지장이 생긴다면, 그 일당을 벌어 사는 사람에겐 생존의 문제인 것)
고대부터 중세까지, 철학자들은 여러 개체들을 규정하는 유형 내지는 필요충준적 속성, 특징이 실재한다고 생각했음. 여기서 개체란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식하는 개별 사물, 즉 노트북, 인간, 자동차.. 이런 하나의 단위로 인식되는 사물들을 말함. 철학자들은 우리가 여러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있는데 그들을 모두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가진 공통점
이 있다고 생각한거임. 그리고 그 공통점은 감각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추론을 반복한 끝에 알게된다고 생각했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그런식으로 진행됨. 정의란 무엇인가? 이렇게 소크라테스가 물어서 누군가가 '강자의 이득이다' 라고 말하면 그게 왜 잘못된 정의인지 개별적인 사례를 언급해서 논박하는 방식으로 완전한 정의를 얻게됨.
그렇게 얻어낸 정의가 곧 여러 개별 현상, 개별 사물들에 공통된 특징 내지는 필요충분적 속성이 되는거임. 이런 것을 본질이라고 부르지. 여럿에 공통되면서, 그 여럿을 어떤 유형이나 타입으로 묶어주는 것
현대인들은 그렇게 얻어낸 본질에 대한 관념들이 우리 정신 안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고대 철학자들은 그럼 그런 본질이 괜히 주어졌을리가 없다고 생각한거임. 본질이 정신 독립적으로 실존하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개별적 사물을 하나의 유형에 포섭할 수 있냐? 이런 논리지
그런데 결국 사물의 본질 같은건 결국 우리의 정신안에만 있는 관념이라는 입장이 근대철학자들에 이르러서 거의 통념이 되고 사트르트는 그 이후에 태어난 인간임. 그래서 사르트는 그런 역사에 의거해 말하는거임.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사물을 어떤 타입이나 유형으로 묶어버리고 제한해버리는 본질은 실재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은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 본질은
우리가 결정한다! 이게 실존주의의 모토임. 감히 이렇다 저렇다 규정하고 한정짓지 말아라. 우리의 존재는 우리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이게 그들의 논리
고대 철학자들의 논리처럼 본질이 실존에 앞서서 존재하고, 실존은 그 본질에 끼워맞춰지는 것이라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행동, 생각, 가져야 할 취향과 직업. 이런 것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본질로써 규정되어 있겠지. 실존주의는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함. 우리가 선택하는거지 정체성을
그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면 누가 알아 듣겠소 - dc App
역사적 맥락에 그 의미를 상당수 의존하는 문장이라서 어쩔 수 없음. 또 짧게 설명하려면 철학 개념들을 함축적으로 써야되는데 그럼 쉬운 설명이 아님. '본질이 실재한다', '사물들의 생성 이전에 본질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 못할꺼아님
그렇게 말하니까 오히려 알아듣겠는데? 본질이 실존을 앞설 수는 없냐? - dc App
본질이 실재하냐 / 실재하지 않느냐. 이것부터 답을 해야 하는거임. 관념으로써의 본질에 대응하는 어떤 무언가가 물질세계에 있을까?
그래 마음이 본질이고 신체가 실존 아니냐 근데 마음이 더 앞서지 어떻게 신체가 더 앞서냐? - dc App
예컨데 사람의 본질이 이성이라고 하면, 이성이라는 것에 대응하는 것이 우리 정신 바깥에 있음? 다른 말로, 실재함?
그게 신체 아니냐 신체가 나를 건강하게도 만들고 타락하게도 만들잖아 근데 신체가 아니라 마음이 더 먼저라고 - dc App
마음이 본질이라는 게 무슨 말임. 본질은 어떤 대상의 유형 내지는 필요충분적 특징을 뜻함. 마음이 본질이다? 마음이 유형이라는 것임? 무엇의 유형임? 내 생각에 일상적 의미에서는 뭔가 핵심적이고 중요한 특징을 본질이라고 말하는데 철학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본질을 말하지 않음
마음이 앞선다는 것은 또 무슨 말임. 마음이 없으면 신체가 없다는 존재적 의존을 말하는건가? 그리고 건강과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개념이 왜 나오는거임?
