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갤러1(156.146)
1. 이데아는 존재하는 대상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실체이자 본질입니다.
2. 존재 중엔 가시적인 형태가 있는 존재도 있지만, 가시적인 형태가 없는 존재도 있습니다.
3. 존재의 온전한 집합 중, 이 세계에 호환가능하여 투영되는 부분이나 인간의 인지구조적 한계로 인해 인지 가능한 부분 들의 교집합만큼이 인지주체가 대상을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겠죠.
익명(solar5552)2026-01-14 18:38:00
답글
@철갤러1(156.146)
4. 그것을 표상이라고 합니다. 외부에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든, 비가시적이든, 인간이 자신의 마음으로 옮겨온 대상의 원형(이미지, 구조, 텍스트 등)이든, 인간 내면에 떠오르는 감정이든 전부 표상입니다.
5. 즉, 우리는 표상을 통해 대상이란 실존의 부분만큼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인지구조나 세상의 층위적 한계로 인해
익명(solar5552)2026-01-14 1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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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갤러1(156.146)
인지되지 못하는 대상의 온전한 실체를 이데아라고 합니다.
6. 관념이든 감정이든 그것이 어떤 표상(고유한 속성, 매개하는 패턴)으로서 존재하며, 그 대상의 피상적 다양성과 별개로 비가시적 원형으로서 각 개념이 상정하는 일정한 테두리내에서 반복된 유사성 및, 객관적 타당성의 발견됨을 통해 그 존재함을 반증합니다.
익명(solar5552)2026-01-14 18: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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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갤러1(156.146)
7. 말씀하신 본문에서 관념을 걷어내고 실체를 본다라는 표현을 더 상세히 풀어본다면, 1차적으로 대상에 대한 한정적 표상을 형성해 그것을 대상의 실체와 분리 또는 호도된 인지층위를 파괴하고, 표상이 아닌 실체 자체만을 인식한다는 의미같은데 이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인 이상, 인지구조적으로 반드시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익명(solar5552)2026-01-14 18: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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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갤러1(156.146)
인간이 대상을 인식하는 활동을 둘러싼 세상의 고유한 구조 역시 실체를 가로막는 한계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죠.
8. 말씀하신 내용의 맥락을 풀어본다면, 본문에서 적으신 인간의 인지 과정이라는 것은 인간이 완전히 벗어날 수 있으나, 그 양상을 인지하게 되는 그 자체에서 의미가 있겠죠.
익명(solar5552)2026-01-14 18: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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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갤러1(156.146)
결국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해상도가 더 높아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익명(solar5552)2026-01-14 18: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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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갤러1(156.146)
누구나 사람은 자신들이 이해한만큼 세상을 바라봅니다. 이해라는 것은 일종의 보류된 믿음입니다. 내외적 한계로 인해 대상에 대한 해체를 멈추고, 그것이 진행된 현재라는 접합면의 층위위에 머물기로 결정하는 것. 무의식적으로 "난 이쯤에서 그만할래" 라는 선언을 하고 그 층위에서 만족하는거죠.
익명(solar5552)2026-01-14 18: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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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갤러1(156.146)
누군가는 얕은 층위에 머무르면 해상도가 낮은 화질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세상을 커다랗게 뭉뚱그려진 단순한 몇개의 덩어리로 나누어 인식할수밖에 없겠죠. 반면 누구는 해상도가 높으면 상세하고 자세히 자글자글하게 세상을 인식하겠죠.
익명(solar5552)2026-01-14 1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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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반증 아니고 방증 ㅎㅎ 존재는 형상 유무와는 관련 없는 용언가 보군여
철갤러3(156.146)2026-01-14 1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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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갤러1(156.146)
이런 과정이 자기 자신의 인식 구조와, 대상에 대한 탐구를 통해 더 세밀화되면 더 자세히보는것이죠. 단, 사람이 갖는 선택지와 가용범위, 수직적 깊이, 복합성이라는 것이, 자신이 가진 해상도에 비례하기 때문에 전자에 비해서 선택지가 더 많고 대신 복잡할겁니다. 만약 선택지가 정밀하고 많아도 상호 변증, 통합된 하나의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머리만 아프고 피곤
익명(solar5552)2026-01-14 19: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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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해상도가 높은게 낮은거보다 항상 유익한 건가요?
