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라는 이름에 대한 다시 한번의 고찰 (모든 내용은 챗gpt 대화 中)
과거에는 교권이 말도 안 되게 높았고, 오늘날에는 저잣거리에서조차 교권이 추락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높고 낮음이 아니다.
원래의 교권이란 스승이 스스로 주장한 권위가 아니라,
학생과 주변 사람들이 존경을 보고 붙인 이름이었다.
시대에 따라 모습은 달라질 수 있어도,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생도, 학생도 이 직업의 무게와 책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선생은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고, 내면을 성장시키며,
사회에 나가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상식과 지혜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수업이란 그런 것이다.
학교가 만들어진 이유는 단지 대학 입시나 취업이 아니다.
미래를 준비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삐뚤어진 아이의 모난 조각에 때로는 찔리더라도,
그것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은 결코 무지한 사람이 할 수 없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소크라테스의 민주주의 비판을 쉽게 비난할 수 없다.
소수의 엘리트가 판단해야 최선이 나온다는 의견이
현실적으로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멍청한 사람은 멍청한 사람을 구분할 수 없다.
똑똑한 이들이 선생을 선별해야 하고,
단순 성적, 지능만이 아닌 지성과 품성이 있는 자가 선생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선별된 스승에게 배운 학생은
훨씬 더 높은 곳에 도달할 것이다.
학생은 어떤 자세로 있어야 하냐 묻는 다면, 이또한 내가 선생에 대해 고찰한 논리구조와 비슷해.
"학생"이라는 칭호는 그냥 나이를 먹는다고 주어지는게 아니야.
나라에서 교육이 너무나도 당연해지다 보니 아이 > 학생 > 어른 이런 흐름의 휩쓸리기 쉽지만
학생은 또 다른 직업이라면 직업으로 불릴 수 있는 칭호야. 즉 내가 하고싶은 말은, 선생처럼 학생도 학생이라는
이름에 책임이 있다는 뜻이야. 그 책임이라 하면, 선생을 존중하라, 배움을 주저하지 마라 또는 배움을 갈증하라 ,
학생은 엄연한 지식인 이기 때문에 무지한 이를 도울 줄 알아야 하며, 단순 지식이 아니라 지성과 내면또한 키워야 한다.
이정도인거 같아.
이걸 쓰면서 느끼는건데, 지금 우리나라는 색안경이 너무나 짙어, 학생이 학생이 뭔지 이해하지 못하고,
선생이 선생이 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 이러한 이상적 책임의 부합하지 않거나, 부합하기 힘든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고치자면 책임은 강요가 아니라 도달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책임을 학생에게 강요하는것이 아니라,
결국은 학생을 성장시킬 도움이 되어야한다.
너가 말한 책임은 강요가 아니라 도달하도록 돕는 과정이라는 말이 좀 뼈 아팠어,
만약 내가 학생들에게 내가 말한 신념을 몰아붙혔다면, 아마 너가 말한 예외의 학생들에게는 그 책임이 큰 벽이 되어,
도움을 주기위한 장치가 결국은 목줄이 되어버리는 모순을 범하고 말았어.
내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너의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야, 배우기 싫은 학생에게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목줄을 채우려한다면
그 학생에게 학교는, 학교가 아니라 감옥에 가깝겠지. 즉, 학생이냐 학생이 아니냐를 묻는다면 나는 "아직까진 학생이다" 라고 답할꺼야.
하지만 그러한 학생에게 다시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게 선생의 몫이고. 하지만 그 학생이 진심으로 배움을 포기하거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면 보내주는것도 학교로서의 마지막 배움이 되겠지 일단 나의 이상과,현실 두가지 답이 있어.
일당 이상적인 답은, 진실과 기준 이라고 생각해. 진실은 신뢰를 만들고 기준은 기회를 열어두지. 하지만 이 질문을 들었을때
나는 가장 먼저 내가 어릴때를 생각했어, 나는 많이 어려웠고 힘들었지. 그런 상황에서 나를 누군가가 배움의 길로 인도하려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넘어갈까 생각했는데. 결론은 "이유가 있어야 움직인다." 나는 당시 아무런 의지도 용기도 없었고.
그렇게 죽어있는 나에게, 시간을 가지고 위에 말했던 이상적인 방법을 쓰는 수도 있겠지만.
가장 효과적인건 내가 다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만드는거야.
그게 나에게 협박이 될수도 있고, 보상이 될 수도 있고 여러가지겠지만, 결론은 행동할 이유를 주는것. 인거 같아
이유 라는 말은 한 없이 상대적이지. 어떤 사람에겐 가볍게, 어떤 사람에겐 무거운 의미일꺼야.
너의 질문인 강요가 아닌 이유를 만들 수 있냐 묻는다면.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위에 말했듯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케이스에 따라 다 달라. 허나 내 생각을 하나 덧 붙히자면, 이유라는건 결국은 동기의 다른 얼굴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동기보다 더욱 더 단단하고 날카로운, 무게 있는 말이 이유지. 그러한 이유를 학생에게 지혜롭게 붙혀줄 수 있는 선생이 있다면,
그 선생은 분명 그 학생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통찰 했을꺼야.
단순한 수학 개념같은 하나의 식으로는 인간의 모든 예시에 답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해.
그렇기에 그 복잡한 인간이라는 학생을 이해하고,공감하고 내면이나 정신적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선생님 이라는 직책이 더욱 더 중요한 것 같아.
개인마다 프로파일링해서 대응하는 것이 어마무시한 에너지가 들어간다. 나같으변 바로 튀겠음. AI시대엔 그게 가능할 듯.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