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소통하는 방법 - 대승불교 마이너 갤러리

<부처님과 소통하는 방법>1. 살아있는 부처님과 직접 만나는것   친견 이라고 한다. 경전에 보면 많이 나온다.  제자들이나 아니면 다른 외도들이 부처님과 만나서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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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대왕 2025.08.22 21:20:49


<부처님과 소통하는 방법>


1. 살아있는 부처님과 직접 만나는것  

 친견 이라고 한다. 경전에 보면 많이 나온다. 

 제자들이나 아니면 다른 외도들이 부처님과 만나서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렇게 살아있는 부처님과 직접 만나는 거를 '친견' 이라고 하는 거다. 


유전: 니는 나에게 늘 악귀에 걸려서 증상만으로 지옥간다고 하는데, 위의 글처럼 니가 현재 살아있는 부처님이라고 모시고 있는 자가 악귀에 홀린 것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증명하냐? 그냥 니 감으로 그렇다는거냐? 그리고 살아있는 부처님이 니 말대로는 매일 악귀와 싸우느라 하산을 못하고 있나본데, 언제 하산해서 세상을 구원할 거냐? 세상에 나오지 않더라도 누구라고는 알려줘야 니가 그토록 강조하는 살아있는 부처님을 찾아가 구원받을 사람들이 많아질텐데 그 살아있는 부처가 누군지 밝혀라. 인연이 있어야 만나게 된다는 ㄱㅅㄹ는 하지 말고. 매일 우리 집에 황금 돼지가 있다고 공갈치는 애들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냐?


불경 8만4천 법문 중에 악귀 때문에 부처가 할 일을 못한다는 이야기는 본적도 들은적도 없다. ㅎㅎ
불경에서는 마왕도 늘 부처님 앞에 공손하게 설법을 듣는다. 이런 경전이 수 없이 많은데 닌 경전도 잘 읽지 않고 천지팔양신주경과 장수멸죄경만 강조해 왔으니 알 턱이 없지. 요즘 유저들이 니보고 불교에 대해 너무 무식하다고 하도 난리를 치니까 최근 중요 경전 위주로 읽는거 같기는 하더라. 하여튼 악귀에 쩔쩔매는 니 살아있는 부처는 완전히 3류도 아니고 초딩 개그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니가 현실에서 실제로 모시고 있는 살아 있는 부처가 막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한다더냐?


2. 기도 삼매에서 부처님과 만남. 

 이것도 역시 친견 이긴 한데. 

 단어는 같이 써도 느낌은 약간 다르지. 

 살아있는 부처님이 안계실때 이렇게 기도 속에서 만나는 것인데. 

 이게 기도하는사람이 수준이 되어야 가능한 얘기 

 승려들도 대부분은 안됨.  


  비록 부처님을 만났다고 해도. 여기는 가짜가 존재할 수 있음. 

 즉 기도 삼매에서 보여지는 건 꼭 부처님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하고.

 악귀가 부처님 형태로 보여지기도 하고 다양함. 

 근데 어설프게 부처님 봤다고 하는 이들 중에 악귀들이 속이는거에 속아서 

 자신이 부처님 친견 했다고 그러는 이들 많음


 진위 여부를 판단하려면 깨달으신 스님께 확인해야됨.


 그리고 이렇게 삼매에서 만날때는 꼭 부처님의 모습으로 보여지는게 아니고

 본인과 친근한 다른이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 스승님 등등.

근데 삼매에서 만나서 대화를 하거나 행동이나 그런걸로 부처님인것을 짐작할 수 있음.


 대부분 조상님 만났다고 할때도 부처님일 경우도 많음. . 


유전: 기도 삼매로 부처를 만나도 그게 부처인지 악귀인지 확인이 안되니까 깨달으신 스님께 확인해야 된다고 되어 있는데 그게 니가 모시고 있는 살아있는 부처님이라는 거 아니냐? 깨달았다는 것은 완전한 정각을 이룬 것을 뜻하고 곧 부처의 경지다. 깨달은 고승들이 한국에 많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열반하셨고 니가 모시고 있는 살아있는 부처가 악귀 때문에 전면에 나설 수 없다면 다른 깨달은 고승이라도 소개해야지 않겠냐? 그런 것도 없다면 오직 니를 통해서만 확인 받을 수 있다는 뜻인데 이런게 원래 종교로 장사하는 애들 대표적인 기만질에 해당되는 거다. 여기 좋은 약이 있는데 이건 오직 나에게만 사야 병이 낫는다는 식의 길거리 약장수 멘트 같은 것이지.


3. 꿈에서 부처님과 만남

 여기서 부터는 친견이라고 안하고. 선몽 이라고 한다. 

 이쪽도 역시 기도 삼매에서 보는 것과 비슷하지만

 비율은 더 많고. 


 역시 가짜일 확률도 더 높다. 


 깨달으신 스님의 진위 판단 필요. 

