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자가 계속 '강함'의 기준을 진공 상태의 고립으로만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비범주의가 말하는 주권의 실전성을 오해한 거임. 내 입장을 문단별로 정리해보겠음


우선 자아통치가 특정 환경에서만 작동한다고 해서 그걸 '조건에 맞춰진 약함'이라고 단정하는 건 논리적 비약임. 비범주의에서 아나키즘 사회가 필요한 이유는 비범인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주권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임. 기존 사회의 법과 도덕은 주권자의 에너지를 외부 권위와의 소모전에 낭비하게 만듦. 반면 아나키즘 사회는 그런 노이즈를 제거해서, 주권자가 온전히 자기 극복과 가치 창조에만 에너지를 쏟게 해주는 최적의 전장임. 환경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강함을 가장 선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무대를 스스로 선택하고 구축하는 것 자체가 이미 압도적인 주권 행사의 결과물임.


두 번째로 도구와 필수조건의 관계를 너무 이분법적으로 보고 있음. 도구라고 해서 그것 없이도 완벽해야 한다는 건 실전적이지 못한 발상임. 맨손으로도 땅을 팔 수는 있지만(영향), 거대한 성을 쌓으려면 굴착기라는 도구가 필수적인 것과 같음. 자아통치는 고립된 섬에서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비범주의가 지향하는 사회적 수준의 자아통치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내 주권을 잃지 않는 고차원적 상태를 말함. 이 완성된 상태를 구현하기 위해 아나키즘 사회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지, 사회가 없어서 자아통치를 '못 하는' 게 아님. 도구를 통해 실현의 밀도를 높이는 걸 귀속이라 부를 순 없음.


마지막으로 이 관계는 '규범'이 아니라 '생태'의 문제임. 사자가 살기 위해 초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사자가 초원의 노예는 아닌 것과 같음. 사자는 초원이라는 환경에서 자신의 포식자적 본성을 가장 잘 실현할 뿐임. 비범인에게 아나키즘 사회는 "이렇게 살아라"라고 강요하는 틀이 아니라, 외부의 억압적 압력이 제거된 순수한 자유 공간일 뿐임. 이 공간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체제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이고 능동적인 투쟁임. 따라서 이건 약함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조건마저 스스로 결정하고 사수하려는 궁극의 강함이라고 봐야 함.


결론적으로 비범인이 아나키즘 사회를 필요로 하는 건 환경에 의존하는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주권 행사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자기 통제의 정밀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주권적 결단이자 필연적인 선택임.


무엇보다, 생각해보셈. 만약 너가 지금부터 삼인일아 방법론을 사용한다면, 과연 이 사회에서 삼인일아 방법론을 유지하는게 쉬울까? 스스로 만들어낸 우상 인격은 끊임없이 외부에서 주입된 영향을 받아 결국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가 되버릴 것이고, 본성 인격은 동등한 인격이 아니라 억압해야할 대상이 될 것이며, 초인 인격은 규범과 도덕 같은 가치가 있는 현재 사회에서 유지하기 매우 어려울 것임. 추가로, 외부의 권위를 부정하는것을 사회는 용납하지 않을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