훗 병신 - dc App
너가 철학적 문장을 이해하고 싶으면 철학에서 다루는 개념을 받아들여야함. 일상적 의미로 철학적 진술을 이해하려고 하니까 호환이 안되는거임. 저 문장은 아무생각 없이 쓰인 문장이 아님. 내 설명이 길어진 것도 철학 개념응 설명하기 위함임
아무튼 나는 너에게 설명해주려 했음. 너는 수고에 병신이라고 화답했으니 대화는 여기까지
노력은 가상하나 너는 개똥철학자다 !! - dc App
본질 : 무엇인가에 원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속성 혹은 숙명, 실존 : 무엇인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
과거에는 본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자는 앉는데 써야하고, 칼은 베는데 써야하죠. 그래서 국수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국수집 사장이 되는 것이고,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는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분제가 합리화 되는 것이죠. 하지만 사람은 타고난 숙명을 넘어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실존주의 입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카페에서 일하는 웨이터가 앞치마를 두르고 서빙을 하고 있지만 퇴근하고 나면 그는 웨이터가 아니라 낚시꾼이 될 수도 있고 소설가가 될 수도 있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의자를 주로 앉는데 사용하기는 하지만 받침대로 쓰기도 하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기도 합니다. 사람처럼 사물 또한 그 가능성은 본질을 넘어서 무궁무진 할 수도 있죠. 혹시 쿵푸팬더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셨나 모르겠는데 주인공 포의 아버지는 국수집 사장입니다. 아들에게 항상 국수 얘기만 하죠. 너의 핏줄 속에는 국수 육수가 흐르고 있다. 우리의 인생은 국수라면서 말합니다. 하지만 포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거부하고 쿵푸 마스터가 되죠.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명제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쉽게 쓰려고 본질과 실존에 관하여 너무 단순하게 제가 퉁쳐버린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도 무난한 정도인 것이지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보시는게 맞습니다.
위에 116.45님이 쓰신게 더 정확합니다.
사르트르j.p.sartre의 주장입니다. 말 그대로이며, 별 심오한 뜻은 없습니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자기자신을 의식하는 인간이라는 대자존재가 사물자체인 즉자존재와 본디 분리되어 있어서 끊임없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으므로 즉자존재에 스스로를 투사하는 모험을 감행하는데, 이 모험의 주체로서 대자존재는 이미 자유를 보장받고, 그 자유를 스스로
실행하는 데서 사물자체인 즉자존재보다 먼저 활동한다 쯤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앞서 116님이 말씀하신 고대 철학에서 유genos에 맞서는 종eidos(aristotle.)의 경우나 칸트가 말하는 대상을 마주한 감성(=감각)적 인식주체로서 인간존재인 나, 니체가 운명에 맞서서 '삶이여 다시 한 번!'이라고 외치는 권력의지의 행위자로서 나,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의 우월성으로서 현존재, 레비나스가 말하는 존재에서 존재자로, 메를로-퐁티의 신체로서 우선 활동하는생명 등등이 모두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과 흡사하거나 동일합니다.
*1. 대자존재:(마주할-대) 스스로 대상을 마주하는 능력을 지닌 존재. 즉자존재: 스스로 거기 있기만(머물기만) 하여 대자존재에게 발견되길 바라는 존재.
2. 인(간)류=>인류에 속한 인간(그러나 이 인간의 특질은 작은 것 또는 낱낱의 형상들eidos로서 존재on나 본질ousia에 앞서서 드러난다) 혹은 개인.
3. 지금 여기 내 눈 앞에는 맥주병이 있다. 그 맥주병의 모양이 원뿔 모양인지 원통 모양인지ㅡ지금 여기에 없는ㅡ너는 알 수 없다. 맥주병의 색깔이 투명에 가까운 하얀색인지 갈색인지 흑갈색인지도 너는 알지 못한다. 맥주병 안에 든 게 맥주가 아니고 나의 오줌이라면 그걸 맥주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3.1. 우리는 맥주를 담은 병을 맥주병이라 하고 세상의 맥주병 모양은 흡사하므로 맥주병의 본질을 상상 속에서(뇌내에서) 재현할 수 있겠지만, 그게 정말로 맥주가 담긴 유리나 PET 재질로 된 병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3.1.1. 여기서 너의 뇌내 속 맥주병은 '본질', 내가 한 손으로 잡고 유리잔에 맥주를 따라 시원하게 마시도록 하는 지금 여기의 이 갈색 원통 모양의 페트병은 "실존"하는 것.
4. 175님의 댓글에 따라서 '본질은 운명', '실존은 자유 혹은 가능성.' =>니체
5. 하이데거도 별반 다를 게 없음. 존재: 거기 내던져진 것. 현존재: 거기 내던져진 자신의 운명을 염려하며ㅡ존재의 돌파로서ㅡ어떤 가능성을 기획하는 것.
6. 그러니 그런 상태는 이미 존재(전체성=동일성)를 넘어선 '존재자(나머지들)'의 가능성(무한)인 것=>레비나스.
6.1. 그래서 존재자는 전체에 포획당하지 않는 '영원한 타자'인 것.(=오직 가능성으로서 존재자<=칸트의 주체.)
설명을 해달래서 설명하고 있는 건데, 요청자가 그만 하라면 그만해야지요.
알림 소리 때문에 잠 다 달아나서 그렇슴다 마음에 상처가 됐다면 죄송함다 - dc App
괜찮습니다. 얼른 다시 주무세요. 잠을 깨워서 미안해요.(나 때문에 잠을 깨서 밤잠을 설치는 바람에 출근에 지장이 생긴다면, 그 일당을 벌어 사는 사람에겐 생존의 문제인 것)
작성자 병신
ㄹㅇ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