철갤러3(156.146)2026-01-14 19: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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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갤러3(156.146)
한 일상이 되겠죠.
익명(solar5552)2026-01-14 19: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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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갤러3(156.146)
능력이 많아진들 그 능력쓰는게 피곤하고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우면 무슨 소용일까 싶네요
익명(solar5552)2026-01-14 19:05:00
자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알 수 있지요
대올(182.212)2026-01-14 18:00:00
답글
원하는걸 알게되면 하고 싶은걸 시행해보고 싶겠네요
철갤러2(156.146)2026-01-14 18:10:00
질문이 날카롭네 철학은 수단으로 접근해야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함 철학은 그래서 어쩌라고?에 한없이 약함
익명(223.39)2026-01-14 19: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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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위에 댓글다는애들은 철학을 못놓는 상태라 철학이 어쩌구 대충 그럴듯한 말을 하고있는거임
익명(223.39)2026-01-14 19: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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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223.39)
하고 싶은걸 하는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미련이 아니라 정말 원하는거라면
글쓴(156.146)2026-01-14 19: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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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철갤러(156.146)
그치... 근데 지금 보면 뭔가 취미정도의 수준을 넘었다고 봐 노숙하면서 철학을 한다잖아 이건 좀 아니지않냐
익명(223.39)2026-01-14 1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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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철갤러(156.146)
게임을 하고 싶을 수 도 있고 영화를 보고 싶을 수 도 있어 근데 인생 갈아가면서 게임을하고 영화를 보는건 이상한거야 철학은 그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정도로 알아주면 좋을거같아
익명(223.39)2026-01-14 1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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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223.39)
Thank you for ur service
철갤러4(156.146)2026-01-14 1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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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철갤러(156.146)
분명히 철학자들이 철학의 탈출구를 ㅈㄴ만들어놨거든? 근데도 못놓는거야
관념 = idea(이데아, 아이디어) = 실체
현대어 관념이나 아이디어는 마음속에 있는거고, 이데아는 별개로 존재하는것 아닌가요?
@철갤러1(156.146) 1. 이데아는 존재하는 대상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실체이자 본질입니다. 2. 존재 중엔 가시적인 형태가 있는 존재도 있지만, 가시적인 형태가 없는 존재도 있습니다. 3. 존재의 온전한 집합 중, 이 세계에 호환가능하여 투영되는 부분이나 인간의 인지구조적 한계로 인해 인지 가능한 부분 들의 교집합만큼이 인지주체가 대상을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겠죠.
@철갤러1(156.146) 4. 그것을 표상이라고 합니다. 외부에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든, 비가시적이든, 인간이 자신의 마음으로 옮겨온 대상의 원형(이미지, 구조, 텍스트 등)이든, 인간 내면에 떠오르는 감정이든 전부 표상입니다. 5. 즉, 우리는 표상을 통해 대상이란 실존의 부분만큼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인지구조나 세상의 층위적 한계로 인해
@철갤러1(156.146) 인지되지 못하는 대상의 온전한 실체를 이데아라고 합니다. 6. 관념이든 감정이든 그것이 어떤 표상(고유한 속성, 매개하는 패턴)으로서 존재하며, 그 대상의 피상적 다양성과 별개로 비가시적 원형으로서 각 개념이 상정하는 일정한 테두리내에서 반복된 유사성 및, 객관적 타당성의 발견됨을 통해 그 존재함을 반증합니다.
