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믿는 행위는 인간의 우월함인가 지능의 역설인가
종교는 진화론적으로 우리가 종에서 분리돼 호모사피엔스로 생각되는 시점부터 존재 했다고 추정한다. 다른 인류보다 지능이 우월했다고 여겨지는 호모 사피엔스가 믿은 초창기의 종교인 애니미즘, 토테미즘,샤머니즘은 당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던 자연현상, 즉 인간의 무지에서 파생된 두려움으로 생겨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는 부족 단위의 생활을 하게 된 인간이 다른 짐승들보다 우월한 지능을 이용해 다른 부족 구성원들을 자신의 노예로써 부리기 위해 자신만이 두려움을 극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식의 세뇌 도구로 사용되었다.
즉 인간의 두려움에서 파생된 이 "믿음"은 권력을 만들었으며 분명한 인간문명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시대를 거듭하며 등장한 조로아스터교는 유일신(빛,불의 신)과 유일신에 반 하는 존재(어둠의 신)과 사후세계, 사후세계에서의 최후 심판 등 지금의 영향력이 가장 큰 기독교의 기반이 되었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파생되었으며, 이슬람 또한 이 종교들과 같은 유일신을 믿는다(알라=야훼=여호와=빛의신)
이 발전이 인류의 종교행위가 지능의 역설이라고 보여질 수 있는 첫 번째 예시이다.
이 종교들은 모두 서아시아,중동에서 발생했으며
성서의 등장인물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이용한 중동의 전쟁과 영토분쟁은 수 세기 간 지속되고 있다.
또한 유대교에서 유일신의 아들이라고 지칭했던 예수라는 인물을 이용한 십자군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죽음은 너무나 많다.
짐승이 기도하는 걸 본 적 있는가?
짐승 또한 같은 종끼리 싸운다. 하지만 그것은 생존의 문제로,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를 죽여야만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본능에 의한 싸움이다.
하지만 인간 자신이 존재하지도 않던 과거와, 실재 했을 지 조차 알 수 없는 글과 구전만을 알고 싸운다.
인간은 기도할 줄 안다. 그 기도가 내일을 만들어주지 않을지라도 내일이 오면 돌아온 오늘에 의미를 부여해 믿음을 굳건히 한다. 과연 이것이 현대에서 옳은 삶의 태도일까.
현대의 인간은 비약적인 과학 발전으로 두려울 일이 별로 없는, 야생보다 비교적 안전한 세상이 되었음에도 종교의 파급력은 놀라울정도이다.
왜 인간은 아직도 종교가 필요할까?
종교의 의미가 두려움에서 위안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인간이 아직도 정복하지 못 한 문제는 죽음과 평화이다. 죽음을 정복하지 못했기에 조로아스터교에서 발생한 사후세계와 최후 심판은 현대인에게로서는 종교를 믿어야 할 이유가 되어준다. 현대 종교인은 사후세계가 있다고 가르치는 교리를 일종의 보험으로 작용되게 이용한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지라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믿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보험이 맞다.
현대인은 이 보험으로 위안을 얻으며, 성서에 적힌 신의 사자나 신의 말에서 또한 위안을 얻는다.
그렇다면 종교는 더이상 지능의 우월함이 아닌
시대에 뒤쳐진 원숭이의 믿음이 되는걸까?
나의 대답은 "예"이다. 성경에 쓰인 "기적"들을 살펴보자. 모세는 홍해를 갈랐다. 예수는 나병환자를 완치시키고 죽은지 4일된 자를 살리고, 장애인을 비장애인으로 고치고, 실명된 자를 보게 한다.
이것은 개신교 신자들이 믿는 예수가 여호와의 외아들(또는 본인)이라고 믿는 이유이다. 오직 신만이 이런 초자연적 현상들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기적을 믿는것과 믿지 않는 것 중 합리적인 하나를 고르는 것이 합당하다.
