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든 독방이든
만약에 어두운 방안에 처음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보이지
그리고 바로 나오면 그냥 그게 끝임
근데 방안에 오래 있으면
암순응이 되서
처음엔 아무것도 안보이던 방안이
어떤 희미한 윤곽들이 드러남
내면세계가 이런것과 비슷함
내 의식의 초점이 내면으로 향하기 까지
그리고 어떤 특이점에 이르기까지
어떤 시간이나 고통, 압박, 스트레스가 필요함.
대부분의 사람은
깜깜한 방안을 아주 잠깐 몇초씩 왔다갔다하거나
거의 방에 들어가질 않는 경우가 대부분임.
근데 철학을 제대로 할수있게 된 사람들은
어떤 사회나 개인의 환경, 성향, 요건 등이 맞물려서
그 어두운방안에서 특이점을 넘어서버린
사람들이라고 생각함.
적어도 난 그랬음.
굳이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아니어도
책에 완전히 파묻히는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음.
결국 내면의 의식에서
사유라는 정신활동을 가능케하는
여러가지 비가시적인 질료들에 대하여
(원형적인 요소들-언어표상, 도식표상,
그 행간의 내재표상, 표상을 덧입는 동력의 크기,
속도 등등)
대상화하고 관찰할수있는
의식구조 차원의 확장, 배율의 차원간 이동 등이
가능해져야함.
이게 되서 스스로 사유하고 관찰하고
어떤 비가시적인 층위의 보편성, 진리성을 연역했을때
그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라고
불리울만한 그 사유물이
자기 자신이 아닌
외부의 철학사조의 사상, 이론, 저서 등을 통해
발견이 되었을때
이른바 철학적 텍스트를 학습한다는 것의
실질적 순기능이 발동된다고 봄.
그리고 진짜 그 텍스트들을 가이드삼아
내부로 다시 들어가는것.
그러면서 선순환의 사이클이 도는거지.
상술한 방식이 안으로 파고들어
밖으로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며
수직적 통합의 과정을 거친다면
하지만 대부분의 철학을 교수한다는
현대 학문의 시스템은
정반대의 방식이지.
그냥 밖의 피상적인 차원에서만 겉돌다가
자신들이 배우고 떠드는것의 실체가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말그대로 머리속에 배설물만 가득 쌓이게하기 쉬운
그런 방식이라고 봄.
시스템이고 나발이고
철학하게 태어난 인간들은 별 상관없겠지만.
근데 상술한 내용들도 이게 가능한 케이스가 있고
안좋게 흘러간 케이스가 있음.
후자의 경우는 여러가지 사유과정에 개입되는
개인의 정념이나, 지적능력의 한계,
정신질환등을
인지, 통제하지못하는 경우가 다수라서
완전 미쳐버리거나
아무런 논리도 실질도 없는
자신만의 배설물왕국의
통치자, 스승, 예언자, 신같은게 되버리는
안좋은 경우도 많은듯 싶음.
달마여 ?
말씀 감사합니다 - dc App
불친절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