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글의 문제는 불교를 말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불교 용어의 권위만 빌려 자기 위계를 세우고 있다는 데 있음.

스스로 말하는 바는 거의 없고 더 높다, 더 위다, 더 나아간다 같은 공허한 비교어만 반복함. 그런데 정작 왜 더 높은지, 무엇을 기준으로 더 높은지, 그 판정 기준은 전혀 제시하지 않음. 이건 그냥 서열 선언임.

그리고 사용하는 용어들도 용어의 의미를 가져와 쓴 게 아니라 마음대로 뜻을 뜯어 고치고 재구성함.

열반은 괴로움과 집착의 소멸, 해탈 쪽의 말인데 님은 그걸 끝없는 업그레이드와 상위 개념 경쟁으로 바꿔 썼음. 이름만 따왔지 의미는 이미 님 마음대로 고쳐 쓴 셈. 처음부터 불교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말임.

무상정등정각도. 이건 더 이상의 위가 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말하는데 님은 '석가가 특정 단계에 멈춘 낮은 경지'로 바꿈. 여기서 '위가 없다'는 걸 고저 자체를 초월했다는 뜻으로 읽든, 더 위를 따질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읽든 어느 쪽이든 '석가 위, 아미타 위, 그 위의 나'를 세우는 순간 스스로 자기 말을 무너뜨리는 꼴이 됨.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금강경, 일체유심조도 전부 비슷함. 본래 뜻과 문맥을 설명하는 데 쓰인 게 아니라, 전부 '그러므로 내가 더 위다'를 꾸미기 위한 장식으로만 쓰이고 있음.


결국 님 글은 불교 해설문이 아니라 불교 용어를 재료로 쓴 자기신격화 선언문임. 불교의 맥락성과 방편을 가져다 쓰는 척도 안하고 대중의 인간상과 각자의 경험에 적용될 수 있도록 설계된 열린 해석을 단어만 따와서 닫힌 위계표로 만들고 있음.

머무름과 집착을 비판한다면서 정작 자기의 높음과 자기 위상에는 누구보다 강하게 집착하는 것도 웃긴 점. 스스로를 바다라고 비유했지만, 하는 짓은 우물 안에서 배수구멍 깊이를 재며 바다를 이겼다고 우기는 수준에 가까움.

불교 용어를 가져왔다고 불교를 말한 게 아님. 권위를 빌려 자기 자신을 세우려 한 것 뿐.


불교쯤 되는 체계가 이렇게 천박하게 ‘우리 제일 높음’이라고만 했을 리 없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게 잘 드러남.

님이 해달라 해서 강한 표현들도 쓴 거니까 불만민원은 안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