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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은 근원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이 뒤늦게 발견하고 이름 붙인 질서다


선과 악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가 서 있는 판단의 땅을 무너뜨리게 된다.

왜냐하면 “선악은 없다”는 말 자체가 이미 하나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선악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폭력과 배신, 학대와 기만을 비판한다면,그 는 입으로는 선악의 부재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선악의 기준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선악이 없다면 비난도 없다. 규탄도 없다. 정의도 없다. 오직 취향과 힘의 충돌만 남는다.
그 상태에서 “그건 틀렸다”, “그건 해선 안 된다”라는 말은 더 이상 논리적 무게를 가질 수 없다.


선악 부정론의 가장 큰 문제는, 도덕 판단의 근거를 전부 손익계산으로 환원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손익계산만으로는 도덕을 세울 수 없다.
처벌받지 않으면 살인은 괜찮은가. 들키지 않으면 배신은 문제가 아닌가. 권력을 쥔 자가 법을 바꾸면 악도 선이 되는가.
이런 결론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도, 어떤 행위가 유리하냐 아니냐와 별개로

옳으냐 그르냐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무고한 약자를 고문하는 행위가 잘못된 이유는 사회가 싫어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잘못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미 선과 악은 단순한 합의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문화마다 기준이 다르니 객관적 선악은 없다”는 주장도 성립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수학 실력이 다르다고 해서 2 더하기 2가 4라는 사실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인식의 차이는 대상의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노예제, 고문, 여성 차별이 정당화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선악은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인간이 선을 자주 오인하고 악을 제도화해 왔다는 증거에 가깝다.
다시 말해, 기준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기준을 어긴 것이다.


잘못된 판결이 존재한다고 해서 정의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 선악이 없다는 말도 자주 나오지만, 그것 역시 범주를 혼동한 주장이다. 자연은 사실의 영역이고, 도덕은 당위의 영역이다.
사자가 영양을 잡아먹는 것은 도덕적 악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평가하고 통제할 수 있는 존재다. 자연 속에 폭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간 사회에서도 폭력이 정당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위대함은 자연 상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규범적 질서를 세우는 데 있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을 수 있다는 사실과, 그러므로 그래도 된다는 판단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선악을 부정하면 현실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책임 개념이다.
선악이 없다면 죄책도 없다. 죄책이 없다면 반성도 없다. 반성이 없다면 교정도 없다. 피해자는 단지 불운한 약자가 되고
가해자는 단지 다른 선택을 한 존재가 된다. 그렇게 되면 정의는 사라지고 사회는 결국 힘과 계산, 선전과 이익의 논리로만 움직이게 된다
약자는 보호받지 못하고, 권력자는 더 쉽게 자기 행위를 합리화한다. “나는 내 이익을 추구했을 뿐”이라는 말 한마디로 수많은 악행이 세탁된다.
|선악 부정론은 얼핏 냉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악인에게 가장 편리한 철학이다.


인간이 선을 완벽히 실천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선의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배신을 수치로 여기고, 희생과 용기를 숭고하게 여긴다는 사실은
우리 안에 단순한 생존 본능을 넘어서는 도덕 감각이 있다는 증거다. 사람은 손해를 보면서도 진실을 말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약자를 구하며,
아무 보상 없이도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자신을 던진다. 이런 행동을 단순한 유전자 전략이나 사회적 학습으로만 설명하려는 시도는
인간 정신의 가장 높은 차원을 지나치게 빈약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선과 악은 유행처럼 바뀌는 사회적 취향이 아니다. 인간이 불완전하게나마 접근하려는 객관적 질서다.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왜곡하고, 오인하고, 배반한다. 그러나 왜곡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원형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짓이 존재한다는 것은 진실의 기준이 있다는 뜻이고, 불의가 존재한다는 것은 정의의 기준이 있다는 뜻이며,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선이 단지 환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선과 악은 인간이 마음대로 발명한 장난감이 아니다. 인간은 그것을 만들었다기보다, 늦게 깨닫고 자주 거스르며,
그럼에도 끝내 외면할 수 없는 기준으로 마주해 온 것이다. 선악을 지워버리면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 책임, 정의, 존엄이 함께 무너진다.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힘이 아니라 정당성이고
정당성의 뿌리에는 결국 선과 악의 객관적 구분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