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비판적 사고 99단이라는 걸 썼는데,
저걸 해낼려면
평소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 9가지 요소를 떠올리고 
저 요소에 해당되는 걸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능동적으로 저걸 해야된다는 것이지.

그러면 자연스럽게 비판적 사고가 가능해진다. 
단어 자체는 지시기능을 갖고 있는데, 이를 몸으로 환원하면 '시선'을 던지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환기, 중시, 주목, 뭐라고 하든 눈과 관련된 기능이다.

비판적 사고 99단으로 하게 되면
다음의 것을 매번 생각하게 된다.
첫째 - 문제가 뭐냐? 목적이 뭐냐? 
둘째 - 정황(맥락)이 어떻게 되냐? 전제되는 것은 무엇이냐? 정보는 뭐가 있냐? 개념은 뭐가 있냐? 관점은 어떠하냐?
셋째 - 추론은 어떠한가? 결론은 어떠한가? 

그리고 타당성과 건전성을 따지게 되고, 귀납의 양과 질을 측정한다.

따라서 한번에 비판적 요소를 검토만 해도, 논리는 검토되게 되어있다.
애초에 비판적 사고에 논리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걸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걸 배운 사람들만 이렇게 할거다.
이걸 김영정 교수가 오란디프 라는 책에서, 필요하다고 제시했는데, 사교육 조장한다고 욕처먹었다. 미친거지.

김영정 교수가 시도했던건, 사고의 99단을 학생들에게 습관이 되도록 하려고 했던 것,
그럴려면 필요이상으로 중요해지는 게 제도다. 왜? 학생들은 시험이라고 하면, 그걸 의무적으로 외우려고 할거니까.
그러면 의무적으로 외우다가 비판적 사고의 방법을 습득하게 된다. 이것만큼 효과적인 게 어딨을까?


천재성이란 무엇이냐?
천재성이란 능동성에서 기인한, 자유로운 형식을 발생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애초에 능동성이 있어야 자유롭게 형식을 내놓을 수 있다. 쉽게 말해 카테고리를 능동적으로 고치는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근데 대부분은 이렇게 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순하다. 
첫째 대부분의 학생들은 피동적이다. 남들이 떠먹여줘야 한다.
둘째 인간관계, 갑과 을 관계에서 언제나 을의 위치에 있다. 그래서 갑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부모/선생/타인 등등.


이 두번째 탓에 천재성이 발현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시험공부할 때,
또는 고교생들에게 선생들이 가끔 해주는 이야기 중에, 가장 좆같은 게 뭐냐면 "안나오는 건 하지마, 왜해?" 라는 것이다.


문제가 여기서 시작된다.
안나오는거라???
그걸 하지마라고??? 

물론 이것은 '범위'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고교생은 이런 걸 의식할 정도로 모든 판때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고교생들이 두려운 건,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보면 자꾸 다른 내용이 떠올라서, 그거랑 연관짓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니가 국사책을 본다고 하자. 그럼 니 머리속엔 갑자기 삼국지 게임이 떠올라서 경영시뮬레이션과 연관짓고싶단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하면 이런 고민이 생긴다. "이건 교과서 없는건데, 하지 말아야되는 거 아닌가?" 

이러면서, 천재성이 죽게 된다.
만일 그 아이가 독자적으로 삼국지를 떠올리고, 그에 해당되는 정보를, 삼국지에 묶어서 정리할 수 있다면, 
그 아이는 더 쉽게 공부를 할 수 있다. 나머지는 선택지에 있는 표현만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시험을 잘치려면, 선택지의 용어를 잘 알면 된다.


천재가 되려면
남이 시키지 않아도, 남이 묻지않아도,
자기 멋대로, 자기가 스스로 묻고 요구하고 답을 끌어내서, 자기의 형식을 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얘기하자.
언어란 '지시기능'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고, 
몸의 입장으로 돌려말하면 '주목기능'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나 시선을 향하게 한다. 그러면 매번 마주하는 문제에 대해서 '개념'을 잡아야지, 쓸데없는 개념을 잡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게 니 머리속을 휘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이 시험을 잘 치려면, 선택지에 나오는 용어들의 체계를 잡아야 하고, 그 용어들을 지문에서 찾아낼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게 '눈'을 활용한 시험풀이 방식이다.


그런데
이건 시험만이 아니다. 인생 자체가 그런 문제다.
'눈'을 중시해야 한다. 니가 만나는 여자가, 남자가, 어떤 것을 '중시'하는지를 알아야,
너는 그에 맞게 준비를 할 수 있고, 그걸 준비해야 그들이 '중시'하는 것에 '포섭'되게 된다.
돌려 말해, 그들의 입장에서 입맛에 딱 맞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게 인간관계를 해쳐나가는 방법이다.

근데 이렇게 말하면 주체성이 상실되는것 같나? 그러면 넌 지금 자기애의 외침에 빠져있음을 알아야한다.
사실 니가 다른 사람을 볼 때, 어떻게 보는지를 잘 봐라. 너도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있다.
예쁜거.
몸매 쭊쭊빵빵한거.
너에게 대주려고 하는거.
너를 봐주려고 하는거.

너는 그런 것들에 주목한다. 따라서 그런 것들이 보이면 급흥분해서 반응하게 된다.
상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개 이런 생각을 잘 못한다. 왜 그럴까? 번뇌의 문제도 있긴 하지만,
자기가 이런 생각을 해놓고도, 주변 반응을 살피고 눈치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를 게 없이,
남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엇비슷하게,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으니까,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대개 이런식으로, 자기의 학습범위를 한정지어 놓는다. 

따라서 '남들이 뭐라건, 내가 만들어낸 형식'이라고 하는 것은 찾기가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너더러 니 독자적인 체계를 만들고 소통되든 안되든 오로지 그것으로 말해라는 건 아니다.
니가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해도, 그것이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곧 이해되지 못한것으로 치부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린다.
1. 의사소통, 기호를 공유하는 방법을 배워라.
2. 그것을 지키되, 어디까지가 사람들과 소통범위인지 파악해라. 그리고 그것을 기억해둬라.
3. 이후에 니가 별도로 개발시킬 수 있을 형식/카테고리를 개발하라.
4. 사람들과 만날때는 2번만 하고, 속으로는, 혼자서 연구할때는 3번으로 가라. 그래야 니 천재성은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