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이 절대적 도덕 규범인 이유

상황을 가정해보자


내가 굶주린 사람에게 빵을 주었다


빵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 이 행동은 선일 것이다

옆에 있던 누군가는 왜 저 사람만 받느냐며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생색내기라고 비웃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행위의 선함은

구경하던 자들의 감정에 따라 사라지는가


그럴 리 없다


남이 시기했다고 해서

도움이 해악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이유 없이 약자를 폭행했다


가해자는 속이 시원하다고 느낄 수 있다

주변의 누군가는 그에게 나름의 사정이 있었으리라며 이해하려 들 수 있다

또 누군가는 별것 아닌 일이라며 넘기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폭행이 악이라는 사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이미 드러난다


선과 악은

누가 어떻게 느끼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선과 악은

행위자가 무엇을 했는가의 문제다


타인을 정당한 이유 없이 해쳤는가

타인을 수단처럼 다뤘는가

폭력과 기만과 침해가 있었는가


기준은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말한다


선이란 상대적이다

누구에게는 선이고 누구에게는 악일 수 있다

절대적인 선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다


이 말은 도덕을 감정과 이해관계로 환원한 것에 불과하다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었다고 해서 선이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손해가 되었다고 해서 악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기꾼은 사기로 이익을 본다

그렇다고 사기가 선이 되지는 않는다


배신자는 배신 덕분에 살아남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배신이 선으로 승격되지는 않는다


이익과 손해는 결과의 문제다

선과 악은 규범의 문제다


상대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처음부터 자기모순이라는 데 있다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다는 말

이 문장은 대체 무엇인가


이 말이 정말 참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이미 하나의 절대적 명제를 세운 것이다


아무 절대 기준도 없다고 하면서

정작 그 말만은 예외적으로 참이라고 우기고 있는 셈이다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최소한 그 문장만큼은 절대적 진리로 취급하고 있다


보편 타당한 도덕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최소한 그 주장만큼은 보편 타당한 주장처럼 내세우고 있다


모든 판단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작 그 문장만은 관점을 초월해 유효하길 바라고 있다


이건 사소한 허점이 아니다


상대주의는 자기 입으로

자기 뿌리를 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주의는 둘 중 하나로만 귀결된다


자기 말도 단지 개인 취향일 뿐이라고 물러서거나

아니면 자기 말만큼은 모두에게 통하는 진리라고 우기거나


전자를 택하면

그 주장은 아무 힘도 없다


나는 선악이 상대적이라고 느낀다

그 정도 말이라면

남은 그냥 아니라고 느낀다고 답하면 끝이다


거기에는 설득도 없고

반박도 없고

진리 주장도 없다


후자를 택하면

상대주의는 그 순간 끝난다


절대는 없다고 외치면서

자기 주장을 절대로 만드는 꼴이기 때문이다


상대주의는 절대주의를 공격하는 사상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절대주의를 몰래 훔쳐 써야만 겨우 굴러가는 기생 논리다


이 모순은 현실로 가면 더 선명해진다


선악이 정말 전적으로 상대적이라면

학살도 어떤 집단의 관점에서는 정당할 수 있다

노예제도 어떤 시대의 관점에서는 질서일 수 있다

고문도 어떤 권력의 관점에서는 필요일 수 있다

아동 학대도 어떤 뒤틀린 문화에서는 훈육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악이라고 부를 근거가 사라진다


남는 것은 오직 이 말뿐이다


나는 그것이 싫다

내 감성에는 맞지 않는다

내 입장에서는 불쾌하다


도덕이 취향 고백으로 추락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대량학살을 보고

그저 취향 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고문을 보고

관점의 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고한 자를 짓밟는 폭력을 보고

그 사회의 맥락도 존중해야 한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잘못이라고 말한다

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라는 말은 사라진다

책임이라는 말은 사라진다

죄라는 말은 사라진다

비난이라는 말은 사라진다


상대주의는 끝까지 밀어붙이면

그 어떤 극악한 행위도 원리적으로 단죄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상이다


가끔 상대주의자들은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절대적 선악은 없어도

사회적 합의나 공감은 있을 수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것도 소용없다


사회적 합의가 왜 따라야 할 기준이 되는가

다수가 동의하면 선이 되는가

그렇다면 노예제를 지지한 다수도 선이었는가

인종차별을 당연시한 사회도 선이었는가


공감이 기준이라면

공감 능력이 없는 자 앞에서는 도덕이 사라지는가

잔혹한 인간이 공감하지 못하면

그의 악행은 더 이상 악이 아닌가


결국 합의도 공감도

그 자체로는 도덕의 최종 근거가 될 수 없다


합의가 잘못되었는지 판단하려면

합의 바깥의 기준이 필요하다


공감이 비뚤어졌는지 판단하려면

공감 바깥의 기준이 필요하다


상대주의는 끝내

자기가 부정한 절대 기준을 다시 몰래 불러들일 수밖에 없다


또 어떤 이들은 말한다


현실은 복잡하니

절대적 선악 같은 단순한 구분은 불가능하다고


이 말 역시 착각이다


현실이 복잡하다는 것과

기준이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법에도 어려운 사건은 많다

정당방위와 과잉방위의 경계는 복잡하다

계약의 성립 여부도 때로는 미묘하다


그렇다고 해서

법 자체가 상대적 취향놀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도덕도 같다


적용이 어렵다는 것은

기준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기준이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침해이고 어디까지가 정당한 보호인지

어디까지가 의무이고 어디부터가 악행인지

그 치열한 구분이 가능한 것이다


선은 인간의 생명과 의식을 존중하는 방향에 있다

악은 인간을 생명과 의식을 파괴하고 수단화하는 방향에 있다


선은 부당한 침해를 멈추는 데 있다

악은 부당한 침해를 가하는 데 있다


선은 신뢰와 보호와 책임의 편에 서고

악은 배신과 폭력과 착취의 편에 선다


이 기준은

누가 좋아하느냐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누가 이익을 보느냐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누가 그것을 멋지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선은 절대적이다

악도 절대적이다


상대적인 것은

인간들의 기분과 해석과 핑계일 뿐이다


절대적 선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절대적 진술을 하나 꺼내든 셈이다


그 점에서 상대주의는

세상을 꿰뚫은 지혜가 아니라

자기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모순된 말장난에 가깝다


보편적 선을 실현하는 일이 어렵다고 해서

보편적 선 자체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판단이 어렵다고 해서

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악을 둘러싼 해석이 많다고 해서

악 자체가 해체되는 것도 아니다


선과 악은

관점의 장난감이 아니다


인간 세계를 인간 세계로 남게 만드는

절대적 기준이다