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죽음의 공통점으로는 사변성에 있다. 두 개념 다 나 자신이 인식할 수 없으며, 후험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죽음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죽음으로서 삶이 끝나기 때문에이고, 신은 기표로서의 존재할 뿐 그 기의, 즉 진짜 모습은 볼 수 없다. 둘 다 알 수 없는 개념이라는 뜻이다. 즉 신을 믿는다는 것은, 죽음으로 예시로 들었을 때 죽음을 경험할 수 있기에 죽는다라는 뜻이 된다. 즉 종교는 신의 가르침, 죽음의 가르침을 받는 것과 같은 맥락이 됐다. 하지만 신앙심에 의한 선한 행동의 기저를 설명하고자 하면, 그건 논외의 설명이다. 죽음이 선한 행동의 기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아. 하지만, 신의 기의가 죽음이라면, 이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는 것일까? 어짜피 두 개념 다 사변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속의 뜻을 알 수 없다. 이는 즉 가정하여 신의 진짜 모습이 죽음이라면, 사람들은 단체로 자살을 집행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는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알 수도 없는 신의 ‘말’에 따랐기 때문이다. 이는 즉, 신앙이 죽음이였으면 그 의미도 죽음을 뜻하니 죽어야 마땅한 것이다.
사람의 선행은 맹목적인가를 봤을 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이유는 행동의 기저는 가치판단에 의한 선택이다. 이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바뀔 것이다. 그렇기에 선함과 악함에 대하여 말 하는 것은 궤변이다. 그러나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본능으로 인간의 신체에 내재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죄부란 무엇인가. 인간은 경험할 수도 없는 것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한다. 즉, 이는 반대로 말해서 죽음은 가치가 있음을 논증한다. 면죄부로 인해 지옥에 가지 않게끔 하는 행동 등, 죽음 이후를 걱정하는 것, 그것이 논증의 기저다. 그렇기에 신앙심에 의해 그 말을 따르는 것이라면, 이는 곧 사람은 죽어야함을 의미한다. 즉, 신을 믿는 것은, 죽음을 믿는 것과 같다. 죽음에 대한 믿음은, 죽어야함을 얘기한다. 그 이유는 신을 믿으니 신앙심에 신을 따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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