@철갤러1(156.146) 7. 말씀하신 본문에서 관념을 걷어내고 실체를 본다라는 표현을 더 상세히 풀어본다면, 1차적으로 대상에 대한 한정적 표상을 형성해 그것을 대상의 실체와 분리 또는 호도된 인지층위를 파괴하고, 표상이 아닌 실체 자체만을 인식한다는 의미같은데 이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인 이상, 인지구조적으로 반드시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철갤러1(156.146) 인간이 대상을 인식하는 활동을 둘러싼 세상의 고유한 구조 역시 실체를 가로막는 한계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죠. 8. 말씀하신 내용의 맥락을 풀어본다면, 본문에서 적으신 인간의 인지 과정이라는 것은 인간이 완전히 벗어날 수 있으나, 그 양상을 인지하게 되는 그 자체에서 의미가 있겠죠.
@철갤러1(156.146) 결국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해상도가 더 높아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철갤러1(156.146) 누구나 사람은 자신들이 이해한만큼 세상을 바라봅니다. 이해라는 것은 일종의 보류된 믿음입니다. 내외적 한계로 인해 대상에 대한 해체를 멈추고, 그것이 진행된 현재라는 접합면의 층위위에 머물기로 결정하는 것. 무의식적으로 "난 이쯤에서 그만할래" 라는 선언을 하고 그 층위에서 만족하는거죠.
@철갤러1(156.146) 누군가는 얕은 층위에 머무르면 해상도가 낮은 화질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세상을 커다랗게 뭉뚱그려진 단순한 몇개의 덩어리로 나누어 인식할수밖에 없겠죠. 반면 누구는 해상도가 높으면 상세하고 자세히 자글자글하게 세상을 인식하겠죠.
@ㅇㅇ 반증 아니고 방증 ㅎㅎ 존재는 형상 유무와는 관련 없는 용언가 보군여
@철갤러1(156.146) 이런 과정이 자기 자신의 인식 구조와, 대상에 대한 탐구를 통해 더 세밀화되면 더 자세히보는것이죠. 단, 사람이 갖는 선택지와 가용범위, 수직적 깊이, 복합성이라는 것이, 자신이 가진 해상도에 비례하기 때문에 전자에 비해서 선택지가 더 많고 대신 복잡할겁니다. 만약 선택지가 정밀하고 많아도 상호 변증, 통합된 하나의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머리만 아프고 피곤
@ㅇㅇ 해상도가 높은게 낮은거보다 항상 유익한 건가요?
@철갤러3(156.146) 한 일상이 되겠죠.
@철갤러3(156.146) 능력이 많아진들 그 능력쓰는게 피곤하고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우면 무슨 소용일까 싶네요
자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알 수 있지요
원하는걸 알게되면 하고 싶은걸 시행해보고 싶겠네요
질문이 날카롭네 철학은 수단으로 접근해야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함 철학은 그래서 어쩌라고?에 한없이 약함
지금 위에 댓글다는애들은 철학을 못놓는 상태라 철학이 어쩌구 대충 그럴듯한 말을 하고있는거임
@ㅇㅇ(223.39) 하고 싶은걸 하는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미련이 아니라 정말 원하는거라면
@글쓴 철갤러(156.146) 그치... 근데 지금 보면 뭔가 취미정도의 수준을 넘었다고 봐 노숙하면서 철학을 한다잖아 이건 좀 아니지않냐
@글쓴 철갤러(156.146) 게임을 하고 싶을 수 도 있고 영화를 보고 싶을 수 도 있어 근데 인생 갈아가면서 게임을하고 영화를 보는건 이상한거야 철학은 그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정도로 알아주면 좋을거같아
@ㅇㅇ(223.39) Thank you for ur service
@글쓴 철갤러(156.146) 분명히 철학자들이 철학의 탈출구를 ㅈㄴ만들어놨거든? 근데도 못놓는거야
@철갤러4(156.146) 철학을 정 하고싶으면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걸 추천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