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영어 문법에서 ‘수동태’ 단원이 유난히 길고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을 보고, 영어가 수동적 문법을 매우 자주 사용하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한국어는 수동태 문법이 없거나 매우 빈약하기 때문에, 능동적인 표현이 주로 쓰이는 언어라고 오해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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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생각엔 이것은 명백한 착각이다. 오히려 현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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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영어에는 “I broke my arm.”(나는 내 팔을 부러뜨렸다라고 직역되는데, 내 팔이 부러졌다 라는 뜻이다)처럼 얼핏 보면 말이 안 되는 문장이 존재한다. 이 문장을 한국어 화자가 처음 들으면 "아니, 자기 팔을 자기가 부러뜨려?" 하고 의아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이처럼 주체와 행위를 명확히 밝히는 표현이 자연스럽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데 가치를 둔다. 내가 미국에서 겪은 경험에 비춰보면, 영어권 사람들은 수동태 표현이 반복될수록 그것을 책임 회피로 간주하고, 특히 공식적 발언에서 남용하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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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반대로, 한국어는 왜 문법적으로 수동태가 거의 없는데도 실제로는 수동적인 말이 난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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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어는 수동태 대신 주어와 목적어를 통째로 생략함으로써, 사실상 책임을 희석시키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회의가 연기되었습니다”, “서류가 누락되었네요”와 같은 표현은 겉으로는 중립적이지만, 실제로는 누가 그랬는지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다. 이런 방식은 영어라면 "Mistakes were made." 같은 비판받는 수동 표현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듣는 사람이 그 뜻을 ‘눈치’로 파악해야 한다는 문화가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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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어는 수동태가 문법적으로는 발달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책임을 지는 쪽이 말을 명확히 해야 성숙하다고 여긴다. 반면 한국어는 수동태 문법이 발달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맥락과 생략을 통해 더욱 교묘하게 책임을 흐리는 언어로 작동한다. 수동적인 말의 남발은 문법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을 어떻게 회피하고 전달하는지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느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