일단 현대에 사는 우리는 죽은 자를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심폐기능이 정지하고 뇌의 신호가 멈추면, 우리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제 종교인들의 주장을 보자.
종교인들은 "기록으로 쓰여있잖아! 너희 조선왕조실록도 믿잖아?"라는 주장을 한다.
일반적으로 주장을 할 때, 주장을 한 사람은 그것을 입증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현대인인 우리는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기적들을 보면, 이야기들 뿐이다. 현대에서도 죽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반면에, 현대에는 죽은 지 4일 된 자가 부활하는 일은 없다.
증명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느쪽을 믿는게 합당할까? 당연히 "그딴건 없다"는 쪽이다.
그러나 상술했듯, 종교는 인류에게 비약적인 발전에 이바지 한 사실이 있다. 종교에 대한 의심으로 천문학이 발달하고, 인류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생태를 알 수 있었다.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의 정신적 나약함을 알며, 역사를 기억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결국 종교란 공동체에서 피할 수 없던 인류와 자연의 싸움이자 인류와 인류 사이의 갈등과 상호 발전의 매개체였다.
현대의 인간은 비약적인 과학 발전으로 두려울 일이 별로 없는, 야생보다 비교적 안전한 세상이 되었음에도 종교의 파급력은 놀라울정도이다.
왜 인간은 아직도 종교가 필요할까?
종교의 의미가 두려움에서 위안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인간이 아직도 정복하지 못 한 문제는 죽음과 평화이다. 죽음을 정복하지 못했기에 조로아스터교에서 발생한 사후세계와 최후 심판은 현대인에게로서는 종교를 믿어야 할 이유가 되어준다. 현대 종교인은 사후세계가 있다고 가르치는 교리를 일종의 보험으로 작용되게 이용한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지라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믿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보험이 맞다.
현대인은 이 보험으로 위안을 얻으며, 성서에 적힌 신의 사자나 신의 말에서 또한 위안을 얻는다.
그렇다면 종교는 더이상 지능의 우월함이 아닌
시대에 뒤쳐진 원숭이의 믿음이 되는걸까?
나의 대답은 "예"이다. 성경에 쓰인 "기적"들을 살펴보자. 모세는 홍해를 갈랐다. 예수는 나병환자를 완치시키고 죽은지 4일된 자를 살리고, 장애인을 비장애인으로 고치고, 실명된 자를 보게 한다.
이것은 개신교 신자들이 믿는 예수가 여호와의 외아들(또는 본인)이라고 믿는 이유이다. 오직 신만이 이런 초자연적 현상들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기적을 믿는것과 믿지 않는 것 중 합리적인 하나를 고르는 것이 합당하다.
일단 현대에 사는 우리는 죽은 자를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심폐기능이 정지하고 뇌의 신호가 멈추면, 우리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제 종교인들의 주장을 보자.
종교인들은 "기록으로 쓰여있잖아! 너희 조선왕조실록도 믿잖아?"라는 주장을 한다.
일반적으로 주장을 할 때, 주장을 한 사람은 그것을 입증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현대인인 우리는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기적들을 보면, 이야기들 뿐이다. 현대에서도 죽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반면에, 현대에는 죽은 지 4일 된 자가 부활하는 일은 없다.
증명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느쪽을 믿는게 합당할까? 당연히 "그딴건 없다"는 쪽이다.
그러나 상술했듯, 종교는 인류에게 비약적인 발전에 이바지 한 사실이 있다. 종교에 대한 의심으로 천문학이 발달하고, 인류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생태를 알 수 있었다.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의 정신적 나약함을 알며, 역사를 기억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결국 종교란 공동체에서 피할 수 없던 인류와 자연의 싸움이자 인류와 인류 사이의 갈등과 상호 발전의 매개체였다.
본인은 똑똑하지도 않고 그냥 필자의 주장이며, 졸린상태라 말이 안맞거나 가독성 모자라도 이해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dc official App
아시발 복붙 한번 더했네 - dc App
과학이란 이름의 종교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