  본인이 깨달았으면 뭐 본인이 직접 하면 되고. 


유전: 본인이 깨달았으면 본인이 한다고? ㅎㅎㅎ 정각을 깨달으면 곧 부처의 경지인데 그런 경지가 너무 흔해 빠진 것처럼 말한다. 정각을 깨닫지 못하면 그 바로 밑의 경지가 등각인데 등각도 부처님 지위에 들지만 경전에 분명히 밝게 못본다고 설법되어 있고 그래서 정각과 등각이 구분되어 설법되어 있다. 하여튼 세조 니는 본인도 깨달았다는 것이냐? 니가 늘 말하는 방식은 오직 니가 아닌 다른 자들이 말하는 모든 것이 다 악귀에 빠져서 그런다고 말하는데 이미 열반에 든 고승들 빼고 악귀에 빠지지 않은 깨달은 자가 누구인지 말해 본적은 있냐? 내가 본 기억으로는 거의 없는 거 같다. 그저 니를 통해서만 니가 모시고 있는 살아있는 부처님을 그것도 인연이 되는 자만 받아들인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 아니면 아니라고 변명해 보라고.


4. 천이통 으로 부처님의 소리를 들음. 

 이 수준이 되면 부처님, 보살님, 천신, 모든 존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음. 

 그러면 부처님께 어떤 질문을 하면 부처님이 답을 해주심. 

 그리고 영가와도 대화가 가능함. 

 

그런데 바로 앞에 사람이 있는것 하고는 약간 다른 느낌인지라. 

 항상 그런건 아니고. 천이통도 때에 따라서 잘 될때 안될때가 있음. 

 라디오가 성능 좋을때 아닐때 있는 것처럼. 

 그래서 이 천이통이 되는 사람은 항상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이 능력이 유지 됨. 


유전: 진짜 유치원 수준의 앎이다. 검색해서 찾아보면 바로 알게 되는게 작가 이외수님이 달의 지성체와 천이통으로 교신한다고 기사가 나온지 20년 정도 됐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채널링 하는 애들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도 어렵지. 피닉스 저널 이라는 전문 소식지는 꽤 유명하고 국내 채널링 사이트나 카페도 지금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 채널링 이라는 것 자체가 서양의 영매에 해당되고 무당들도 자기가 모시고 있는 신과 바로바로 교신을 하지. 그런데 니가 늘 주장하는대로 악귀가 부처님 행세를 하고 있을 경우가 많다면서 갑자기 천이통이 되면 부처님 소리를 듣는다고? 천이통을 라디오로 빗대어 잘 될때가 있고 안될 때가 있다고 니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무당들도 그런 영빨을 잘 받겠다고 다시 산 깊은 곳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기도하는 거다. 과거 깨달은 고승들 앞에서 천이통으로 부처님 만난다고 하면 바로 몽둥이로 내려쳤다. 그러한 상을 없애야 한다고 나온 말이 "부처가 나오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가 나오면 조사를 죽이라"고 한 것이 임제스님의 "살불살조"다. 나는 살불살조 라는 화두 방편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너무 지나치게 과격한 표현이라고 비판을 여러 번 했는데 니 같은 작자들이 당나라 때 얼마나 많았으면 저렇게까지 말했을까 이해가 될 정도다. 하여튼 니가 무당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말해 보라고. 


----------인용문과 해당 글 비판 끝.



유전: 중국의 6조 혜능스님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스님이 마조스님이고 한국 조계종은 마조스님과 그 마조스님 법맥 밑으로 깨달았다는 스님들을 조사로 모시고 있다. 아래 돈오입도요문론은 마조스님이 직접 인가한 것이고 성철스님도 이 돈요입도요문론 전체를 대중에게 가르쳤다. 핵심은 바로, 따로이 보는 것 없이 듣는 것 없이 선지식 지혜가 나와야 한다는 것으로 어떠한 상에 의해서 나온 것은 다 마구니로 취급한다.


(돈오입도요문론 - 실상반야를 보는 상태)

"몸과 마음은 무엇으로써 보는 것입니까, 눈으로 봅니까, 귀로 봅니까, 몸과 마음 등으로 봅니까?"

"보는 것은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느니라."

"이미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을진댄 다시 어떻게 보는 것입니까?"

"이것은 자성(自性)으로 보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담연히 비고 고요하므로, 비고 고요한 본체(體) 가운데서 이 보는 것[見]이 능히 나느니라."


"다만 청정의 본체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이 보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비유하면 밝은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일체 모양을 볼수 있는 것과 같으니, 왜냐하면 밝은 거울이 무심이기 때문이니라. 배우는 사람이 만약 마음에 물든바 없어 망심이 나지 아니하고 주관과 객관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자연히 청정한 것이니, 청정한 까닭에 능히 이 보는 것이 생겨나느니라. [법구경]에 이르기를 '필경의 공 가운데서 불꽃 일듯 건립함이 선지식이다' 고 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