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정은 내가 나댈 수가 없고, 국내에선 최근까지도 장정일 씨(그의 공식 직함은 한국문단 시인이자 문예인인데 나는 이제 그를 사상가라 부르기로 한다: 사상가는 비전공자이지만 얼마든지 철학사와 철학이론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전문적인 능력이 있다)가 플라톤으로부터 어긋난 인류사상사를 교정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데 그의 한계는 너무나 뻔하다. 플라톤 철학 학위자나 고대철학사가들조차 '이것이 플라톤(철학)이다' 할 만한 구석이 없는 매우 다채롭고 다변적인 옛사람을 오직 풍부한 독서량과 뛰어난 사변능력으로서 그 실체에 다가섰고 다가설 수 있다는 믿음이 나는 오히려 신기하게 여겨진다. 언젠가 장정일 본인은 플라톤의 실체에 다다를 수 있고 이미 닿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후 마주할 것은 수천 년 시간 동안의 수많은 플라톤주의자들의 고정관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시도하지 않으면 세계는 바뀌지 않는 법. 그래서 우리는 사상가를 선구자라 부르기도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