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그게 잘 작동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또 무어임?


게다가 그것이 실제로 삶의 아름답거나 예술적인 경지, 그 속에 있으면 무한하지는 않아도 이 정도면 삶을 즐기기엔 충분하다고 느낌.



하지만 결국엔 그 무한하지는 않은데, 충분함을 너무 지연하다가 그것을 무한성과 착각해버리는 것- 즉, 죽음을 멋대로 유예하다가 개념을 짓이겨버리는 게 문제인가?


결국엔 개념을 왜 짓이기는가? 그 까닭은 결국 그것이 실제로 꽃핀 실체를 보고 즐기고 실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그건 마치 젊은 나이에 스러진 천재와도 같아서 그의 잠재된 모티프는 있어도 그것이 실제 무엇이 되고 어떠한 깨달음을 주는지는 모르니까- 너무 빨리 스러지고 만 , 우리가 무언가를 깨닫기 전에.


그래서 무의미한.



결국 계몽보다 죽음에 대한 문제를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이고.


즉, 풀기 쉬운 방식에 대해서 너무나 빠르고 아쉽게 스러졌기에 ..


하지만 그 자체로 이미 현실은 나를 통과했고,


결국엔 실질적으로 계몽보다 죽음 문제가 더 앞서 있었다는 점은 그야말로 실체이며 실증이다. 하지만 그 실증을 못 받아들이고 계속 충분함을 유예시키면 개념의 짓이겨짐이 발생함.


충분함과 무한을 헷갈리고, 유럽 문화가 미국 문화가 되고.


개념을 짓이기는 이유는 너무나 많은 역사를 겪은 시한부 이후의 존재가, 사실상 새로이 시작할 때 그것이 과거에 했던 어느 것인지 망각한 후, 해당 좌표의 것을 "짓이기고" 새로 지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충분함을 무한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발생.


전통을 부숴버려야만 한다? 짓이김을 멈추기 위해선?


중산층에 대한 신화. 


너가 형성된 요소가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믿음?


잘못된 선택을 올바르게 만드려는 시도.


문제는, 시행적 제도. 사회? 


의미없음. 어차피 나는 모든 걸 참조하려고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